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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27일자 오피니언면 '포럼'에 박효종 서울대 교수가 쓴 칼럼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이번 4·25 재·보선의 최종 결산은 한나라당 재·보선 ‘불패신화’의 종식으로 기록될 것 같다. 열린우리당은 원래부터 기력을 잃어 ‘식물정당’처럼 유지돼 왔으니, 전패의 기록을 이어갔다고 해서 큰 뉴스거리가 되는 것은 아니다. 민주당도 승리했다고 기염을 토하기보다는 지역주의의 승리로 보는 시각이 다수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왜 한나라당의 불패신화가 깨졌을까. 공천을 둘러싼 돈거래와 협박, 후보매수사건 등 각종 악재가 그치지 않았다면, 흥행이 너무나 잘돼 여러 사람이 한 몫을 챙기겠다고 달려든 결과다. 하지만 이번 참배의 가장 큰 원인은 이명박·박근혜 두 대선주자의 불화와 불목이다. 대권을 지향하는 만큼 경쟁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겠지만, 그렇다고 합동유세조차 못할 정도로 각박한 사이가 된 것인가. 동병상련(同病相憐)처럼 그동안 어려운 고비도 수없이 넘긴 사이인데, 그렇게까지 만나지 못할 이유가 있었단 말인가. 이것은 필연코 오만과 편견의 결과다. 두 라이벌이 손을 잡는 것이 언제나 흥행 카드가 될 수는 없다. 살벌한 경쟁이 사람들을 불러모으는 효과는 얼마나 큰가. 경쟁관계에 있는 두 사람이 항상 “형님 먼저 아우 먼저” 하면서 겸양하면 감동을 주기보다 ‘짜고 치는 고스톱’처럼 사람들의 흥미를 반감시키기 십상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두 사람 사이에 불화가 도를 넘고 있다는 이야기가 실감있게 나도는 상황에서 합동유세에서 서로 손을 마주잡는 모습을 보여주었더라면, 유권자들에게 신선한 느낌을 줄 수 있었을 것이다. 사익을 접고 대의에 순응하는 모습이 사람들에게 아름답게 각인되지 않았을까.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70%의 지지율이 그들을 그토록 완고하게 만들었을까.
사람이 살다보면 신기루나 환상을 볼 수 있다. 밑천이 바닥난 노름꾼이라도 카지노에서 노름을 하면서 대박의 꿈을 꿀 수 있다. 특히 처지가 어려울수록 환상과 신기루가 눈에 어른거리는 법이다. 그랬기 때문일까. 한나라당은 양분돼 왔고, 당에서 이뤄지는 모든 것이 ‘내편, 네편’으로 나누어졌다. 이 엄청난 ‘제로섬게임’이 오늘의 화를 자초한 것이다. 물론 좋은 사과나무라도 언제든지 썩은 사과, 새가 파먹은 사과 몇 개씩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지금 한나라당의 문제는 소수의 썩은 사과가 아니라 대들보 역할을 하는 이 두 사람의 마음가짐과 태도다. 이들이 대선승리를 따놓은 당상처럼 교만한 마음을 가지면 당이 교만해지는 것이고, 이들이 구태의 모습을 가지면 당 전체가 구태의 모습을 갖는 것이다. 또 이 두 사람이 절제의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 당이 무절제한 당이 되는 것이며, 이들이 분열하는 모습을 보이면 당이 분열의 당이 되는 것이다. 한나라당의 문제는 손발의 질환보다 중추의 병을 앓고 있다는 점이다.
대선주자 두 사람이 과연 이 사실을 알까. 알면 대오각성할 수 있을 것인가. 책임 소재와 관련, ‘네 탓’ 공방이나 하고 모든 일마다 두 패로 나뉘어 ‘내 미락 네 미락’ 하면 만사는 휴의다. 지금의 상황을 보면 상대방을 손가락질하며 ‘네 탓’을 할지언정 겸손하게 ‘내 탓’을 할 것 같지는 않다. 바로 이것이 암울한 비관론의 근거다. 일부 당직자들이 사퇴하고 새 사람이 들어오겠지만, 두 사람이 심기일전하지 않는 한, 또 이 두 사람이 경선 승리를 위해 비열하고 저급한 일을 하지 않겠다고 결단하지 않는 한 당직 물갈이가 큰 의미를 갖는 건 아니다.
다음 대선에서 패한다면 한나라당은 어떻게 기억될까. 반사이익과 거품이 컸던 정당, 70%의 지지도가 결국 허수로 드러난 정당, 바로 여기에는 두 대선주자의 오만과 단견이 원인이었다고 할 것이다. 그 재앙이 지금 막 시작된 것은 아닌지 궁금할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