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데일리안측이 손기정 선생이 친일파에다 매국노였고 항일의지를 꺾었다고 주장하는 것에 대한  객관적인 근거자료를 제시하지 않을 경우 강경 대응하겠다"고 손기정 선생의 외손자인 이준승 '손기정기념사업회' 사무총장이 말했다. 그는 16일 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인터넷 신문 데일리안의 광주전라판이 손 선생을 친일파에 매국노라고 치부한 기사를 내보낸 것과 관련, 강경대응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데일리안 광주전라판은 지난달 26일 '성출산 항일독립운동사 <3>'이라는 기사를 통해 손 선생을 매국노에 친일파라고 규정하며 항일의지를 꺾은 인물로 묘사했다. 데일리안 광주전라판은 손 선생이 베를린 마라톤에서 우승한 것을 두고 '황국신민이 되면 이렇게 잘살 수 있다는 것을 조선 민중들에게 보여준것'이라고 주장하며 '손 선생은 조선민중으로 하여금 항일 의지를 버리도록 유도하고 선전한 일제의 도구였으며 그 자신이 전형적인 친일 매국노'라고 표현했었다.

    이와관련, 이 사무총장은 "당시 시대상을 전혀 인지 못하는 무지에서 나온 글"이라며 "해방 당시 친일 청산에 앞장섰던 사람들도 손 선생을 친일파라고 하지 않았으며 일제시대인 1930·1940년대에는 민족의 영웅이었다. 자신의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며 민족의 자긍심을 일깨우던 사람을 일제시대에 살았다는 이유만으로 친일파에 매국노로 모는 그들을 이해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데일리안이 손 선생이 조선민중의 항일의지를 꺾었다고 주장하는 것과 관련, "손 선생이 어떤 점에서 항일의지를 꺾었다고 하는지 그들에게 묻고 싶다"며 "독립운동을 했던 이승만 전 대통령은 손 선생이 베를린 마라톤에서 우승하자 '베를린에서 우승한 손기정씨가 한국인이며 나도 한국인'이라고 외국사람들에게 말하고 다녔다. 손 선생은 항일의지를 꺾기는 커녕 북돋아 줬다. 당시 항일운동가들은 손 선생의 우승을 보고 '조선의 독립에 확신을 가졌다'고 말했을 정도였다. 이 같은 객관적 자료는 존재하며 필요하다면 제출할 것"이라고 답했다.

    그는 이어 "데일리안측이 어느 정도 근거를 가지고 기사를 써야 하는데 근거없는 허위사실로 글을 쓴 점은 분명 문제가 크다"며 "친일파·매국노·항일의지를 꺾었다는 확실한 근거를 그들이 제시하지 못 할 경우 그들의 잘못은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데일리안은 명백하게 잘못했다고 인정하고 사과함과 동시에 그들이 주장하는 허위사실을 뒷받침할만한 객관적 근거를 반드시 제출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억압받던 일제시대에 오히려 손 선생에 대한 평가가 객관적이었다"며 "손 선생은 당시 일제시대에 조선민중에게 작은 희망이었으며 삶의 의미를 주는 존재였다. 과거가 지금보다 훨씬 손 선생에 대한 평가가 바르게 전달됐던 것 같다. 시대가 지나면서 손 선생에 대한 올바른 평가가 점점 희석되더니 급기야 이런 사태까지 벌어졌다"고 안타까워했다.

    이와함께 그는 "요즘 청소년들은 손 선생이 누구인지도 모를정도로 민족의 영웅이 잊혀져 가고 있다"며 "단지 가슴에 일장기를 달고 뛰었다는 사실만으로 손 선생을 매국노에 친일파로 호도하는 학생이 나올수도 있다. 이런 시점에 데일리안의 악의적인 기사는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잘못된 인식을 전파할 수도 있으므로 중대사안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강경 대처는 불가피하다"고 강조했다.

    이 사무총장은 지난달 29일 손 선생을 '친일파'에 '매국노'라고 치부한 '성출산 항일독립운동사 <3>'을 쓴 데일리안 광주전라판의 박혜범 편집위원과 데일리안 민병호 대표이사를 고소한 상태다. 문제의 광주전라판 기사는 데일리안의 홈페이지에서도 검색이 가능하다.

    한편,데일리안 광주전라판은 문제의 기사를 쓴 박혜범 편집위원을 옹호하고 나섰다. 이 사이트는 16일 '박혜범 선생을 호원한다'는 기사를 통해 손 선생이 친일파라는 근거로 ▲스스로 일장기를 떼지 않은 점▲태평양 전쟁이 끝나고 조국이 해방 됐어도 돌아오지 않은 점▲우승에 대한 대가로 일제로부터 많은 특혜를 받으며 호의호식한 점이라고 주장했다.



     ◆문제의 데일리안 광주전라판 기사 '성출산 항일독립운동사 <3>'

    이번에는 관동군 소위 박정희와는 다르게 친일청산을 외치는 이들이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하여, 영웅으로 만들어놓은 손기정을 살펴보자.

    당시 선민의식에 도취되어있던 일본이 세계가 주목하는 올림픽에 24세의 조선인 손기정과 남승룡을 출전시킨 것은, 조선 식민통치의 정당성을 세계인들의 앞에서 선전하고, 일본과 조선은 같은 조상 한 뿌리라는 “일선동조론(日鮮同祖論)”을 내세워 조선인들의 저항을 분쇄하면서, 민족성을 없애버리고, 일본인화(日本人化)를 만드는 도구였으며, 손기정과 남승룡은 그런 일본의 내선일체 정책에 부화뇌동(附和雷同)한 친일파였다. 

    손기정 본인은 우리민족의 소원인 자주독립을 위해 손가락하나 까딱하지도 않고 일본의 신민화(臣民化) 정책에 동조, 1940년 28세의 나이에 일본 명치대학(明治大學) 법과를 졸업하고,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일본의 군수산업에 자금을 조달하던 조선저축은행(朝鮮貯蓄銀行)에 입사한 것은, 변명의 여지없는 명백한 친일 매국노의 행위였다.

    손기정이 애국자라면, 최소한 올림픽 이후 민족진영에 가담했어야 하는데, 그는 총독부의 배려 속에서 호의호식한 황국신민이었다.

    한마디로 당시 손기정은, 황국신민이 되면, 이렇게 잘 살 수 있다는 것을, 조선 민중들에게 보여주고, 그들로 하여금 항일의지(抗日意志)를 버리도록 유도 선전한 일제의 도구였으며, 그 자신은 전형적인 친일 매국노였을 뿐이다.

    사실이 이러함에도, 일장기를 가슴에 달고 마라톤을 완주한 선수가 “골인지점에 이르러 슬펐다.” “시상식장에서 침울한 표정으로 유니폼의 일장기가 보이지 않도록 월계관수를 가슴으로 끌어당겨 감춘 애국자였다.”는 등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하여, 내선일체 황국신민화를 널리 선양했던 친일 매국노 손기정을 국가의 영웅으로 만들어 놓고, 무슨 국가와 민족의 정의를 논할 것인가? 순국선열들과 후손들에게 참으로 부끄럽고 죄스러운 일이다.

    일제시대 조국을 배반하고 동포들을 사지(死地)로 몰아넣은 매국노들을 단죄하는데, 별것도 아닌 관동군 소위 박정희는 “매국노”라 하고, 우리 국민들로 하여금 항일의지(抗日意志)를 버리고, 일본에 동화되도록 심대한 영향을 미쳤던 친일파 손기정은 “영웅”이라 부르고 있는 오늘의 친일청산은 국가 권력에 의한 역사왜곡이며, 분명히 잘못된 것이다.

    이따위 엉터리 기준을 정하여, 민족의 정기를 어지럽히는 이들이야말로 국가와 민족을 배반하는 현대판 매국노 집단이라 아니할 수 없는 일이다.

    ◆16일 데일리안 광주전라판에 실린 '박혜범 선생을 호원한다'

    최근 손기정 기념재단이 데일리안 광주전라 편집위원인 박혜범 선생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하였다.

    손기정 기념재단 이 사무총장은 고소문에서 "박씨는 손기정 선수가 올림픽에 출전한 것이 일제의 내선 일체와 황국신민화 정책에 부화뇌동한 것이라고 했을 뿐 아니라 메이지대학에 입학하고 조선저축은행에 입사한 것이 총독부 혜택을 본 것이라는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펼쳤다"고 말했다.

    또한 박혜범 선생은 지난달 26일 `성출산 항일독립운동사<3>´라는 제목의 D사 보도를 통해 "손기정은 황국신민이 되면 이렇게 잘 살 수 있다는 것을 조선 민중들에게 보여주고 그들로 하여금 항일 의지를 버리도록 유도하고 선전한 일제의 도구였으며 그 자신이 전형적인 친일 매국노였을 뿐이다"락 주장하였다.

    난 지금 이 시점에서, 우리 현대사에서 지대한 영향을 끼친 두 명의 인물을 생각해 본다. 한 사람은 세계 육종학의 대가이셨던 우장춘 박사, 그리고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하여 대한인의 위상을 세계에 드높인 손기정.

    그러나 나는 다음과 같은 5 가지 이유를 들어 손기정의 지난날을 짚어보고자 한다.

    1. 손기정은 스스로 일장기를 떼지 않았다. 손기정의 일장기 말살 사건은 동아일보 기자들의 애국적인 행동이었을 뿐이다.

    2. 손기정은 태평양 전쟁이 끝나고 조국이 해방 되었어도 돌아오지 않았다. 더구나 6.25의 비극을 일본에서 바라보고 있었던 인물이다. 일본에 거주하고 있던 수많은 학도의용군들이 자원해서 조국을 위해 자원입대하던 시절이었다.

    3. 그의 우승은 국민적 영웅으로 칭찬 받을 만 하나, 그의 우승이 일제의 친일전략과 맞물려 한반도의 효과적인 지배에 이용되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일이다.

    4. 또한 우승에 대한 대가로 일제로부터 많은 특혜를 받았으며, 온 국민이 수탈과 폭압에 시달릴 때 호의호식한 것도 사실이다.

    5. 마지막으로 손기정의 후손들은 김교신 선생을 기억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

    ‘씨 없는 수박’을 만들어 세계 육종학의 길을 개척하셨던 우장춘 박사는 손기정처럼 살지 않았다. 1950년 6.25 전쟁 중에 우리 피폐화된 농업을 살리기 위해 , 우리 국민을 살리기 위해 우장춘 박사는 가족과 일본정부가 보장한 예약된 명예와 부를 버리고 귀국하였다. 그 분은 을미사변 당시 명성황후 살해에 가담한 민족반역자 우범선의 아들이었다.

    우장춘 박사는 이러한 아버지의 죄업을 씻고자, 그 속죄의 길에서 민족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 기울인 인물이었다. 그의 귀국도 감동적이었다. 손기정처럼 모든 만난(萬難)이 다 지나간 시절에 돌아온 것이 아니라, 우장춘 박사의 귀국은 그 비참한 6.25 전쟁 중에 행하신 것이다. 민족이 진정 필요로 할 때 우장춘 박사는 부귀와 영화를 버리고 조국을 위하여 돌아오셨던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이 위대한 분 앞에서 그 누구도 아버지 우범선의 죄를 묻지 않는다. 오히려 아버지의 죄를 민족의 제단 앞에 올려, 지극한 희생과 봉사로서 마침내 그 죄를 깨끗이 씻어낸 우장춘 박사.

    그러나 우리는 지금 이러한 우장춘 박사보다도 손기정을 더 우대하고 있는 실정이다. 더구나 우장춘 박사에게는 제대로 된 기념관 하나 없는 처지에, 한 언론인 하나가 손기정의 지난날에 비판을 가한다고 명예훼손으로 고소하는 후손들이다. 이것은 분명 잘못된 일이다.

    스스로 민족의 위난에서 아웃사이더로 살아온 지난날의 손기정은 우리가 본받을 과거가 아니다. 오히려 우장춘, 우리는 그 분의 위대한 업적과 효심을 높이 우러러, 대한민국의 위대한 얼로 높이 숭상하고 자랑스러워해야 한다. 모쪼록 길이 본받아야 할 것이다.

    조국이 전쟁이 한참이던 때 조국의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국내로 돌아와 일심으로 우리나라의 농업의 발달만을 위해 한평생을 보내신 우장춘 박사. 그가 소리없이 연구에만 몰두하게 되었던 것은 자신의 직업상의 문제만은 아니었고, 역사적으로 부과된 자신만의 짐을 대신하고자 하였기 때문이었다.

    신념이 남달리 강한 사람이 자신의 신념에 따라 살아갈 때에는 그러한 신념이 역사적으로 어떠한 평가를 받을 것인가를 생각해만 한다. 만일 그러한 신념이 역사적 상황을 잘못 판단하였을 때 그 해독은 참으로 엄청난 반향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것은 그 사람의 대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다음의 세대까지 그 후과가 남겨지기 때문이다.

    끝으로, 김교신 선생은 양정학교 교사로 부임하여 지리과목의 교사이면서 손기정 선수가 속한 반의 담임이었다. 선생께서는 교실에서 절반은 지리를 가르치면서 절반은 민족의 혼을 깨우치는 정신교육을 베풀었다. 손기정 선수 같은 경우 김교신 선생의 정신교육이 맺은 열매라 할 수 있다. 손기정 선수가 올림픽의 마라톤 경기에서 금메달을 받게 된 이후 이른 말이 있다.

    “우승의 성공은 작전에 있지 않고 정신에 있더라”

    여기서 말하는 정신이란 곧 양정학교 교실에서 담임선생으로부터 교육받은 정신을 일컫는다. 베를린 올림픽이 있기 전 해 동경에서 열린 선발대회에서 김교신 선생은 자전거를 타고 손기정 선수의 뒤를 따르며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 달렸다. 마지막 코스에서 손기정 선수가 기력을 잃고 쓰러질듯 하였을 때에 뒤 따르던 담임선생님인 김교신이 “기정아, 기정아 힘을 내라. 조선을 생각하라”고 외쳐 힘을 북돋웠다는 말은 널리 알려져 있다.

    70년 후, 박혜범 선생을 고소한 후손들에게 묻는다.
    "김교신 선생이 가르친 그 정신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