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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시베리아로 넘어가야죠"
19일 한나라당 탈당을 공식선언한 손학규 전 경기지사가 기자회견장을 떠나며 남긴 마지막 말이다. 최근 당내 유력 대선주자인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자신의 탈당설과 관련해 '한나라당 안도 시베리아고, 나가도 한(추운) 데인데'라고 말한 것에 빗댄 것. 손 전 지사는 19일 기자회견문 발표 후 일문일답에서 "망해야 산다, 죽어야 산다는 각오로 나섰다"며 독자행보의 각오를 다졌다. 이날 서울 용산구 백범기념관에서 가진 기자회견 도중 손 전 지사는 지난 정치권에서의 자신의 행보를 떠올리며 눈물을 쏟아냈다.
손 전 지사는 "내가 한나라당 경선에 참여해 장렬하게 전사하고 산화하는 것이 욕심을 더 크게 버리는 것일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그것은 내 자신을 위한 욕심에 지나지 않았다"며 탈당 명분을 내세웠다. 손 전 지사는 "그것이 한나라당을 바꿀 수 있다면 내가 사망하고 전사해도 아까움은 없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당은 더 이상 변할 수 없다고 결론내렸다"고 말했다. 그는 "내 자신의 실패를 깊이 통감했다"고 덧붙였다.
손 전 지사는 또 "내 주변 거의 모든 사람이 탈당을 만류했다. 적극적으로 말리기도 하고, 같이 일하고 있는 후배들은 차마 말은 못해도 '좀 그자리에 있어 주지'하는 눈초리가 정말 애처로울 정도였다"며 탈당을 결심하기까지의 고뇌를 털어놓기도 했다. 이 대목에서 손 전 지사는 눈물을 감추지 못한 채 손수건을 꺼내 뒤돌아섰다.
이어 그는 독자신당 창당을 암시하면서, 최근 '제3지대 정치세력화'를 주창하며 창립한 '전진코리아'를 전초기지로 삼을 뜻을 강하게 내비쳤다. 손 전 지사는 "새로운 창당을 비롯, 우리나라의 미래와 선진화를 위해 창조적 능력이 있는 사람을 모을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하겠다"며 "전진코리아도 충분히 그런 정치세력의 일원으로서 바탕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손 전 지사는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은 특히 개혁적인 교육을 통해 훌륭한 비전과 경영능력을 보여줬고, 진대제 전 정보통신부 장관은 미래산업의 상징"이라며 "이 분들만은 아니지만 그런 분들과 함께 새로운 역사를 만들자는 것이 꿈이자 생각"이라고 말해 연대가능성도 시사했다.
그는 자신이 지향하는 중도세력은 "그저 가운데서 이리저리 갈 수 있는 중도가 아니라 제대로 된 역사의식을 가진 정치세력"이라고 설명했다. '중도세력이 집권할 수 있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손 전 지사는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며 "망해야 산다, 죽어야 산다는 각오로 나섰다"고 말했다.
독자세력화 성공 가능성에 대해 그는 "지금 가야할 길에 대한 공감대가 많이 펼쳐져 있다는 생각에서 내가 먼저 뜻을 밝히고 동참하는 사람을 앞으로 구하면 범위가 커질 것"이라며 "폭넓게 참여할 것으로 본다"고 기대했다. 손 전 지사는 '독자적'으로 탈당을 결심했다고 거듭 강조했다. 손 전 지사는 또 범여권후보설과 관련해서는 "내가 말하는 것에 이미 답이 나와있다"면서 "지금의 여권, 지금의 한나라당(을 포함한), 새로운 정치를 추구하는 세력과 사람들이 크게 새로운 이념적 정책적 좌표를 설정해 같이 나갈 수 있을 것"이라며 가능성을 열어놨다.
이날 한시간여 진행된 손 전 지사의 탈당기자회견장에는 100여명의 지지자들이 자리를 함께 했다. 기자회견이 끝난 후 기자들과 인사를 나누며 손 전 지사는 "이제 시베리아를 넘어가야죠"라는 말만 남긴 채 자리를 떴다.
다음은 기자회견 일문일답이다.
--미래 평화 통합시대를 경영할 창조적 주도세력을 만드는데 자신을 바치겠다는 말은 신당 창당을 의미하나. 또 `전진 코리아'가 신당 창당의 모태가 되나.
▲새로운 창당을 포함해 미래 선진화를 향해 창조적 능력을 갖고 있는 모든 정치세력을 모을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하겠다. `전진 코리아'도 그런 새로운 정치세력의 한 바탕이 될 수 있다. `전진 코리아'는 386 세대 중에서 기존 386 정치에 대한 국민의 부정적 인식을 극복할 수 있는 적극적 사회참여 세력이다.
--회견문에서 `대한민국 드림팀'을 만드는데 밀알이 되겠다고 한 것은 올 초 진대제 전 정통부장관, 정운찬 전 서울대총장을 언급하면서 말한 `드림팀' 얘기인가.
▲정운찬 전 총장은 서울대 경영을 통해 교육에 대한 훌륭한 비전과 경영능력을 보여줬고 진대제 전 장관은 미래 산업의 상징이다. 이런 분들이 대한민국 선진화와 미래의 중요한 힘이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 드림팀을 확대해 나가서 새로운 정치질서의 밑거름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분들과 함께 새로운 역사를 만드는 게 꿈이다.
--탈당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있다. 그동안 경선결과에 승복하겠다고 했는데 탈당을 결심한 구체적 이유는 무엇인가.
▲탈당이 제게 얼마나 큰 고통을 가져다주는지 여러분도 잘 아실 것이다. 제가 대통령이 되는 것보다 국민에게 품위있는 정치를 보여주는 게 더 중요한 게 아닌가 무척 고민했고 그 고민은 여러분이 아무리 상상력을 크게 동원해도 미치지 못할 것이다.
지난 며칠 제 머릿속을 꽉 채운 화두는 욕심을 버리는 것이었다. 제가 한나라당 경선에 참여해서 장렬히 전사하고 산화하는 게 욕심을 더 크게 버리는 것일 수도 있지만 그건 저 자신을 위한 욕심에 지나지 않는다. 제가 한나라당을 바꿀 수 있다면 산화하고 전사해도 아깝지 않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제 노력과 제가 겪은 고통과 제 능력을 동원해도 한나라당은 더 이상 변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저는 제 실패를 깊이 통감한다.
제 주변의 거의 모든 사람들이 탈당을 만류했다. 그러나 저는 자신을 버리기로 했다. 그동안 제가 정치권에 들어와서 받았던 사랑과 정성, 명예를 다 돌려드리고자 한다. 저는 이 길이 죽음의 길인 것을 잘 안다. 그러나 제가 명성과 명예와 영광을 지키기 위해 빤히 보이는 자신의 안위만을 지킬 수는 없다.
지금 제가 가는 길은 확실한 길이 아니다. 오직 믿음을 갖고 나설 뿐이다. 그리고 저는 어제 저녁 한 신부님께서 주신 잠언 16장 3절 말씀을 간직하고자 한다. `무슨 일을 하든지 야훼께 맡기면 생각하는 일이 다 이뤄지리라.' 하늘을 믿는 것은 국민을 믿는 것이라고 믿는다. 국민을 믿고 하늘을 믿고 일이 꼭 이뤄진다는 믿음 속에 꿋꿋이 나가겠다.
--무능한 진보와 수구보수가 판치는 정치를 고쳐야 한다는 건 중도(中道)를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에서 과연 중도가 집권할 수 있다고 보나.
▲어렵다. 우리나라 정치가 그랬고 바로 그게 세몰이 정치로 더욱 발전하고 그 안에서 줄세우기로 발전해서 국회의원이 헌법기관으로서의 주체성을 상실했다.
제가 말씀드리는 새로운 정치세력은 그저 가운데 서있는 중도가 아니다. 제대로 된 역사의식을 가진 정치세력이다. 낡은 좌파, 낡은 진보는 역사를 제대로 읽지 못하고 국정 운영 능력이 없다. 수구보수는 우리가 60∼70년대에 사는 것으로 착각한다. 경제개발 논리도 그렇고 50∼60년대의 냉전적 논리에 파묻혀 있다. 새로운 정치세력은 단지 가운데 있는 중도가 아니라 미래를 향해 세계로 나가는 선진화 개혁 세력이다.
--신당을 창당한다면 한나라당에서 얼마나 많은 의원들이 동참할까. 실제 그런 의사를 밝힌 의원이 있나. 범여권 후보설에 대한 입장은.
▲저는 이 결단을 독자적으로 했다. 많은 분과 상의하고 처음부터 동참을 권유할 수도 있었지만 지금 우리가 가야할 길에 대한 공감대가 널리 펼쳐져 있다는 생각에 우선 제가 뜻을 밝히고 동참하는 사람을 구하면 그 범위는 클 것이라 생각한다.
범여권 후보설에 대해서는, 제가 이미 드린 말씀에 답이 있다. 이 정권의 실정에 대해 분명히 사과하고 사죄해야 한다. 그런 가운데 지금의 여권과 지금의 한나라당, 새로운 정치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크게 새로운 이념적 정책적 좌표를 설정해서 같이 앞으로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