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경선을 향한 당 대선주자들의 ‘당심(黨心)잡기’ 경쟁이 치열하다. 박근혜 전 대표와 이명박 전 서울시장은 ‘살인적인 일정’으로 지역을 순회하며 당원·대의원들을 접촉하고 있다.

    경선 선거인단의 50%(현행 경선룰)를 차지하는 당원들의 더 많은 지지를 이끌어 내기 위한 대선주자들의 불꽃 튀는 경쟁은 9일 당 국책자문위원회가 주최한 ‘대선필승대회 및 정책세미나’에서도 나타났다.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이날 행사에는 당 대선주자 5명이 모두 모였다. 지난달 25일 당 지도부와 가진 조찬간담회 이후 오랜만에 얼굴을 마주한 자리였지만 분위기는 냉랭했다. 


    ‘경선룰’을 놓고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박 전 대표, 이 전 시장,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는 서로 의례적인 인사만 주고받은 뒤 곧바로 행사장에 모인 자문위원들을 향해 뿔뿔이 흩어졌다. 박 전 대표는 자신이 앉은 자리 주변 사람들과 먼저 찾아오는 사람들과 인사를 나눈 반면 이 전 시장과 손 전 지사는 좀 더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두 주자는 행사장 구석구석까지 직접 찾아가 일일이 악수를 하며 눈을 맞췄다. 이런 ‘빅3’와는 다르게 고진화 의원은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으며 원희룡 의원은 행사 시작 직전에 도착해 인사를 나눌 기회가 없었다.

    ‘빅3’는 참석자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눈 뒤 다시 맨 앞자리에 나란히 앉았지만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볼 뿐 별다른 대화 없이 침묵을 지켰다. 최근 대선에 맞춰 조직을 확대한 국책자문위가 처음 마련한 이 행사에는 새로 영입된 정·관·재계 원로인사 100여명이 참석했다.

    ‘빅3’는 축사에서도 미묘한 신경전을 펼치며 당심을 공략했다. ‘대선필승대회’인만큼 일각에서 우려하는 ‘분열’은 없을 것이라고 했지만 서로를 향한 우회적인 공격은 계속됐다.

    박근혜 “한나라당 수없는 고비 넘어 이 자리까지 왔다” 당 기여도 강조

    박 전 대표는 ‘탄핵역풍’으로 풍전등화의 위기에 놓인 당을 구해낸 ‘당 기여도’를 강조했다. 그는 “지난 천막당사 시절 우리에게 희망조차 없는 것 같았다. 곧 없어질 정당이라는 조롱까지 들어야 했다”며 “한나라당은 정말 어려운 고비를 수없이 넘고 넘어서 오늘 이 자리까지 왔다”고 말했다. 그는 “정들었던 당사를 매각하고 당의 하나뿐인 재산인 천안연수원도 국가에 헌납했다. 함께 고락을 같이 했던 사무처 식구들을 40%나 구조조정 해야 했고, 지방선거를 앞두고 당의 중진의원들을 우리 손으로 검찰에 고발하는 가슴 아픈 결정도 내려야 했다”며 “지난 총선과 보궐선거, 작년 지방선거의 대승까지 다시 태어난 한나라당은 승리의 역사를 써 왔다”고 했다.

    그는 이어 “(한나라당의 대선승리) 길에 분열은 있을 수 없다. 우리 모두 한 마음 한 뜻이 돼야 한다”며 “우리 모두가 한 몸이 돼 뛴다면 한나라당의 대선승리를 반드시 이룰 것이다. 여러분의 경험과 지혜가 정권 창출을 향해 가는 나침반이 되고 등대가 되기를 진심을 소망한다”고 말했다. 박 전 대표는 이날 참석한 대선주자들 중 유일하게 축사 도중 참석자들로부터 세 번의 박수를 받아 눈길을 끌기도 했다.

    이명박 “무엇보다 당이 화합하고 단합해 정권교체 해야” ‘화합’ 강조

    이 전 시장은 무엇보다 당의 단합을 강조했다. 그는 “(국책자문위 행사에) 대선후보들을 초청한 것은 국민과 당원들이 ‘잘못되면 어떻게 하나’라고 걱정하는 것 때문에 한마디 하라는 것으로 생각한다”며 “2007년 대선은 대한민국의 큰 방향을 결정짓기에 예사로운 선거가 아니다.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그는 “당이 무엇보다 화합하고 단합해 국민들에게 염려를 끼치지 않고 정권을 교체하는 일에 앞장서겠다. 여러 대선후보들과 함께 나가도록 하겠다”고 했다.

    그는 국책자문위가 정책세미나 주제로 안보와 경제 문제로 잡은 것이 시의적절했다고 칭찬하며 “국민들이 안보와 경제 두 축을 걱정하고 있기 때문에 건강한 보수 정당인 한나라당에 기대를 갖는 것 아니냐. 막중한 책임감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정권을 잡은 다음 5년의 국정운영을 어떻게 할 것인지 준비하는 것도 정권을 찾아오는 것만큼 중요하다”며 “정권 잡는 준비와 잡은 이후 국정 5년 준비를 철저히 해 국정 5년 비전을 국민에게 제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날선 손학규 “위기의 본질은 이 세만 몰고 가면 승리한다는 안일한 자세” 비판

    공격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는 손 전 지사의 축사에는 날이 서 있었다. 손 전 지사는 “이 자리에 있는 한 사람 한 사람이 과연 제대로 (정권교체가) 될까하는 우려와 걱정을 숨기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거기에는 당이 깨지지 않을까 하는 염려와 이 중 몇 사람이 뛰쳐나가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있다”며 “그러나 가장 걱정해야 될 것, 위기의 본질은 우리가 다 이겼다고 하는 그런 안일한 자세”라고 비판했다.

    그는 “지금 이 세만 몰고 가면 승리는 우리의 것이라는, 자칫 잘못된 길로 빠지기 쉬운 오도된 자신감이다. 이것을 가장 경계해야 한다”며 “지난 두 번의 대선에서 한나라당은 표가 아닌 시대에 졌다. 이번 12월 19일 대선에서도 시대를 거머쥐는 정신과 능력을 갖지 못하면 국민의 외면 속에서 이 나라를 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과거 사고방식, 권위주의, 개발시대 냉전논리에서 헤어나지 못한다면 국민들은 호락호락하게 한나라당에 정권을 맡기지 않을 것”이라며 “국민들은 과거의 공에만 박수를 치지 않는다”고 박 전 대표와 이 전 시장을 겨냥했다.

    원 의원은 “경선 시기와 방식을 둘러싼 논의를 빨리 끝내고 국민들이 더 지루해하기 전에 국민들의 밥상을 어떻게 더 풍부하게 할지 정책 경쟁을 하자”고 했고 고 의원은 “당원들이 대통령 후보도 자기 손으로 뽑지 못한다면 무슨 당원이냐. 300만명 당원 뜻을 다 반영해야 한다”며 ‘선거인단 300만’을 주장했다.

    당 국책자문위는 이날 대선필승대회를 통해 “국민의 여망인 정권교체를 확실히 이룬다”는  원론적 수준의 결의문을 채택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