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향신문 22일자 오피니언면에 언론인 이광훈씨가 쓴 '도요새와 조개의 동반몰락'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달력에 동그라미까지 그려놓고 한나라당의 집권을 학수고대하던 사람들이 ‘혹시나’하며 우려하던 사태가 드디어 터졌다. 어째 너무 잘 나가는 것 같더라니, 마침내 검증이니 뭐니 해서 집안 식구들끼리 삿대질하며 다투는 소리가 담장 밖으로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국회의원으로 있을 때 보좌관을 지냈다는 인사는 이 전 시장이 위증교사와 살해협박을 했다며 연일 ‘왕년의 주군’을 공격하고 있다.

    이 전 시장측은 전 보좌관의 배후로 박근혜 전 대표를 지목하고 있지만 박 전 대표쪽은 펄쩍 뛰고 있다. 그러나 배후가 있든 없든 후보 검증론으로 빚어진 한나라당의 내분은 이제 당의 존립까지 위협하는 내전(內戰) 단계로 치닫고 있다. 벌써부터 누가 언제 어떤 명분을 내세워 당을 깨고 나갈 것인가를 놓고 입방아를 찧는 사람들까지 나오고 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동안 간판은 몇 차례 바꾸어 달긴 했지만 한나라당은 당내 경선과정이나 결과에 불복하고 당을 뛰쳐나간 후보에게 발등을 찍혔던 전력을 몇 차례나 갖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한가지 위안이 있다면 경선에 불만을 품고 당을 뛰쳐나간 후보들이 지금까지 정치적으로 성공한 사례가 단 한건도 없었다는 점이다.

    -‘한나라 내전’ 당 존립 위협－

    이명박씨의 국회의원 시절 보좌관이었던 인사는 자신의 폭로가 대통령 후보로서의 적절성을 따지는 과정이라며 대통령을 하려는 사람은 무엇보다 정직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밖으로 내세운 이같은 명분 뒤에는 군데군데 사적인 원한의 편린들이 엿보인다. 무엇이 얼마나 섭섭했기에 어제의 주군을 향해 비수를 뽑게 되었는지 자세한 사정은 알 길이 없지만 이 전 시장으로서는 ‘믿는 도끼’에 발등 찍혔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애를 낳아봐야 보육을 얘기할 자격이 있다”느니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국가 지도자는 경제 전문가가 아니라 경제지도자”니 해서 티격태격하던 두 예비 주자들간의 말싸움이 이제는 본격적인 정쟁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다. 한나라당의 집권을 학수고대하던 장삼이사들의 우려도 바로 이것이다. 당내 경선에서부터 진흙탕에서 뒹굴고 나면 정작 본선에서는 힘 한번 제대로 써보지 못한 채 탈락, 또 삼수(三修)를 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다.

    굳이 고사성어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역수(易水)가에서 서로가 서로를 물고 끝까지 버티던 도요새와 조개의 운명이 어찌 되었는지는 세상이 다 아는 일이다. 또한 도요새와 조개의 끝없는 싸움에서 누가 어부지리(漁父之利)를 얻게 되리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두 선두주자의 싸움을 싸늘한 눈으로 바라보며 회심의 미소를 짓는 세력이 있다는 얘기다.

    사정이 이런데도 한나라당 지도부는 후보검증은 당 공식기구에서 한다는 공자 말씀만 되풀이하며 날짜만 보내고 있다. 불씨를 던져 당내 분란을 일으킨 당원을 징계하겠다는 얘기만 할 뿐 후보검증을 누가 언제 어떻게 하겠다는 얘기는 없다. 이처럼 당이 팔짱끼고 이 눈치 저 눈치 보는 사이에 바깥에서는 언론을 통한 ‘사적 검증’이 기세를 올리고 있다.

    하기야 여론조사에서 선두를 달리는 거대야당의 대선주자가 티격태격할 수 있는 것은 정작 본선에서 승부를 겨룰 여당쪽 후보가 아직까지 오리무중이기 때문이다. 중국의 국공(國共)합작에서 보았듯이 공통의 증오는 빙탄(氷炭)관계도 손잡게 한다는 말이 있지만 공통의 증오를 뿜어낼 맞수가 정해지지 않은 대선구도가 집안싸움을 더 부추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언론 통한 ‘사적(私的) 검증’ 기세－

    게다가 참여정부의 실정으로 한나라당에 대한 지지도가 계속 선두를 달리고 합계 60%를 넘나드는 두 후보의 여론조사 결과도 내분을 부추기는 원인의 하나다. 두 예비주자 모두 당내 경선에서만 이기면 본선은 따논 당상이나 다름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여론조사가 덫이 된다는 얘기도 그래서 나온다.

    한 마디로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술수와 권모로 상대방의 단점과 약점을 들추어내는 추악한 싸움에서는 어느 누구도 승자가 될 수 없다. 설사 그런 싸움에서 이겼다 해도 그는 승자가 아니라 같은 패자일 뿐이다. 한나라당의 두 선두주자는 잇단 전쟁에 이기고도 그 희생이 너무 커 승리가 무의미해졌다는 ‘피로스의 승리’를 교훈으로 삼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