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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17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김창균 논설위원이 쓴 '미다스의 손, 노무현의 손'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대통령 4년 중임제에 대한 국민 여론은 괜찮은 편이었다. 2005년, 2006년 실시된 여러 조사에서 개헌 찬성이 60% 내외였다. 노무현 대통령이 개헌 카드를 꺼낸 배경에는 개헌에 대한 여론이 호의적이라는 믿음도 있었을 것이다. 개헌을 야당이 받아주면 대통령이 한 건(件)을 하게 되고, 받아주지 않더라도 나쁠 게 없다. 대통령과 여당은 국민 지지를 받는 개헌과 한편이 되고, 야당은 그 반대편에 서게 된다. 그래서 개헌 정국을 굴려가면 여야(與野) 간 지지율 격차를 좁힐 수 있다는 계산을 했음직하다.
그런데 정반대 일이 벌어졌다. 대통령 지지율 10%가 개헌 찬성 60% 쪽으로 움직이는 대신에 개헌 찬성 60%가 대통령 지지율 10% 쪽을 향해 움직였다. 대통령의 개헌 제안 당일 실시된 8개 여론기관 조사에서 노무현 정권의 개헌 추진을 찬성한다는 응답은 20~30%였다. 개헌 자체엔 찬성하던 상당수 국민들이 노 대통령이 앞장서는 ‘노무현표 개헌’에는 반대로 돌아섰다는 얘기다.
노 대통령은 작년 8월 언론사 간부들을 만나 자신의 낮은 지지율에 대한 고민을 털어놨다. “내 지지율이 낮으니 옳은 정책도 훼손된다. 내 지지율이 낮아서, 내가 미워서 정책을 반대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그래서 지지율 걱정을 한다”고 했다. 노 대통령 특유의 피해의식으로 들릴지 모른다. 그러나 실제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
노무현 정부가 밀어붙인 사학법(私學法) 개정은 처음엔 국민들로부터 환영받는 분위기였다. 그래서 사립학교 재단들의 법 재개정 요구에 대해 2005년 12월만 해도 찬성 35%, 반대 56%였다(한국사회여론연구소). 그러나 2006년 5월 지방선거 참패로 대통령 지지도가 10%대로 떨어진 시점에선 사학법 재개정에 대한 찬반 여론이 팽팽해졌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재개정 찬성이 63%로 반대 20%의 세 배를 넘어섰다.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 및 단독 행사에 대해 2005년 11월엔 찬성 58%, 반대 41%였다(한국리서치). 그러나 2006년 9월엔 반대가 66%, 찬성이 29%로 정반대 결과가 나왔다(갤럽). 남북 정상회담도 회담 자체에 대해선 북핵(北核) 해결을 위해 필요하다는 의견이 70% 이상이다. 그러나 개최시기(時期)는 현 정권보다 차기 정권으로 미루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정책만 그런 것이 아니다. 노 대통령과 같은 편으로 알려지면 무조건 국민 여론이 나빠진다. 대기업 이미지는 “이전보다 좋아졌다”는 응답이 많은 반면, 노조 이미지는 “나빠졌다”(46%)가 “좋아졌다”(13%)의 세 배 이상이다(한국사회여론연구소 2006년 11월). 주변국 중 가장 호감이 가는 나라는 2005년 8월 중국(44%)에서 2006년 9월 미국(47%)으로 바뀌었다.
대통령은 국민 지지를 자본 삼아 나라 일을 벌인다. 노 대통령도 한때 남부럽지 않은 자본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그 많던 자본을 전시작전권, 대연정(大聯政), 양극화 같이 나라 곳간과 기둥을 들어 먹는 일에 모두 탕진해 버렸다. 가장(家長)이 엉뚱한 사업을 벌인다면서 몇 차례 집안 살림을 거덜내고 나면 식구들은 “그만 일 좀 벌이고 얌전히 있어줬으면…”하는 심정이 된다. 그 다음엔 그럴 듯한 사업 계획을 내밀며 “한 번 더 밀어 달라”고 해도 소용이 없다.
그 무엇이든 노 대통령이 가까이만 다가가면 국민은 등을 돌리고 싸늘하게 외면한다. 그렇다면 노 대통령은 나라를 위해 정말 필요한 일에 대해선 새로 손을 대지 말고 차기(次期) 대통령 몫으로 넘겨주는 것이 도리다. 당장 개헌만 해도 노 대통령의 손이 닿는 순간 숨이 완전히 멈추지 않았는가. 그리스 신화 속 미다스 왕의 손길이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딸을 차가운 황금덩어리로 만들어 버렸듯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