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민일보 8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백화종 논설위원이 쓴 <'불량상품'이 가로되>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정초부터 오물을 한 바가지 뒤집어썼다. 불량상품 제조자로 낙인찍혔다. 이 나라 최고 지도자인 대통령으로부터.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주 고위 공무원들과의 오찬 자리에서 언론을 ‘감시받지 않는 유일한 권력’ ‘흉기처럼 사람을 상해하고, 책임도 지지 않는 불량상품’이라고 매도했다.

    언론이 흠결 없는 성경이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다. 언론이 대개 취재원으로부터 좋은 소리 못 듣는 것도 익히 경험해 왔다. 특히 노 대통령이 언론에 비우호적이라는 건 삼척동자도 아는 일이고, 지난번 할 말은 하겠다고 했을 때 언론에 대한 공세가 심상치 않을 것임을 짐작은 했었다.

    속된 말로 빈총도 안 맞느니만 못하다고 한다. 새삼스런 것도 아니고 그러려니 해보지만 그래도 언짢다. 이 직업 30여년에 들어본 고위 인사의 언사 중 가장 고약하지 싶다.

    그렇다고 대거리할 생각은 없다. 정력 낭비일 뿐 얻을 게 없고 더 한 막말이 돌아올까 두려워서다. 대신 노 대통령 역성으로 들릴 말을 좀 해볼까 한다. 그리하면 ‘언론=불량상품’이라는 그의 인식이 눈곱만큼이나마 바뀔지 누가 알겠는가.

    이 정권이 하는 일 중 국민에게 인기가 있을 법한 것들은 모두 대선을 겨냥한 선심정책, 포퓰리즘 (대중영합주의)으로 몰아 반대하는 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군 복무기간(썩는 기간이라는 표현은 적절치 않고) 단축 검토, 남북 정상회담 가능성 등을 놓고 주로 보수 쪽이 보이는 태도를 두고 하는 말이다.

    기자는 군 복무기간을 단축해야 한다거나 남북 정상회담을 추진해야 한다는 얘기를 하자는 게 아니다. 대선을 앞두고 있기 때문에 그것들을 지금 하는 것에 반대하며, 하더라도 다음 정권에서 해야 한다는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는 얘기다.

    노 정권이 비록 지지율 바닥이지만 금치산 선고를 받은 것도 아닐진대 남은 임기 1년여 동안 손 묶어 놓고 국정을 최소한으로 관리만 하라는 것은 부당하다. 특히 정권의 반대쪽 사람들일수록 남은 1년이 짧지 않으며 매우 중요한 시기임을 강조하면서 말이다. 따지고 보면 거의 매년 선거다. 선거를 앞두고 있으니 중요한 일은 하지 말라면 정부가 일할 기간은 별로 없다.

    정부가 대선을 앞두고 선심정책을 펴거나 인기몰이를 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도 사실 무리다. 막말로 유권자 마음에 드는 정책과 인물을 내놓고 표를 모아 권력을 잡는 게 선거의 본질이고, 어찌 보면 그게 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과정이다.

    또 지금은 대통령 단임제인 데다 목하 돌아가는 여권의 판세로는 이 정부가 내놓는 선심정책이나 국면 전환용 정책이 반(反)한나라당 정치세력의 선거공약 등으로 채택되거나 원용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뿐만 아니라 위에서 예로 든 군 복무기간 단축이나 남북 정상회담이 선거에서 반한나라당 쪽에 반드시 득이 된다는 보장도 없다. 특히 포퓰리즘 운운하는데 지금까지의 행태로 보나 지지율 10% 내외라는 사실로 보나 효과 면에서 이 정권과는 거리가 먼 얘기가 아닌가 싶다.

    결론적으로 정권이 하는 일에 반대하는 건 좋으나 반대의 이유가 “선거를 앞둔 선심정책이라거나 포퓰리즘이라거나 국면 전환용이기 때문”이라고 해서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따라서 군 복무기간 단축이나 남북 정상회담에 반대하려면 그것들이 안고 있는 본질적인 문제나 폐단을 들어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

    해야 할 일이고, 해서 국민이 좋아할 일이면 내일이 선거라도 서둘러 해야 한다. 그 일들이 우선 먹기는 달지만 그 안에 나라와 국민에게 해악을 끼치는 독약이 들었는지는 유권자들이 판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