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앙일보 2일자 오피니언면 '중앙포럼'란에 이 신문 전영기 차장 대우가 쓴 <2007년 대선과 `노무현 학습효과`>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달랑 한 장 남아 있는 12월치 달력을 봅니다. 올해 한국과 한국인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줬던 사건.사고들을 생각해 봅니다. 오늘을 만들어 낸 씨앗을 찾아보려는 탐색입니다. 씨앗을 탐색하면 내일을 만들어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올해의 가장 큰 뚜렷한 사건 사고는 '노무현의 몰락'입니다. 대통령의 정치적 몰락만큼 한국 사회에 충격을 주는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의 몰락은 한국, 한국인의 몰락이기도 합니다. 그러기에 한국인의 마음 한편엔 몰락의 비애 같은 게 있어요.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세요. 절망적일 필요는 없습니다. 대통령의 정치적 몰락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때때로 있는 일이니까요. 특히 한국 대통령의 몰락은 경기 순환 사이클보다 정확하게 5년 주기로 찾아오는 겁니다.

    국가의 대표이자 헌법 수호자가 몰락해도, 국군 최고사령관이 몰락해도, 유권자가 가장 사랑했던 사람이 몰락해도 그걸 받쳐 내는 체제의 든든한 힘! 그런 힘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거기에 한국과 한국인의 대견함과 희망이 있지 않을까요.

    선거로 국가 리더를 교체하는 정치, 시장의 본성을 존중하는 경제, 표현과 논쟁이 생동하는 문화가 체제의 든든한 힘이지요. 이 체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예를 들어 북한 같은 곳이 절망적인 사회죠. 한국은 든든한 체제가 잘 작동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매듭이 있기에 유연하면서 단단한, 대나무 같은 사회입니다. 국가 리더가 몰락하는 충격마저 흡수하는 스펀지 체제이지요.

    몰락의 주인공인 노 대통령도 필요 이상으로 절망할 일이 아니에요. 이 체제의 혜택을 가장 많이 받은 사람이 본인임을 직시하십시오. 감사할 일이 많다는 얘깁니다.

    비주류, 소외 지대에서 한국의 정상에 오른 주인공 아닙니까. 오로지 유권자의 표로만 평가받는 공정하고 자유로운 선거 체제 덕분이지요.

    그가 한 일이 다 잘못된 것도 아닙니다. 권력을 남용했던 국정원, 검찰 같은 권력기관을 비권력화한 건 아주 잘한 겁니다. 자신과 이회창 후보에 대해 전면적인 대선자금 수사를 허용한 것도 기념비적인 일이었죠. 정경 유착의 토대를 무너뜨렸어요.

    앞으로 14개월, 정상에서 내려올 때도 노 대통령은 체제의 혜택을 볼 겁니다. 어느 누구도 마감 시간을 앞당겨 내려오라고 감히 요구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때가 되면 거기에 맞춰 내려오시면 됩니다.

    아직도 노 대통령이 몰락을 반복할 때마다 절망하는 습관을 지닌 분이 계십니까? 이젠 희망 찾기 연습을 하세요. 대통령의 몰락이 체제의 몰락은 아니지 않습니까.

    현직의 몰락은 차기 대통령에 대한 기대와 염원을 낳습니다. 이런 기대와 염원이 간절하면 사람들의 생각이 하나로 모아집니다. 월드컵을 응원한 민심처럼 말이죠.

    2007년 민심이 하나로 모이고 있습니다. 차기 대통령을 고를 때 '이것만은 안 되겠다'는 배제의 기준이 형성되고 있어요. '관념'과 '독선'의 인간을 선택에서 제외하자는 기준입니다.

    노 대통령의 몰락도 관념과 독선에서 시작됐습니다. 그의 관념은 비판에만 유능하고 현실에선 무능했어요. 쓰나미 같은 현실이 덮칠 때조차 그는 현실의 바깥에 있었습니다. 때론 임진왜란을, 때론 대원군의 역사를 들먹이며 '현실에 관한 관념적 평론'을 늘어놓기 일쑤였죠.

    현실의 어깨를 짚어내지 못하는 말과 논리는 허황합니다. 답답하고 공허하죠. 사람들은 자기 세계 속에 갇혀 도대체 빠져나올 줄 모르는 대통령의 관념성에 진저리를 쳤습니다. 그의 관념 지향성은 독선을 낳았습니다. 다른 관념들, 엄연한 현실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현실 권력자의 관념적 독선이기에 파괴력도 컸습니다.

    차기 대선 주자들은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2007년 유권자는 관념적인 언어를 되풀이하는 사람, 자기 의(義)에 사로잡힌 독선적인 사람을 배제할 겁니다. 그들은 가장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선택을 할 겁니다. 2002년 유권자는 5년 만에 이렇게 바뀌었습니다. 일종의 '노무현 효과'랍니다.전영기 정치부장 대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