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앙일보 4일 사설 '자가당착에 빠진 대통령의 북핵 인식'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북한 핵실험 뒤 노무현 대통령의 말이 오락가락하고 있다. 노 대통령은 핵실험 직후 "포용정책만을 계속 주장하기는 어렵다" "북한이 말하는 안보 위협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거나 대단히 과장된 것"이라고 잇따라 발언해 북한에 분명한 경고 메시지를 보냈다. 그러나 20여 일간의 침묵을 거쳐 노 대통령은 북한 핵무기의 위협을 "과장하지 말아야 한다"고 정반대로 말했다. "핵실험으로 안보 위협이 증가된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과연 북한이 핵무기로 선제 공격할 것인가를 냉정하게 짚어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해 북한의 핵 보유가 위협이 아니라는 인식을 드러냈다. 노 대통령은 또 북한의 핵무기 개발로 "한반도의 군사적 균형이 깨질 것인가. 현재로서는 깨지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한국군, 한.미 동맹, 국제사회의 역량으로 군사적 균형이 깨지지 않도록 할 것이다"고 강조했다. 이 군사적 우위를 바탕으로 "언제나 평화를 유지해 나갈 것이고 이를 위해 북한과 관계를 우호적으로 유지해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노 대통령의 안보관은 매우 특이하다. 전 세계 어느 나라도 핵을 가진 상대에게 재래식 무기로 대항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핵무기를 전략무기라고 하는 이유는 전쟁의 판도를 한순간에 바꿀 만큼 파괴력이 크기 때문이다. 인도의 핵실험이 곧바로 파키스탄의 핵실험을 불러온 사례가 있지 않은가. 자주국방을 그토록 주창하던 노 대통령이 한.미 동맹과 국제사회 역량에 기대어 북한에 대한 군사적 우위를 유지할 것이라고 말을 바꾼 것도 핵무기의 위험성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현 정부가 취해 온 맹목적 포용정책은 한.미 동맹을 뿌리째 흔들고 있고 국제사회에서 한국을 신뢰할 수 없는 나라로 추락시켰다. 스스로의 논거(論據)를 행동으로 부정하는 자가당착(自家撞着)에 빠져 있는 것이다. 이런 자가당착적 상황을 외면하면서 "언제나 평화를 유지할 것이고 북한과 우호적 관계를 유지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의도와는 달리 '핵무기를 가진 북한이 해 달라는 대로 모두 해주면 북한이 우리를 공격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는 셈이다.

    북한 핵실험에 대한 노 대통령의 첫 반응은 상식적인 동시에 정당한 것이었다. 그런데 20여 일 만에 억지 논리를 개발해 결국 북한의 핵 보유를 공인(公認)하고 '노예(奴隸)적인 남북관계'를 유지할 것이라고 천명하기에 이른 것이다. 우리는 노 대통령이 왜 이처럼 말을 바꾸게 됐는지 어리둥절해 하는 국민에게 납득할 만한 설명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북한의 노예가 되기를 바라는 국민은 아무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포용정책이나 햇볕정책이 한반도 긴장 완화에 효과가 전혀 없었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북한의 핵실험은 일방적이고 맹목적인 포용정책이 한계에 봉착했음을 폭로했다. 북한에 대한 편집증(偏執症)적인 '짝사랑'이 해피엔딩으로 끝나지 않을 것임을 웅변(雄辯)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억지를 부리는 위정자(爲政者)들 때문에 국민은 불안하다. 대통령은 국민의 불안감을 헤아리고 어루만져줄 생각은 도무지 없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