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28일자 사설 '386 간첩단 수사 도중 물러나는 국정원장'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김승규 국정원장이 26일 사의를 밝혔고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였다. 국정원은 “대통령이 외교안보 진영을 새롭게 구축하는 데 부담드리지 않기 위해서”라고 설명하는 보도자료를 냈다.

    북한 핵실험 후 국방·통일 장관이 물러나겠다고 밝히는 등 외교안보 라인 개편 움직임과 함께 국정원장 교체설도 나돌았던 게 사실이다. 그렇다 해도 김 원장의 사의 표명은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국정원은 지난 24일 386 운동권 출신들을 간첩혐의로 체포했고 26일엔 이들의 혐의가 공개됐다. 국정원이 여러 해 추적해 왔다는 대형 공안사건이 한창 굴러가는 와중에 수사 총책임자가 그만두겠다고 한 것이다.

    사퇴 시기가 미묘하다 보니 국정원 수사에 대한 정권 내 386들의 반발이 어떤 영향을 미친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간첩 혐의자들은 80년대 운동권 경력을 공유한 정치권과 청와대 386 인맥과 넓은 교분을 가진 사람들이다. 실제로 국정원에선 “정치권 386들로부터 압력이 세게 들어온다. 386 전체가 국정원을 공격하는 양상이다”는 말도 흘러나온다. 전·현직 간부가 연루된 민노당은 연일 국정원 앞에 몰려가 시위를 벌이고 있다. 25일 국정원 앞에서 시위한 민노당 사무부총장은 이튿날 아침 체포됐다. 간첩 혐의자가 먼저 체포된 동료의 수사를 중단하라고 큰소리치는 황당한 일까지 벌어진 것이다.

    이 정권 들어 대공수사는 가혹한 여건 속에 있었다. 대통령부터 “국가보안법은 칼집에 넣어 박물관으로 보내야 한다”고 했다. 2004년 이후 전국 15개 검찰청의 공안과가 문을 닫았다. 6·25를 북한의 통일전쟁이라고 말하고 다닌 교수를 구속하려다 검찰총장이 쫓겨나기까지 했다. 이 정권의 국정원이 이번 ‘386 간첩단 사건’ 수사에 착수했다는 사실 자체가 이례적으로 느껴질 정도다. 그래서 김 원장이 자신의 교체가 임박해지자 수사를 독려하고 밀어붙여 쐐기를 박아놓고 물러나려 했다는 관측까지 나오고 있다.

    대통령은 대공수사 최고책임자가 386 운동권에 부대껴 밀려났다는 의혹을 받고 싶지 않다면 정치적 바람을 타지 않고 철저하게 수사를 마무리 지을 수 있는 인물을 후임으로 임명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