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4일자 오피니언면 '아침논단'란에 허동현 경희대 사학과 교수가 쓴 <‘끼리끼리’ 권력은 반드시 부패한다>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노무현 정부의 인사정책을 둘러싼 논란이 점입가경이다. 능력과 도덕성에 문제가 있는 함량 미달의 가신(家臣)세력들로 요직을 채우는 ‘코드 인사’요 ‘낙하산 인사’라고 주류언론과 한나라당이 질책하면, 국정 운영을 대통령과 함께 책임질 수 있는 이들을 골라 쓰는 ‘책임 인사’이자 유능한 외부전문가를 모신 ‘열린 인사’라고 청와대는 항변한다. 국민 대다수가 공감하는 국가 정책을 펼 수 있는 자질과 전문성을 갖춘 이들을 기용한다면 ‘책임 인사’가 맞을 것이고, 지지율이 10% 남짓한 대통령의 생각만을 맹종하는 가신들을 쓰는 것이라면 ‘코드 인사’가 옳을 것이다.

    어찌 보면 ‘코드 인사’와 신라시대의 골품(骨品)제나 고려시대의 음서(蔭敍)제는 고위직 임용의 준거를 이념과 핏줄로 삼는 점이 다를 뿐 능력을 도외시한 인사라는 점에서 닮은 꼴이다. 조선시대에도 조상의 음덕으로 벼슬길에 나가는 음서제가 있었지만 고려시대와 달리 과거에 급제하지 못하면 아무리 권세가의 자제라도 미관말직에 머물 수밖에 없도록 제한을 두었다. 이처럼 전근대신분사회에서도 권력 독점을 막기 위한 제도적 정화 기능이 강화되는 쪽으로 역사는 흘러왔다. 그렇다면 다원화된 시민사회의 건강성을 지키기 위한 다양한 경보장치들이 잇따라 경고음을 울리는 참여정부의 인사정책은 역사 발전의 순로(順路)를 거스르는 시대착오가 분명하다. 혈통이든, 지연과 학연이든, 정치이념이든 어떤 명분으로건 끼리끼리 권력을 독식한 정치세력이 부패하지 않은 사례는 역사 속에서 찾아 볼 수 없다. 닫힌 조직이 썩는 데 예외는 없었던 것이다.

    옛 사람의 지혜는 우리의 앞길을 비춘다.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라는 말마따나 인사의 여하가 국가의 성쇠를 좌우한다. 용인술(用人術)의 차이로 천하를 얻고 잃은 유방과 항우의 옛이야기에 참여정부의 인사정책을 비추어 보자. 발산개세(拔山蓋世)의 용맹을 자랑한 항우에 비해 유방의 면면은 초라하다. 해하(垓下)의 한판 승부에서 사면초가(四面楚歌)의 항우를 꺾은 한신이나 왕조의 기틀을 굳건하게 세운 진평은 본래 항우 밑에 있었지만 중용되지 못했다. ‘반진(反秦)’의 기치를 세울 때부터 자신과 함께한 가신들의 반발을 무릅쓰고 이 둘을 요직에 기용한 유방은 천하를 거머쥐었다. ‘코드’에 맞는 자기 사람만을 고집한 항우와 달리 천하를 얻기 전에 먼저 인재를 구한 유방의 ‘열린’ 인사가 거둔 성취였다. 그렇다면 인사 대상자가 가신인지 여부가 ‘낙하산’인지 ‘열린’ 인사인지를 재는 관건일 터이다. 그러나 도덕성과 전문성 시비로 논란을 빚은 낙점자들은 이미 정권 출범 이후 주요 요직을 역임하거나 후보자로 추천된 적이 있던 청와대의 막료(幕僚)들이 대다수다. 아랫돌을 빼서 윗돌을 괴는 하석상대(下石上臺)식 코드 인사라는 비난을 피할 길이 없어 보인다.

    물론 노 대통령의 말마따나 과거의 어떤 정권도 낙하산 인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역사를 반드시 넘어서야 할 ‘부끄러운 역사’로 규정해 과거의 잘못된 관행을 청산하는 데서 정권의 존재 이유를 찾은 현 정부만은 그럴 수 없다. 낙하산 인사는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권위주의 정권 시대의 잘못된 인사 행태가 분명하다. 넘어서겠다고 공언한 구시대의 폐습을 답습하겠다니 그야말로 어불성설(語不成說)이 아닌가? 구세력과의 제휴를 통해, 즉 3당 합당과 DJP 연합을 통해 정권을 잡은 김영삼 정부와 김대중 정부는 집권을 도운 세력의 이익에 결정적으로 거스르는 인사 개혁을 원천적으로 할 수 없었기에 그랬다고 치자. 하지만 노무현 정부는 집권에 신세 진 정치세력이 없지 않은가? 보은해야 할 정치세력이 있다면 탄핵 위기에서 구해준 국민들이 있을 뿐이다.

    또한 정부의 코드에 맞춘 낙하산 인사 관행화는 노무현 대통령의 취임사를 정면으로 부인하는 자가당착을 범한다. “반칙과 특권이 용납되는 시대는 이제 끝나야 합니다.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자가 득세하는 굴절된 풍토는 반드시 청산되어야 합니다. 원칙을 바로 세워 신뢰사회를 만듭시다.” 초심으로 돌아가 반구저기(反求諸己)하길 바랄 뿐이다. 내 눈의 들보를 먼저 빼내어야 남의 눈의 티를 뺄 수 있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