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8일자 오피니언면에 실린 강천석 주필이 쓴 칼럼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북한은 5일 새벽 3시32분 첫 미사일을 발사했다. 역시 인공위성이 아니었다. 스커드 미사일이었다. 북한이 마지막으로 스커드 미사일을 쏘았던 게 1988년이다. 이번 발사는 18년 만이다.

    일본 안보당국은 발사 20분 후인 새벽 3시52분 이 사실을 고이즈미 총리에게 보고했다. 고이즈미는 취침 중이었다. 보고와 동시에 긴급경보도 함께 발령했다.

    미국은 발사 9분 후인 3시41분 한국에도 이 사실을 통보했다. 군은 이로부터 9분 후인 3시50분 정보분석 요원 소집, 29분 후인 4시 10분엔 국방장관 보고, 79분 후인 5시 정각엔 국방장관 주재의 위기관리위원회를 열었다. 그러나 이 순간에도 북한 미사일 발사 정보는 군 최고 통수권자인 대한민국 대통령 귀에 닿지 않았다. ‘스커드 미사일과 노동 미사일은 직접적 안보 위협이 아니라 해서 발사 배경에 대한 분석까지 모두 마친 다음에 대통령에게 보고’하도록 되어 있어서다. 스커드 미사일은 550㎞를 날아가고, 노동1호 미사일은 1000~1300㎞를 날아간다. 스커드 미사일을 이번처럼 북한의 강원도 안변군 깃대령 발사대에서 발사할 경우 제주도를 제외한 남한 전역에 도달할 수 있고, 노동미사일은 발사기지에 상관없이 남한 전역을 타격할 수 있다.

    북한은 4시10분 다시 노동미사일을 쏘았다. 이 미사일은 805㎞를 날아갔다. 이 정보도 대통령 침실 문을 두드리진 못했다.

    다시 일본 상황이다. 총리 보고 8분후인 4시에 총리 관저에 대책실이 만들어졌고 4시 5분 경찰청에 대책실이 설치됐다. 4시30분부터 다음 총리로 확실시되는 아베 관방장관을 비롯, 외무장관, 방위청장관 등 내각 핵심 멤버들이 속속 총리 관저에 도착했다. 4시40분 일본 공영방송 NHK는 북한 미사일 발사 뉴스를 긴급 보도했다. 5시엔 총리 관저에서 관계장관 대책회의가 시작됐다.

    5일 새벽 3시 무렵 여객기 한 대가 얼마 안 있어 북한 미사일이 쏟아질 동해의 그 바다 위로 유유히 다가서고 있었다. 시카고를 출발해 인천공항으로 향하는 아시아나항공 OZ 235편이었다. 북한의 첫 미사일 발사 20여 분 전이다. 이 여객기는 북극 쪽에서 들어와 러시아 영공을 지나 잠시 후 북한 미사일이 날아갈 그 하늘을 아슬아슬하게 빠져나갔다. 이 여객기에는 승객 223명, 승무원 12명 총 235명이 타고 있었다. 조종사와 승객들은 북한이 이 하늘로 미사일을 발사한다는 사실은 꿈에도 모르고 있었다.

    정부는 지난 3일부터 감청을 통해 북한이 자기네 어선들에게 이 바다로 출어하지 말도록 명령한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정부는 항공사들에 이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안보 관련 비밀사항이고 더구나 발사 여부도 불확실하다는 이유에서다. 정부는 첫 미사일이 발사된 후에도 발사 사실을 항공사에는 알려주지 않았다.

    아시아나항공 여객기에 뒤이어 대한항공 여객기 4대가 바로 그 상공을 통과했다. 탑승객 총 숫자는 1100명에 이른다. 이 많은 대한민국 국민을 태운 여객기가 아무것도 모른 채 북한 미사일이 쏟아졌던 그 하늘을 가로질렀던 것이다.

    새벽 4시59분, 북한은 대포동 2호 미사일을 다시 발사했다. 첫 스커드 미사일을 발사한 지 1시간27분 지나서였다. 이 미사일은 42초간 날아가다 궤도를 벗어나 일본 홋카이도 서쪽 500㎞ 바다에 처박혔다. 어디로 얼마나 날아갈지 모른다는 위험천만한 북한 미사일다웠다. 이 정보는 8, 9분 지나 청와대로 보고됐다. 청와대도 대포동 2호 미사일은 한국 안보에도 위험하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사정거리가 4000~6000㎞나 된다 해서였을까.

    5시12분 북한 미사일 발사 정보가 마침내 대통령 침실 문턱을 넘었다. 북한이 첫 미사일을 발사한 지 정확히 100분 후였다. 이 100분간 대한민국엔 대통령도 없었고, 국민도 없었다. 아무것도 보고받지 못한 군 최고 통수권자와 아무 보호도 받지 못한 버림받은 사람들이 있었을 뿐이다. 공포의 100분, 무참한 100분, 부끄러운 100분이었다. 국방장관과 청와대 외교정책 수석은 이 시간을 ‘국익에 따라’ ‘정보가 정상적으로 흘렀던’ 100분이라고 이름 지었다.

    북한이 2006년 7월 5일 새벽 3시32분부터 오후 5시22분까지 13시간50분 동안 7개의 미사일을 발사해가며 점검해준 대한민국 안보상황이 이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