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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6일자 3면에 캐나다 웨스턴 온타리오대 킹스칼리지 경제학과 한재동 교수가 쓴 "캐나다선 실패한 정치인 평가 왜 하필 멀로니를 닮으려 하나"는 제목의 글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노무현 대통령은 2일 청와대 정책홍보토론회에서 1990년대 초 캐나다의 집권 보수당이 연방 소비세 제도를 국민의 여론에 반하여 밀어붙인 대가로 선거에서 완패하였지만, 그 세제개혁 덕분에 차기정권이 재정적자를 해소하고 캐나다 경제가 발전하게 된 것으로 말했다고 한다. 당시 캐나다 상황을 최근 한국의 지방선거에서 집권여당의 참패와 같은 선상에서 비교한 것 같다. 즉 노 대통령께서 당시 브라이언 멀로니 총리같이 좋은 정책을 소신있게 펴다가 국민에게 배척을 받았다는 의미다.
멀로니 전 총리와 노무현 대통령 사이에는 표면상 유사점도 많은 것으로 보일 수 있다. 첫째, 두 사람 다 변호사 출신으로 달변이다. 둘째, 멀로니가 대외적으로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고 대내적으로 연방소비세를 도입했다면 노 대통령은 일면 미국과 FTA를 추진하면서 일면 양극화 해소를 위한 국민세금 부담 증가 가능성을 거론해 왔다는 점이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노 대통령께서 멀로니와 자신을 같은 선상에 두는 것은 실수일 것 같아 안타깝기만 하다.
우선 캐나다 경제와 정치에 대한 인용이 사실과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언급된 캐나다 연방소비세는 그 당시나 그 후 언제도 세수 증대의 뚜렷한 효과를 가져오지 못하였다. 장기적으로 캐나다 경제발전에 기여했다는 것은 더욱 논리에 맞지 않는다. 실상 멀로니 정부는 재정지출을 줄이는 데 실패함으로써 집권 내내 재정적자가 오히려 더욱 큰 폭으로 늘어났다. 거기에다 시기적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증세(增稅)는 곧바로 경제불황을 촉발하여 1991년 한 해 국민소득이 1.2% 감소하는 사태가 일어났다. 더욱 심각한 부작용은 소비세가 국민적 합의와 협조 없이, 그리고 징세의 인프라 스트럭처의 정비 없이 밀어붙여진 결과 탈세를 목적으로 하는 지하경제가 독버섯처럼 자라나게 되었다는 점이다. 합의 없는 조세정책, 엉성한 조세기구가 결국 많은 국민을 경제사범으로 만드는 불건전한 사회분위기를 조성하게 된 것이다.
캐나다 국가재정의 수지가 97년에 흑자로 반전하기 시작한 것은 93년 집권한 자유당 정권이 오랜 시간 각고의 노력으로 재정지출 면의 규율과 책임성을 실현했기 때문이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90년의 소비세 도입에 연유한 것이 아니다.
올해 초 캐나다 선거에서는 여야 모두가 이 소비세를 폐지하거나 대폭 줄이는 데 공감함으로써 그 불합리성이 종국적으로 증명된 셈이다. 역진세인 소비세를 통한 증세에 대하여 캐나다의 학계.정계.사회 전반이 이론 면, 정책효율 면, 그리고 사회정의 면에서 각각 줄기차게 반대해 왔다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처음에 옳지 않은 정책은 끝까지 옳지 않은 것이다.
언론보도를 접하고 더욱 안타까운 것은 노 대통령이 스스로 비교한 멀로니 전 총리가 대다수 캐나다인의 마음속에서 '실패한 정치인'으로 여겨지고 있다는 점이다. 반면 소신있게 정책을 펴다가 일시 민심을 잃었지만 시간이 지나 더 크게 국민의 존경을 회복한 지도자는 피에르 트뤼도였다.
멀로니 정권 말기 그 지지도가 역사상 최저수준인 10%선까지 떨어졌고 지금도 여전히 입안에 쓴맛을 남기는 이유는, 그 정책상의 실패가 아닌 도덕적 실패에 있었다. 휘하 정부요인뿐만 아니라 멀로니 자신의 도덕성에 대한 추문이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멀로니는 얼마 전까지 수뢰 혐의로 수사를 받기도 했다. 유죄판결은 받지 않았으나 상당한 금액을 로비스트에게 받은 것이 드러나면서 멀로니 개인의 도덕성에 대한 의구심이 더욱 커졌다.
그런데 하필 노 대통령이 이런 정치인과 자신을 비교한단 말인가? 나는 재외교포로서 국내 상황에 대한 전문지식이 별로 없고, 정치적 얘기를 할 처지에 있지 않다. 다만 모국의 국가수반을 존중하는 한국동포로서, 그리고 캐나다의 경제.정치 상황에 익숙한 학자로서 노 대통령이나 그 누구라도 제2의 멀로니가 되지 말기를 간절히 바란다. 누가 멀로니 정권과 정책에 대한 이런 설익다 못해 그릇된 정보를 대통령께 올렸는지 모르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