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아일보 31일자 오피니언면 '오늘과 내일'란에 이 신문 홍찬식 논설위원이 쓴 칼럼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요즘 교육계의 눈은 서울의 국제중학교 설립 여부에 쏠려 있다. 국제중학교는 100% 영어로 수업하는 학교다. 영훈학원과 대원학원이 3월 서울시교육청에 국제중 설립을 신청한 뒤 공정택 서울시교육감이 적극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전국교직원노조의 반대 운동이 시작됐다.

    전교조 서울지부장이 16일 동안 단식 농성을 벌였고, 60개 단체가 전교조를 지지하며 연합전선을 형성했다. 이에 대해 공 교육감은 최종 결정을 내리지 않은 상태다.

    공 교육감은 학력(學力) 신장을 내걸고 당선된 사람이다. 평등 교육을 지향하는 전교조와 가는 길이 다를 수밖에 없다. 국제중 설립에 대해 전교조는 ‘평준화를 훼손한다’며 반대하고 있고 공 교육감은 인재 육성과 학교선택권 확대, 그리고 조기유학 완화에 도움이 된다는 입장이다.

    여기에 김진표 교육부총리가 끼어들면서 결말에 대한 궁금증을 증폭시키고 있다. 얼마 전 라디오에 출연한 그가 “서울의 국제중학교 설립에 반대한다”고 밝힌 것이다.

    중학교 설립 허가 권한은 시도 교육감에게 있으므로 엄밀히 말하면 그가 관여할 바 아니다. 그렇더라도 교육부총리의 심기를 거스르는 게 득 될 게 없다는 점을 교육감들이 모를 리 없다. 김 부총리도 그 점을 알고 발언했을 것이다. 이래서 싸움은 교육부총리와 전교조가 같은 편이 되어 공 교육감 한 사람을 압박하는 구도가 되어 버렸다.

    정부를 등에 업은 급진적 교원노조의 전면 공격과, 외로운 선택의 기로에 선 학력주의자. ‘코드’와 ‘포퓰리즘’이 그야말로 현란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2006년 한국 교육의 현실을 이보다 압축적으로 보여 주는 장면이 또 있을까 싶다.

    이 대결에 주목하는 이유는 공 교육감이 그나마 참여정부 아래서 교육경쟁력에 대해 할 말을 해 온 인물이라는 점 때문이다. 그마저 전교조의 총공세에 밀리게 되면 전교조는 당분간 거칠 게 없을 것이다.

    참여정부 들어 교육정책은 전교조 뜻대로 움직여 왔다.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부터 시작해서 2008학년도 ‘내신 입시’와 수능시험 등급제 도입이 그랬으며, 개정 사립학교법도 전교조의 밑그림대로 이뤄졌다. 노무현 대통령이 서울대의 통합교과형 논술을 공격해 대학의 백기 투항을 받아 낸 것도 실은 전교조가 문제를 제기하면서 촉발한 것이다.

    전교조가 결사반대하는 교원평가제 역시 시범 실시까지는 이뤄졌으나 ‘형식적 평가’라는 지적이 많은 데다 앞으로 확대 실시로 이어질지 불투명하다. 중고교 시험문제를 공개한다는 간단한 교육부 방침조차 전교조의 반대 때문에 벽에 부닥쳐 있다.

    전교조의 힘은 어디서 나올까. 전교조를 합법화한 교원노조법은 전교조와 교육부총리가 직접 교섭을 하도록 하고 있다. 노사가 협상하는 일반 기업체와 달리 단위 노동조합이 학교 담장을 넘어 시도 교육감과 협상하도록 했을 뿐 아니라 정부를 상대로도 협상할 수 있게 한 기형적인 법률이다. 전교조는 교원이라는 안정적 지위의 방패 속에서 싸울 수 있는 반면 사용자는 뾰족한 대응 수단이 없다.

    흔히 학부모가 나서야 한다고들 하지만 자식을 맡고 있는 교사에게 싫은 소리를 할 수 있는 부모가 얼마나 될 것인가. 전교조의 투쟁력을 거론하기 이전에 원천적으로 힘의 균형이 무너져 있는 것이다.

    전교조를 탄생시킨 계기가 된 1986년 5월의 교육민주화선언이 나온 지 만 20년이 됐다. 빛바랜 선언문에는 ‘교육의 정치적 중립 보장’과 ‘학생 학부모의 교육권 보장’이라는 요구사항이 눈에 띈다. 멀찌감치 정반대의 길로 접어든 전교조에 초심을 요구하는 것은 이제 부질없는 짓이다.

    만약 정권이 교체된다 해도 전교조에 제동을 걸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들의 독주가 길어질수록 국가 장래는 기약할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