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랑이 말보로 담배 피며 피씨방에서 카트라이더에 밤 새우던 시절, 이 땅은 코드왕조 시대였다. 한편 코드왕국의 두 번째 왕 노종은 어느 날 선비 가운데 한 명이 자신을 세종대왕에 비유했다는 소식을 듣고 뛸 듯이 기뻐했다.

    ‘뭣이, 나를 세종대왕에 비유해?’

    ‘예. 주상전하. 전하의 댓글 달기를 놓고 모르는 것들이 왈왈 대는 것은 세종대왕께오서 한글을 창제하셨을 적에 선비란 작자들이 왈왈 대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일갈했다고 하오이다.’

    노종의 곁에 있던 내시 한 명이 얼른 대답했다.

    ‘호오오! 그런 자가 있단 말이냐. 여봐라. 그 자의 이름이 뭔고?’

    ‘이십만이라고 하오이다.’

    ‘뭐라? 이씹만?’

    ‘아이고, 전하. 남들이 들을까 민망하옵니다. 이씹만이 아니오라. 이십만이랍니다.’

    그때 그 내시의 옆에 있던 다른 내시 한 명이 노종의 실수를 교정한 내시의 발을 질끈 밟았다.

    ‘아이고, 전하. 이 자가 입이 방정 맞아 가지고… 맞습니다 맞고요. 그 자의 이름 자를 지은 그 자의 부모들이 잘못한 것입니다요.’

    ‘이씹만이건 뭐건 이름이 뭐가 중하냐. 여하튼 그 자를 지금 당장 내 방에 들라하라.’

    노종은 내시들에게 명령을 내리고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이런 빌어먹을 내시 놈들까지 날 비웃으니.

    노종은 기분이 좀 불쾌했다. 그러나 이내 자신을 세종대왕에 비유했다는 이씹만인지 이십원인지 하는 자를 생각해 보니 기분이 좋아졌다. 그래서 씩 웃는 표정으로 방에 들어갔는데 왠 여자가 앉아 있는 것이 아닌가?

    엉?

    ‘너는 강희빈이 아니더냐?’

    ‘전하!’

    강희빈이 넙죽 절을 했다. 노종은 내시에게 눈짓을 보냈다.

    야, 임마. 눈치있으면 얼른 문을 닫아야지.

    ‘전하. 오랜만이어요.’

    ‘그래, 나도 오랜만이다. 그동안 잘 지냈느뇨?’

    ‘호호호.’

    ‘잘 지냈냐고?’

    ‘호호호.’

    ‘이 년아, 말을 해라, 말을 해.’

    ‘그럼요. 전하가 돌봐주시는 덕택에 잘 지내고 있지요.’

    노종은 강희빈의 옷차림을 쭉 둘러 보았다.

    ‘이 년아, 사람들이 미친 년인줄 알게 왠 보라색 올인이냐.’

    ‘전하, 노란색으로 올인하고 다니면 전하하고 관계가 들통나잖아요.’

    아이고, 골치야.

    노종은 이마를 감싸쥐었다. 하여간 내가 이 년하고 사귀는 걸 마누라가 알면 안되는데.

    ‘이것 봐. 강희빈.’

    ‘예, 전하?’

    ‘여기 함부로 나타나면 안돼. 누구 집안 박살나는 거 보고 싶어서 그래? 나중에 보고 싶으면 내가 찾아갈께.’

    ‘그나저나 전하, 정말 나한테 한성판윤 자리 주는 거예요?’

    한성판윤?

    코드왕조 최대의 파격인사라는 소문을 들어가며 노종은 강희빈에게 한성판윤 자리를 주려고 온갖 노력을 다하는 중이다. 그런데 조정 대신들의 반대에 부딛쳐 고통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 조정의 대소신료들은 하나같이 입모아 나라 국법상 여자를 한성판윤이란 막중한 자리에 앉히는 법이 없다고 반대하고 있었다.

    ‘전하, 요즘 오새발인가 하는 물장수 출신이 등장해서 로비를 하고 다닌다고 하더라구요.’

    강희빈의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하게 맺혔다.

    아이고, 이 년 사람 환장하게 하네.

    ‘걱정마라. 오새발인지 오개발인지 그런 놈에게 한성판윤 자리가 돌아가는 일은 없다. 이 오빠가 다 알아서 해주마.’

    노종은 큰 소리를 뻥뻥 쳤지만 마음대로 될 지는 모르는 일이었다. 그나저나 노종은 진짜 궁금한 게 있었다.

    ‘얘, 강희빈. 너는 속곳도 몽땅 보라색이냐?’

    ‘어머머, 오빠는 뵨오오오오오온태야.’

    강희빈은 콧소리를 내며 노종을 툭툭 쳤다. 강희빈이 툭툭 치기는 했지만 그리 아프지도 않았다. 그리고 싫어하는 눈치도 아니었다.

    그럼 어디 확인 좀 해보자.

    노종이 강희빈의 옷고름을 푸는 순간 노종 집무실의 미닫이 문이 활짝 열렸다.

    이 뇨오오오오오오온!!!

    으헤헤헤헤헤헤헥!!!

    중전 권씨가 보무도 당당하게 들어오고 있는 것이었다.

    ‘오빠, 아니 주상전하 살려주시와요.’

    강희빈이 노종의 등 뒤에 숨었다.

    야, 이 년아. 살려주긴 나도 맞아죽을 판이다.

    ‘주상 전하, 그 뒤에 있는 년을 빨리 내놓으시오.’

    ‘이보시오. 중전.’

    ‘빨리 내놓으시오.’

    살기어린 중전 권씨의 눈총이 노종의 얼굴을 따갑게 했다.

    일단 내가 살고 볼 일이다.

    ‘강희빈, 무조건 빌어라. 죽이지는 않을 거다.’

    ‘주상전하!’

    ‘무조건 빌어라, 응? 살아서 만나자.’

    노종은 강희빈을 중전 권씨 앞으로 내밀었다. 중전 권씨는 강희빈의 머리채를 나꿔 채더니 노종을 한번 뚫어지게 째려보고는 강희빈을 끌고 나가버렸다.

    ‘어이고, 얘들아. 어떻게 좀 해봐라. 강희빈이 맞아죽겠다!’

    ‘주상전하, 중전마마께서 일단 한번 흥분하시면 그 누구도 못 말리는 터라….’

    ‘듣기 싫다. 서둘러 강희빈을 구해라!’

    ‘예, 전하.’

    내시들이 허둥지둥 강희빈의 머리채를 끌고 가고 있는 중전의 뒤를 따랐다.

    어이고, 불쌍한 것.

    노종은 다시 울적해졌다. 그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