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상전하, 선비 이십만이 왔사옵니다.’

    ‘뭐? 이씹만이?’

    노종을 보자 이십만이 펄쩍 엎드려 절을 했다. 자신을 보자 어쩔 줄 모르고 땅바닥에 엎드려 절을 하는 이십만을 보자 노종은 한껏 기분이 좋아졌다.

    그러면 그렇지. 세상은 역시 잘난 놈은 잘난 놈이 알아보는 거야.

    ‘주상 전하, 주상 전하의 용안을 뵙고자 달려왔나이다. 주상 전하를 한번 뵈었으니 이젠 죽어도 한이 없나이다.’

    이십만은 이렇게 말하고 땅바닥에 머리를 찧으며 울기 시작했다.

    어이고, 이 놈 봐라. 내가 얼마나 좋았으면 이러는 거냐.

    노종은 더욱 기분이 좋아졌다.

    ‘여봐라. 이 선비를 얼른 일으켜 세워라. 그리고 내 방으로 함께 들도록 하라.’

    이윽고 노종과 이 선비는 한 방에 나란히 앉았다.

    ‘그대의 이름이 이씹만이라고?’

    ‘이십만이라 하옵니다.’

    ‘아 참 이십만이지. 그런데 자꾸 이씹만이라고 발음이 되는 구나. 미안하다.’

    ‘아니옵니다. 내일부터 이씹만이라고 당장 개명하겠나이다. 주상께서 내려 주신 이름으로 알겠나이다.’

    ‘됐어.’

    주상께서 이씹만이란 이름을 내려줬다 하면 이상하잖냐.

    ‘그나저나 그대가 이 상소를 올린 자가 맞는고?’

    노종은 이십만의 상소를 들어올렸다.

    ‘그러하옵니다. 전하’

    이십만의 상소는 이름 그대로 노종의 댓글 정치를 비호하며 노종을 세종대왕에 비유한 내용이었다.

    ‘허허, 참 가상하도다. 그대는 수많은 세력들의 갖은 험구와 비난을 감수하고 어떻게 과인을 비호할 생각을 하였는고?’

    ‘주상전하, 사내는 입이 비뚤어져도 바른 말을 해야 함즉, 소신을 숨길 수 없어 목숨을 잃을 것을 각오하고 직언을 하였나이다.’

    그래, 네 말이 맞다. 입이 비뚤어져도 바른 말을 해야지.

    그런데 이 빌어먹을, 입은 똑바로 붙어 있어도 틀린 말만 해대는 자식들은 도대체 어떻게 해야 옳지?

    노종은 이십만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끄덕 하다 다시 질문을 시작했다.

    ‘그대에게 묻겠노라.’

    ‘예, 전하.’

    ‘요즘 세간에서 민심이 엉망이라는 구나. 듣자 하니 경제가 피폐하여 민심이 동요하고 도둑들이 발호하여 온 세상이 야단법석이라는데 어찌 생각하느뇨?’

    ‘주상전하, 그것은 수구 기득권 세력들의 공세에 불과하옵나이다. 괘념치 마옵소서.’

    ‘수구 기득권세력?’

    ‘그러하옵니다. 전하의 개혁에 반대를 하는 무리들이 무식한 과거 권위주의 군주 시대식 사고를 가진 일부 백성들을 선동하여 벌이고 있는 정치공작이옵니다. 전하께서는 괘념치 마시고 개혁에 매진하시옵소서.’

    ‘옳거니. 그 말이 옳도다.’

    ‘전하, 전하의 댓글정치는 시대 흐름을 뛰어나게 따라가시는 것으로서 전하의 댓글정치를 비방하는 자들은 날로 변화하는 시대환경을 정확히 꿰뚫지 못하고 있는 무식한 자들이옵니다. 신경쓰지 마시옵소서.’

    ‘그럴까?’

    ‘그러하옵니다. 지금 세간에서는 전하의 선정을 칭송하는 목소리가 높사옵니다. 그런데 일부 불충한 무리들이 무식한 백성들을 선동하여 전하를 폄하하고 전하를 따르는 충성스런 신하들을 간신배로 비방하고 있나이다.’

    ‘내 선정이라면 무엇을 말하느뇨?’

    ‘당장 대표적으로 전하의 조정에서는 부패가 없나이다. 이전에 대종전하의 시대나 영조시대를 생각해 보시옵소서. 그때만 해도 주상전하의 친인척들이 이권에 개입하여 너도 나도 해먹던 시대가 있었지 않사옵니까?’

    ‘그랬지.’

    ‘그러나 주상 전하의 시대에는 그런 일이 없사옵니다. 이 얼마나 깨끗하고 좋은 세상이옵니까? 가히 태평성대이옵니다.’

    ‘태평성대라….’

    ‘그러하옵니다. 전하.’

    ‘그럼 난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겠느뇨?’

    ‘전하께서는 이 나라에 두 번 다시 나올까 말까한 성군이시옵니다. 진정한 강자는 싸우지 않고 이기는 자가 강자이듯 진정 위대한 정치인은 아무 일도 하지 않사옵니다. 아무 일도 하지 않아도 시스템이 저절로 다 나라를 굴려가니 말이옵니다. 전하께서는 이미 멋진 시스템을 다 만들어 주셨으니 이제 편안히 즐기시기만 하면 되옵니다.’

    노종은 손으로 의자 팔걸이를 탁 쳤다.

    ‘여봐라!’

    노종의 말에 좌중이 집중했다.

    ‘내가 이런 인재를 그동안 왜 알아보지 못했는고? 여봐라. 이 자를 즉시 승지 자리에 임명하여 내 곁에 두게 하라. 그리고 그대의 이름이 뭐라고? 이씹만?’

    ‘이십만이옵니다.’

    ‘그대의 낡은 이름은 개집에 넣어 개한테 주고 내가 그대에게 새로운 이름을 하사하도록 하겠다. 그대의 이름은 이제부터 이천만이다. 이천만 백성만큼 뛰어나다는 뜻으로 주는 이름이니 앞으로 이천만이란 이름을 쓰도록 하라!’

    ‘전하, 성은이 망극하여이다.’

    이십만 선비, 아니 이천만 승지는 노종의 베품에 감격하여 어쩔 줄 몰랐다. 그리하여 이십만 선비는 이천만 승지가 되었는데, 훗날 노종 말기, 노종의 나라에서는 민란이 일어났고 이천만 승지는 한강인근에서 자취를 감추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