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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닮아 '친노(親盧)의 난'까지 벌어져

입력 2006-04-11 10:11 | 수정 2006-04-11 16:21
중앙일보 11일자 오피니언면 '글로벌아이'란에 칼럼니스트 변상근씨가 쓴 칼럼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좀체 사실로 믿기지 않는 실화다. 지난달 23일 브뤼셀의 유럽연합(EU) 정상회담 자리에서였다. 유럽기업인협의회 회장인 프랑스의 에르네스트 앙투안 세이예르가 25개국 정상들 앞에서 영어로 연설을 시작하자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이 말을 막으며 왜 프랑스어로 말하지 않느냐고 다그쳤다. "영어가 비즈니스 언어이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대자 시라크는 배석했던 재무장관과 외무장관을 대동하고 회의장을 나가버렸다(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 보도).

시라크의 영어는 수준급이다. 미국 유학 시절 뉴욕에서 아르바이트로 택시운전을 했을 정도다. 이날 회동은 최근 프랑스가 취한 일련의 보호주의적 조치가 유럽 경제에 미칠 악영향을 걱정하는 자리였다. 더구나 EU 의회는 영어를 공용어로 채택한 바 있다.

국제사회에서 프랑스의 유별스러움은 '프랑스적 예외'로 눈총을 받는다. 인류문화 발전에 대한 프랑스의 기여는 누구나 인정한다. 그러나 매사에 '우리는 다르다'를 고집하는 '유별 만세(Vive la difference)'는 자존을 넘어선 일종의 '프랑스병'이다. 미국의 일방주의에 다극(多極)주의로 맞서는 자신감은 보기에 좋다. 그러나 르몽드의 지적대로 이렇다 할 대안 없이 '아니요'만 앞세우는 '대항외교' 또한 일종의 병이다.

프랑스를 세계 다섯 번째 부국으로 만든 것도, 수많은 세계적 기업을 탄생시킨 것도 다름 아닌 자유자본주의였다. 그럼에도 자유시장경제와 세계화를 자유주의의 악덕이자 영미 모델의 음모로 몰아친다. 자유시장경제를 최선의 시스템으로 생각하는 프랑스인은 36%에 불과하다. 중국(74%)과 러시아(48%)보다 덜 자본주의적이다. 프랑스인들은 낮에는 사무실에서 자본주의를 욕하고 주말에는 자본주의적 소비문화를 즐긴다는 비아냥도 들린다.

이런 이중성은 프랑스의 정치문화, 특히 '조직화된 위선의 정치' 때문이라는 점이 우리의 관심을 끈다. 시장모델과 세계화의 대세를 정책으로 수용하면서도 겉으로는 프랑스의 문화와 경제를 위협하는 적으로 내세우며 대중을 오도하고 인기에 영합하는 정치엘리트들의 위선이다. 고용의 유연성을 위해 새 고용법을 밀어붙이면서도 '민감산업'보호를 위한 경제애국주의로 외국자본과 유럽 통합에는 등을 돌리려 든다. 새 고용법의 진통은 사실 프랑스 젊은이들의 반시장적 반기업적 경제관에 근본 원인이 있다. 그랑제콜 중심의 영재교육 계층과 평준화된 일반대학 출신 계층 간에 취업기회 및 인식의 격차가 문제를 더욱 키운다.

스크린쿼터와의 인연 때문인지 몰라도 한국이 이런 프랑스를 갈수록 닮아가고 있다. 세계 12번째 경제대국을 가져온 한국적 체제를 우리 스스로 부정하려 든다. 반미와 한국적 자주, 반세계화와 반외국자본 정서, 평등주의와 경제애국주의로 기우는 여권 내부의 기류는 '친노(親盧)의 난'으로 불릴 정도다.

관(官) 주도에서 시장경제체제로 새 틀이 채 잡히기도 전에 '시장맹신주의'와 '성장지상주의'에 대한 경계와 질타부터 쏟아진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대용단의 한 편에서 토종자본론과 '양극화의 정치'가 대립각을 곤두세운다. 무역으로 먹고 살면서도 무역자유화는 기를 쓰고 반대하고, 반미를 외치면서도 미국 유학에는 극성이고, 대기업을 욕하면서도 대기업 취업에 매달리는 자기모순과 이중성은 '프랑스병'의 아류를 넘어서는 한국의 병이다. 한.미 FTA의 격랑을 앞둔 우리에게 프랑스 새 고용법 진통은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변상근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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