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둥지둥 이 시장도 라면을 먹기 시작했다.

    ‘요즘 고민이 많지?’

    ‘예, 좀 그런 일이 있지요.’

    ‘내가 해법을 줄께.’

    ‘예?’

    ‘이것 봐. 이 사장 대통령이 되고 싶지?’

    ‘…’

    ‘내가 시키는 대로 해.’

    ‘예.’

    ‘일을 적당히 수습해 놓고 국민들에게 다시 한번 사과 해. 특히 언행을 각별히 조심하겠다고 해. 그리고 큰 절 한번 하는 거야. 알았지. 국민들에게 말야.’

    ‘…’

    ‘그게 멋쩍으면 서울시내 경로당에 어르신들 많아. 그 분들 찾아다니며 큰 절하고 나라 살림 잘 하겠다고 해. 그리고 도와달라고 해.’

    ‘…’

    ‘그리고 이게 중요해. 대통령 되고 싶다면….’

    이 시장은 왕 회장의 입을 주목했다.

    ‘서울시장 임기 끝나고 소록도로 가.’

    소록도? 이 시장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소록도 알지? 몸이 불편한 분들이 모여 지내는 곳 말이야. 그런데 가서 대통령 후보 경선 전까지 열심히 봉사해.’

    ‘일정이 있고 만나야 할 사람들이 있는데….’

    ‘그 사람들보다 소록도에 있는 이들이 훨씬 중요해.’

    ‘…’

    ‘이것 봐, 이 사장. 쓰레기 주워 고학하던 옛 시절을 늘 잊지 말게. 그리고 언제 우리 회사가 큰 회사였나. 다 수많은 이름없는 근로자들이 피땀 흘려 일으킨 회사일세. 지금 이 사장 주변에 목에 힘주고 잘났다는 사람들은 자네가 힘들고 어려울 때 다 등을 돌릴 사람일세. 지금 이 사장에게 중요한 것은 말없는 국민들이야. 그 국민들이 뭘 바라는 지 아나?‘

    ‘모르겠습니다.’

    ‘자네가 초심을 지키고 바닥으로 임하는 모습을 보고 싶은 거야. 이 사장 자네만을 위해 사는 모습보다 국민 가운데서도 가장 비천한 사람들을 위해 헌신하는 자네의 모습을 보고 싶은 거지. 자네의 언행을 돌이켜보게. 그리고 이 나라 국민들이 자네에게 뭘 원하고 있는가를 돌이켜봐. 지금 이 사장의 어려움은 오히려 기회예요. 기회.’

    왕 회장은 말을 마치고 라면 국물을 쭉 들이키기 시작했다. 라면을 다 먹은 왕 회장은 물을 찾았다. 왕 회장은 물 한 컵을 쭉 마시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만 가보겠네.’

    ‘회장님, 더 있다 가시지요.’

    ‘됐어요. 됐어. 저승길 나온 귀신이 오래 이승에 머물면 안돼. 이제 나는 돌아가서 일해야 해.’

    ‘일이요?’

    ‘난 저승에서도 사업중이야. 저승에서 이승 초입까지 이어지는 고속도로를 건설중이네. 요즘 이승에서 억울하게 죽는 사람들이 늘어가지고 교통체증이 말도 못해. 그래서 저승부터 이승까지 새로 고속도로를 뚫는 거야.’

    ‘…’

    ‘라면 잘 먹었네. 오늘은 라면도 좀 얻어먹고 이 시장에게 할 말도 있어서 왔어. 그런데 내가 다음에는 안 왔으면 좋겠어.’

    ‘언제라도 오십시오.’

    ‘아니야. 이 사장, 내가 없이도 자네가 혼자 알아서 잘해야지. 이제 내 시대는 이승에서 끝났어. 이제는 자네가 나서서 해야 할 때야. 왜 하늘이 자네를 이렇게 만들어 줬겠나. 쓰레기 치우며 공부하던 이 사장이 어떻게 이렇게 출세를 했겠나. 하늘의 뜻이 있기 때문이야. 그러니 제발 잘 하게. 그래서 내가 왔네.’

    ‘회장님….’

    이 시장은 고개를 숙였다.

    ‘이 사장, 이성계 장군을 아나. 조선왕조를 세운 태조 이성계 장군 말이야. 그 분이 젊은 시절에 500개의 나한을 빚은 적이 있네. 나한은 조그만 불상을 말하는 것이야. 그 분이 원체 성질이 급하고 거칠어서 무학대사에 그에게 제왕수업을 쌓도록 한 것이지. 500개의 나한을 빚으면서 인내심을 닦도록 하기 위함이야. 불상 만드는 장인도 아니고 무사가 불상을 500개나 빚으려니 얼마나 힘들었겠나. 하지만 그런게 제왕수업이라네. 이 사장, 지금 자네는 제왕수업중이야. 이 수업을 이겨내야 하네. 알았지?’

    왕 회장은 다시 힘을 주어 말을 이었다.

    ‘이 사장, 아니 이명박 예비 대통령, 힘내게. 그리고 쓰레기 주워 고학하던 그때 그 마음을 잊지 말게. 언행을 하기 전에 항상 고학생 시절의 그 초심을 떠올리면 실수하는 일 없을 거야. 그리고 소록도로 가서 대통령 후보 경선 전까지 꼭 봉사하게. 백성은 똑똑한 지도자를 원치 않아. 친근하고 선량한 지도자를 원하지. 나는 그것을 미처 몰랐어.’

    왕 회장은 빙그레 웃었다.

    ‘회장님, 감사합니다. 정말로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 지….’

    이 시장의 눈에서 눈물이 나오려고 했다. 쓰레기 주워 고학하던 시절, 운동권 학생으로 현대건설에 어렵게 취업한 일, 왕 회장에게 눈물이 쏙 빠지도록 혼이 나면서도 중용되어 오늘에 이른 일 등이 계속 파노라마처럼 생각났다.

    ‘이만 가네. 힘내게. 이 사장, 초심을 잊지 말게나.’

    말이 끝나자 마자 왕 회장은 홀연히 한 줄기 빛으로 사라져 버렸다.



    여보!

    여보!

    여어어어어어보오오오오!

    이 시장은 벌떡 일어났다.

    ‘당신 자면서 울긴 왜 울어요.’

    ‘누…누가 울어?’

    ‘하도 울어서 베겟잇이 다 젖었어요. 아예 잠꼬대도 하면서 울더만.’

    이 시장은 아내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 보았다.

    모든 것은 꿈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시장의 마음에는 중요한 교훈이 남았다. 초심을 잃어서는 안된다는 것. 인생의 은인인 왕 회장이 그에게 준 가장 큰 재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