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 되는 일 없네.

    이명박 시장은 잠을 이루지 못하고 몸을 이리저리 뒤척였다. 그런데 이런 이 시장의 속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마누라는 쿨쿨 코 골고 이 갈며 신나게 자고 있다.

    이런 젠장, 부부는 일심동체라더니. 제 서방이 대통령이 되느냐 마느냐 하는 판인데 이 놈의 여편네는 드르릉 쿨쿨 잠만 씩씩 잘도 자는 군!

    이 시장은 화가 나서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집 밖으로 나왔다.

    이걸 어쩌나.

    공연히 테니스 한번 쳤다가 사람 피곤하게 되었다.

    하여간 내가 다시 한번 테니스를 치면 이명박이 아니라 이쪽박이다.

    이쪽박!

    으아아아, 이 시장은 몸서리를 쳤다. 하지만 이내 이 시장은 마음을 가라앉혔다. 호랑이한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사는 법. 이 시장은 마음을 잡기 위해 노력했다. 애꿎은 식구들이나 부하들에게 짜증을 낼 것이 아니라 차분하게 지금의 난관을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생각해야 할 때였다.

    꼬로록.

    엉? 그런데 왜 갑자기 배가 고프지?

    이 시장은 고개를 돌려 시계를 보았다. 새벽 2시.

    내일 일정도 있는데, 잠을 좀 자야 할텐데 말이야.

    그런데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라면이라도 한 개 끓여 먹을까?

    이 시장은 직접 라면을 끓이기 시작했다.

    으이그, 젊었을 때 마음대로 먹지도 못하던 라면. 이 시장은 보글보글 끓어가는 라면을 보고, 그 특유의 냄새를 맡으면서 추억에 잠겨들었다.

    그래, 이 세상에 나만큼 행복한 사람이 또 있을까. 쓰레기 주워 먹고 살던 주제에 오늘날 유력 대통령 후보라. 하기야 날 이렇게 물어 뜯는 놈들이 많은 것도 그만큼 내가 대단하긴 대단하니까 그런 거겠지.

    이 시장은 라면을 다 끓인 뒤 냄비 째로 식탁 위에 올려 놓고 냉장고를 뒤져 김치를 꺼냈다. 그리고 젓가락으로 한번 휘휘 저은 뒤 먹으려고 자세를 취했다.

    아 참! 계란을 안 넣었네?

    아니다. 라면은 그냥 먹어도 맛있지. 이 시장은 라면을 후루룩 먹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갑자기 누군가 이 시장을 부르는 소리가 났다.

    ‘이 사장, 맛있어? 나도 좀 줘.’

    누군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이 시장이 화들짝 놀라 벌떡 일어났다.

    ‘이 사장, 나도 좀 줘.’

    엉?

    이 시장의 눈 앞에 王 회장이 서 있었다.

    ‘아니 회장님, 이 밤중에 어떻게?’

    ‘이 사장이 생각나서 왔지.’

    王 회장이 털썩 식탁 의자에 걸터앉았다.

    이런 세상에!

    이 시장은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왕 회장이 어떤 분인가. 벌써 몇 년 전에 돌아가신 분이 아니던가.

    이 양반이 갑자기 왜 나타나신 걸까? 설마 나를 데려가려고?

    이 시장은 가슴이 쿵쾅쿵쾅 뛰기 시작했다. 대통령도 못 되어 보고 죽다니! 그것보다 더욱 쑥스러운 것은 라면먹다 비명횡사했다고 신문에 나는 것이었다.

    이런 제기랄, 신문 만드는 자식들이 내가 죽으면 테니스 때문에 노심초사하다 겨우 오밤중에 혼자 라면 끓여먹다 죽었다고 써댈 것 아니야. 그게 뭔 망신이냐. 하기야 어떤 인간처럼 여자 탤런트 따먹다가 배 위에서 죽었다고 소문나는 것보다야 낫지만….

    ‘아니, 이 사장 뭐해? 나는 안 줄꺼야. 늙은이는 라면도 안 줘? 이 놈의 세상에 왜 이리 됐나 몰라. 늙은이는 투표도 하지 말래고, 이제는 라면도 먹지 마?’

    ‘아이고, 회장님. 그런데….’

    ‘그런데 뭐?’

    ‘회장님….’

    ‘이것 봐. 이 사장, 나 귀 아직 안 먹었어. 그러니 말해 봐.’

    ‘회장님, 지금 여기는 회장님이 계실 곳이 아닙니다. 천국에 계셔야죠.’

    ‘천국?’

    ‘예.’

    ‘내가 천국에 들어갈 주제는 못 되지.’

    ‘…’

    왕 회장은 이빨을 다 드러내고 크게 웃었다.

    ‘이것 봐. 이 사장 그러니까 자네도 이렇게 팔팔할 때 잘 해. 잘 하라고.’

    왕 회장이 이 시장의 등을 툭툭 두드렸다. 그렇지만 이 시장은 등에 식은 땀이 맺히는 것을 느꼈다.

    ‘내가 저승에서 왜 왔나 궁금하지?’

    이 시장은 시인도 부인도 하지 못하고 가만히 있었다.

    ‘라면이 먹고 싶어서 왔어. 그러니 빨리 라면이나 한 그릇 끓여 와.’

    이 시장은 허둥지둥 라면을 끓이기 시작했다.

    ‘계란도 넣고 파도 썰어 넣어.’

    이 시장은 이마에 땀을 흘려가며 라면을 끓였다. 왕 회장이 자신도 잡아가겠다고 하지 않을까 영 찜찜했다. 어느 덧 라면이 다 완성이 되었다.

    ‘회장님, 드십시오.’

    ‘고맙네. 이 사장.’

    왕 회장이 라면을 먹기 시작했다. 이 시장은 자기 라면 먹는 것도 잊고 왕 회장이 라면을 먹는 모습을 멍하니 지켜보고 있었다.

    ‘뭐 해? 자네 라면 안 먹고?’

    ‘아, 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