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앙일보 16일자 오피니언면 '중앙시평'란에 전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사회학 전공)가 쓴 칼럼 '팔려가는 새마을운동'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세상에는 별로 대수롭지 않은 생각이나 상품, 혹은 사람이 '뜨는' 계기를 맞거나 만들어 엄청난 '대박'을 터뜨리는 일이 가끔 있다. 이른바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의 역할은 공공정책 영역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1970년대를 풍미한 새마을운동도 말하자면 '시작은 미약'했으나 '나중은 심히 창대'하게 된 경우다.

    70년 무렵 우리나라의 시멘트 산업은 생산과잉과 수출 부진 상황에 봉착했다. 이에 공화당 정부는 약 40여억원의 예산으로 잉여 시멘트를 긴급 구매했다. 그리고 전국 3만3267개 행정 이동(里洞)에 각각 335부대씩 무상으로 보급한 다음, 차제에 마을 숙원사업을 스스로 해결하도록 독려했다. 리더십을 포함한 사회자본의 차이에 따라 성과가 달랐는데 정부는 더 열심히 노력하는 지역에 보다 많이 지원하는 후속조치를 취했다.

    박정희 대통령에 의해 새마을운동이 공식화되고 새마을 정신이 '근면.자조.협동'으로 정비된 것은 그 다음의 일이었다. 따라서 새마을운동을 박정희 개인의 준비된 위업으로 미화하는 것은 올바른 이해가 아니다. 또한 새마을운동이 유신체제와 제5공화국을 거치며 정치적으로 악용됐다고 해서 그것의 본질적 가치가 훼손되진 않는다.

    최근 중국이 새마을운동에 대해 비상한 관심을 표방하기 시작한 까닭도 결코 그것의 정치적 차원 때문이 아닐 것이다. 대신 지난 30년 가까이 경제성장에 주력해 온 중국 정부가 도농(都農) 균형 발전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한국의 새마을운동이 벤치마킹의 대상으로 어필했기 때문이다. 중국은 제11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이 시작되는 올해 최우선 정책과제로 '사회주의 신농촌 건설'을 내걸었고, 지난 2월 중순 당.정.군 주요간부가 집합한 관련 '토론회'에는 후진타오 국가주석과 원자바오 총리가 직접 참석할 정도였다.

    새마을운동이 외국에서 누리고 있는 인기는 국내에서 그것이 처하고 있는 망각과 냉대와 뚜렷이 대비된다. 가령 북한의 '천리마운동'에 대해서는 주로 사회주의 건설을 위한 경제적 기능이, 그러나 남한의 새마을운동에 대해서는 독재체제 정당화를 위한 정치적 효과가 강조되는 것이 국사학 및 역사 교육에 담긴 오늘날의 시대정신이다. 그렇다면 언젠가 새마을운동 역시 '과거사 정리' 대상 명부에 등재될지도 모른다. 속담에 며느리가 미우면 손자까지 밉다 하지 않았는가.

    어쩌면 근래에 들어와 중국과 한국은 새마을운동과 문화혁명을 맞교환하는 것처럼 보인다. 2002년 이후 한국사회가 계급투쟁과 대중운동, 평등주의와 정치우선, 전(專)의 몰락과 홍(紅)의 득세 등의 측면에서 60대 말 중국의 문화혁명 시기를 연상케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내다 버린 새마을운동의 교훈을 중국이 걷어가고 중국이 잊고 싶은 문혁의 과오를 우리가 되살린다는 점에서 전진하고 후진하는 양국의 역사는 극명히 대조되는 셈이다.

    몇 년 전 중국 칭화대학을 방문한 자리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마오쩌둥과 덩샤오핑을 함께 존경한다고 말했다. 두 사람이 시대를 나누어 중국의 역사를 새롭게 만들었고 혼자 다 하기 어려워 나눠서 한 것이라는 자세한 설명까지 덧붙였다. 그럴듯한 평가다. 그런데 '계주사관(繼走史觀)' 내지 '분업(分業)사관'이라 부름직한 이런 발상도 막상 우리 역사 속에서 이승만과 박정희, 혹은 김대중을 묶는 데는 전혀 쓸모가 없어 보인다. 부정과 단절, 그리고 독선의 역사관이 세도를 부리는 탓이다.

    혼자 만드는 역사가 없듯이 처음 일구는 역사도 없다. 역사적 교훈은 따라서 역사 자체가 아니라 후대(後代)가 깨닫고 배우기 나름일 것이다. 멀리 '팔려 가는' 새마을운동이 뿌듯하면서도 안타까운 건 바로 이런 생각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