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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이 팔리는 사회

입력 2005-12-28 10:23 | 수정 2005-12-28 10:23
중앙일보 28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사건사회부 차장 고대훈 기자가 쓴 '노트북을 열며' 칼럼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수사기관은 사회적 사건을 생물에 비유한다. 사건도 생물처럼 적자생존을 위해 사회 환경에 맞춰 자라고 진화한다는 뜻이다. 우리 안에서 벌어진 사건들의 이면을 들춰보면 사회의 변화와 흐름을 읽을 수 있다고 한다.

후진적 사회에선 강도.절도 등 강력 범죄가 설치고, 권위주의 사회에선 권력형 비리가 들끓는다. 과도기를 겪는 사회에선 이념 대립이 날카로워지고, 도덕성이 떨어진 사회에선 약자를 등치는 사기가 극성을 부린다. 우리가 살고 있는 오늘을 투영하는 것이 사건이다.

올 한 해 우리 사회는 동지가 아니면 적으로 가르는 이분법적 반목과 갈등을 겪었다. 빈부의 양극화와 이에 따른 상대적 박탈감을 체험했다. 민심과 동떨어진 권력의 오만함을 목격했다. '다이내믹 코리아'란 말을 입증이라도 하듯 이 같은 사회현상은 2005년의 사건들 속에 고스란히 스며들었다. 

천성산 터널공사 강행에 맞선 지율 스님의 100일 단식투쟁과 새만금 간척사업 소송은 환경과 생태계 보존이란 새로운 화두를 던졌다. 천성산은 '도롱뇽'을, 새만금은 '갯벌'을 국민의 머리에 각인시켰다. '환경이상주의'에 떠밀려 국책사업이 무작정 표류해도 되는지는 의문으로 남겼다. 

'성역'으로 분류되던 노조 신화가 깨졌다. 기아자동차 광주 노조, 부산항운 노조, 현대자동차 노조의 채용 비리는 노조의 도덕성을 빈말로 만들었다. 아래와 따로 노는 노동운동의 귀족화와 권력화가 빚어낸 산물이었다. 일진회와 '왕따'는 어른들의 무관심 속에 아이들이 병들고 있음을 새삼 일깨웠다. '섹스머신''노예팅' 등 그들만의 생경한 단어들은 충격을 주기에 충분했다. 

8.15 민족대축전에서 벌어진 진보와 보수의 대결은 우리 사회의 한복판에 이념 대립이 자리 잡고 있음을 확인시켰다. 대다수 시민은 대축전에 참가한 북한 고위 인사들이 현충원에 참배하는 모습을 TV를 통해 거부감 없이 지켜볼 정도로 묵직해졌다. 그런 여유는 좌파 이념의 전초기지이던 대학가의 보수화 바람으로 이어졌다. '강정구 교수 사건'은 희한한 논리를 펴는 교수가 강단에 서고, 그런 주장이 논란거리가 된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었다. 법무부 장관까지 끼어든 낡은 이념논쟁에 빠져 있었다.

권력형 비리는 우리의 후진성을 보여준 사례였다. 철도공사(옛 철도청)의 러시아 유전 개발 의혹, 행담도 개발 의혹, 경기도 오포읍 아파트 건설 비리 의혹 등에는 노무현 대통령의 측근과 청와대 인사가 단골로 등장했다. 의혹은 무성했지만 '실패한 로비'라는 검찰의 어정쩡한 결론과 함께 뇌관을 안고 물밑으로 잠복한 상태다. 권력에 힘이 빠지면 언제든 물 위로 치솟을 수 있음을 과거의 경험은 말해준다. 

국정원(옛 안기부)의 불법 도청은 도청 공포의 악몽을 들춰내 통신 자유의 소중함을 깨닫게 했다. 전직 국정원장의 구속은 권력의 무상함을 느끼게 했다. 국민을 공황 상태로 몰고간 황우석 교수의 논문 조작은 그 파장이 내년으로 이어질 것이다. 무엇이 '희대의 사기극'을 만들었는지, 그 궁금증은 검찰이 풀어야 할 숙제로 남았다. 

"신문은 사회적 거울"이라고 막스 베버는 말했다. 신문 지면에 등장하는 사건은 한 사회의 건강과 정신상태를 가늠케 하는 지표다. 예측 가능한 안정된 사회라면 충격적이고 엽기적인 사건이 많지 않아야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선 신문이 잘 팔린다'는 말이 통한다. 당장 내일을 예상할 수 없을 정도로 요동치는 사건들이 줄지어 터진다. 국민이 신문을 안 볼 재간이 없는 현실을 빗댄 표현이다. 거울은 아름답든지 추하든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비춘다. 2006년에 신문의 거울은 사건들을 어떻게 비출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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