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가인권위원회가 국가기관으로는 처음으로 '양심적 병역 거부'를 인정하고, 국회의장과 국방부 장관에게 대체복무제 도입을 권고해 큰 파장이 일고 있다. 인권위의 이번 권고는 그동안 대법원 헌법재판소의 판결에 정면으로 배치하고 있는데다, 국방부와 관련 단체, 보수단체, 기독교 단체등의 반발과 함께 '병역기피'에 대한 국민적 반감이 어우러져 상당한 후폭풍을 몰고 올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인권위의 판단은 대다수의 국민 정서를 무시한 채 특수한 안보 현실을 간과하면서까지 헌법에 명시된 '의무'를 등한시하고, '양심'이라는 이유를 들며 병역기피를 주장할 수 있는 명분만 만들어 줬다는 지적이다.

    국방부는 이미 지난 23일 정례브리핑을 통해 윤광웅 장관이 대체복무를 수용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으며, 대한민국재향군인회는 이날 인권위의 결정에 "국방의 의무를 일부 종교의 양심에 따라 거부한다는 것은 국민의 도리와 의무를 저버린 반사회적, 반국가적 행위"라며 "기회주의적 징병 거부자들에게 병역 기피 명분을 제공해 주는 위험한 발상으로 반드시 철회돼야 한다"고 강하게 반발했다.

    인권위는 26일 "양심적 병역거부권이 '양심에 반하는 행동을 강제당하지 않을 자유'에 포함되며 양심의 자유의 보호 범위 안에 있다"며 "이를 실질적으로 인정하기 위해 대체복무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인권위는 또 "현재의 제도에선 '양심적 병역거부와 그로 인한 형사처벌'과 '단순한 병역의무의 이행' 간 양자택일밖에 없지만 양심의 자유와 국방의 의무가 조화롭게 공존할 수 있도록 대체복무제를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대법원과 헌재는 '양심적 병역 거부'를 일관되게 인정하지 않고 있다. 대법원는 지난해 7월 양심의 자유를 이유로 입영을 거부한 최모씨에 대한 판결에서 "양심의 자유가 국방의 의무에 우선할 수 없다"며 유죄를 확정해 이를 판례로 유지하고 있으며, 헌재 역시 같은해 8월 "기본권의 행사는 국가의 법질서를 위태롭게 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이뤄져야 한다"며 대체복무를 허용하고 있지 않은 현 병역법 조항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린 바 있다.

    헌법포럼 대표 이석연 변호사는 27일 뉴데일리와의 통화에서 "양심적 자유라는 범주에서의 논의는 바람직하지만, 최고판단기관인 대법원과 헌재에서 이미 판단한 사안에 대해 법률기관에 불과한 인권위가 정반대의 결정을 내린 것 자체가 형식에서 위헌적인 요소가 있다"며 "(법조계의 입장에서) 서글픈 마음이 든다"고 말했다. 또 향후 예상되는 대체입법 움직임에 대해서도 "헌재가 판례를 바꾸지 않는 한 위헌 논란이 남을 것"이라고 전했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를 비롯한 기독교계 역시 강하게 반발하고 나설 조짐이다. 한기총 대표 최성규 목사는 "인권위가 무슨 인권을 말하는 지 모르겠다"며 "(인권위의 결정은) 한마디로 말이 안되는 얘기"라고 일축했다. 그는 "종교인이기 이전에 대한민국 국민이 우선"이라며 "'머리 위에 숯불을 지펴놓은 모양새'인 북한과의 대치상황을 무시하고, 특정 종교를 이유로 국민의 당연한 '의무'를 경시한 것은 이해할 수 없다"며 크게 반발했다.

    최 목사는 이어 "국민이 의무를 이행하지 않으면 권리를 포기해야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며 "이날 중 구체적이고 강력한 성명서를 발표하고 타 기독교단체와 연대해 향후 대책을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