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협상과 협상학-13)
  • 흔히 오해하는 것들 가운데 하나가 ‘갈등’은 나쁜 것으로만 여기는 것이다. 사실 ‘갈등’은 발전과 변화를 위해 꼭 필요하다. 국민의식 수준이 높아질수록, 선진국이 될수록 갈등은 늘어난다. 반대로 통제된 국가일수록 갈등은 드러나지 않는다. 

    김정은 친서를 받고 정부와 여당은 일제히 환영과 배려의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다. 세부적인 내용이 공개된 것은 아니지만 김위원장 본인의 연내 남한 답방 무산에 대한 양해와 지속 협상 의지가 담겨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협상학에서는 아프면 아프다, 아닌건 아니다라고 분명히 이야기하라고 한다. 연내 답방을 위해 우리 정부가 노력했던 것도 알리고 아쉬운 건 아쉬운 대로 이야기해야 한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1차미북정상회담의 성과를 틈만 나면 자랑하며, 북핵협상을 주한미군비용 인상의 옵션으로도 삼고 있다. 그런 만큼 답방을 놓고 있었던 갈등은 우리 입장에서는 북한과 미국 모두를 압박할 수 있는 좋은 협상수단이 될 수 있다. 상대가 약속을 안지킬 때는 분명히 지적하고, 내 이익과 연계하는 기회로 삼아야한다. 

    1980년대  만델라 전남아공대통령의 갈등과 대화 병행 전략은 유명하다. 26년이나 감옥에서 당시 남아공 정부의 온갖 회유 또는 탄압을 받으면서도 때로는 폭력도 불사하는 투쟁과 다른 한편으로는 집권당 대통령과 비밀테이블을 통해 인종차별정책을 종결시켰다. 만약 부당한 백인정부의 인종차별 정책 같은 분명한 문제점들을 거론하지 않고 협상을 했다면 상대방은 오랜 관행이었다고 주장할 뿐만 아니라 같은 편의 강력한 반발로 협상이 지속될 수 없었을 것이다. 

    협상에서 대표의 언행은 매우 중요하다. 다른 참가자들이 이런 저런 이야기했어도 협상의 특성상 결국 대표자의 뜻이 그 팀의 입장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김정은의 남한 답방 공개약속 불발은 내부의 리더십에도 큰 타격을 주는 일이다. 우리 역시 환영 일색이 아니라 깊은 유감을 표시해야하고 재발 방지를 다짐 받아야 한다. 앞으로도 협상대표의 약속은 신중해야하고 반드시 지켜져야 하기 때문이다. 약속의 중요성으로 따지면 회의 약속 시간이 늦었다고 우리 통일부 장관을 야단친 이선권 북측협상단장의 일이 바로 두어 두 달 여전의 일이기도 하다. 김위원장 스스로도 아쉬움을 표현한 만큼 그 진심성은 그것대로 인정하되 우리의 유감은 유감대로 기록해두고 향후 협상 시 우리 쪽의 협상수단으로 활용해야 한다. 

    1년 전에 비해 남북 평화 분위기를 조성한 것은 의미 있는 일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 움직임은 김정은위원장만의 결단에 의한 것만도 아니다. 남한을 통해 얻고자 하는 이익이 북한 협상단에 보다 간절하기 때문이다. 대표자의 약속이 지켜지지 않을 때는 갈등을 크게 일으켜야 한다. 그 갈등이 향후 재발방지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지난 10년간 우리 대통령이 평양에 간 것만 3번이 라는 점도 강조하고 대등한 협상인지 질문하는 사람도 우리 협상단 내에서 한명은 나와야 한다. 좋은 분위기만 좋은 것이 아니라, 나쁜 분위기를 해결할 때 좋은 진전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도 김정은위원장의 비핵화약속을 자랑하고, 나이스(nice) 하다며 칭찬했던 만큼 약속을 지키지 않는 지도자라는 팩트는 우리보다 더 꺼려하는 점이 바로 우리의 기회요인이다. 

    협상에서 갈등은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 꼭 필요한 상황이며 풀라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북핵협상에서 갈등을 안만들려고 내야할 소리도 참고 있는 것이 아닌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미북도 서로 갈등을 조성했다 풀었다하며 다음 단계로 나가고 있다. 갈등이 없다면 폐쇄되거나 정체된 사회이듯이 협상도 정체되기 쉽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 권신일 前허드슨연구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