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의 '1+1 전략' 폐기한 뒤 '스윙 전략' 계속… 중동보다 동아시아에 무게중심
  • ▲ 이라크 서부 알 아사드 미군기지를 찾은 트럼프 美대통령 내외. ⓒ뉴시스 AP.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이라크 서부 알 아사드 미군기지를 찾은 트럼프 美대통령 내외. ⓒ뉴시스 AP.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성탄절 시즌에도 도널드 트럼프 美대통령의 말과 행동은 세계의 주요 관심사였다. 지난 19일(이하 현지시간)에는 “시리아에서 미군을 철수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26일에는 이라크 서부의 미군 기지를 깜짝 방문해 “이라크에서의 미군 철수는 없을 것”이라고 공언했다. 그리고 28일에는 시리아 주둔 미군 가운데 50명이 처음 철수했다. 같은 날 美백악관은 “아프가니스탄 미군 철수는 잘못된 보도”라는 공식 해명을 내놨다. 트럼프 정부는 대체 무슨 생각일까.

    트럼프, 딱 붙은 두 나라 두고 전혀 다른 군사전략

    트럼프 美대통령의 시리아·이라크 전략은 단순히 미군이 주둔하고 안 하고의 문제가 아닌 것으로 보인다. 한때 테러조직 ISIS가 휘저었던 시리아는 북쪽으로는 터키, 서쪽으로는 레바논·이스라엘, 동쪽과 남쪽으로는 이라크에 둘러싸인 내륙 국가다. 시리아 알 아사드 정권은 러시아와 이란의 지원을 받아 몰락의 위기를 넘겼다. 테러조직 ISIS에 동조하는 잔당 세력들도 아직 남아 있다. 미국 등 서방의 지원을 받는 ‘자유시리아군(FSA)’ 중심의 반군 세력은 내전 초기에 비해 굉장히 약해졌다.

    미국은 ISIS가 시리아와 이라크 일대를 휘젓던 오바마 정부 시절 이들에 맞서 싸우던 쿠르드족 민병대와 FSA 세력을 지원했다. 특수부대를 접경지역에 보내 민병대와 반군을 훈련하고, 무기를 지원하는 한편 주변국에 있는 미군 기지를 통해 ISIS에 대한 공습을 단행했다. 당시 중동과 유럽 국가들은 “미국이 선봉에 선다면 참전할 용의가 있다”며 미국의 등을 떠밀었지만 오바마 정부는 “지상병력 파병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결국 중동과 유럽 국가의 공군이 미국에 가세해 공습 작전을 폈다. 그러나 ISIS 잔당까지 소탕할 수는 없었다.

    트럼프 美대통령이 시리아에서 미군을 철수시키려는데 대해 제임스 매티스 美국방장관도 반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3일에는 오바마 정부 때인 2015년 임명된 브렛 맥커크 ISIS 퇴치 담당 특사가 시리아 철수 결정에 반발해 사임했다. 아직 시리아에 ISIS 잔당이 남아 있고 미군이 할 일이 있는데 철수는 성급하다는 의견이었다. 그럼에도 트럼프의 결정은 변함없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크리스마스 저녁 이라크 서부에 있는 알 아사드 기지를 찾아 미군들과 시간을 가졌다. 현재 미국을 비롯한 세계 언론들은 트럼프가 ‘깜짝 방문’을 한 것도 아니고, 해군 특수부대원들과 기념촬영을 하면서 그들의 얼굴을 공개한 점을 두고 비난하고 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의 이라크 방문은 시리아 접경 지역에 새로운 미군기지 두 곳을 건설했다는 사실과 함께 묶어서 봐야 한다.

  • ▲ 미군 철수가 결정된 시리아와 그 주변 국가. ⓒ구글맵 화면캡쳐.
    ▲ 미군 철수가 결정된 시리아와 그 주변 국가. ⓒ구글맵 화면캡쳐.

    이란 국영 프레스TV는 미군이 이라크 서부의 시리아 접경 지역에 UAV 등을 운용하는 기지를 건설했다고 보도했다. 미군은 UAV를 정찰용으로만 쓰는 게 아니라 테러조직 암살용으로도 사용한다. 과거 ‘테러와의 전쟁’ 때 알 카에다를 비롯한 테러조직 수뇌부는 美특수부대나 정보기관 요원보다는 UAV에 의해 사살된 사례가 훨씬 많았다. 미군이 이라크 서부 시리아 접경에 UAV 기지를 세웠다는 것은 시리아의 ISIS 소탕뿐만 아니라 알 아사드 정권에 대한 정보 수집과 공습을 고려하고 있으며, 이때 불필요한 미군 병력의 희생을 막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이라크·아프간 미군은 유지…美의 이목 동쪽으로

    美백악관은 28일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 철수를 결정한 적이 없다”고 공식발표했다. 지난주 언론이 “트럼프가 아프간 주둔 미군 병력 7000여 명의 철수를 명령했다”고 보도한 데 대한 공식 발표였다. 美정부 공식 발표에 따르면, 시리아에 2000여 명, 이라크에 5000여 명, 아프가니스탄에 1만 2000여 명의 미군이 주둔하고 있다. 이들을 다 합쳐도 주한미군 수에 미치지 못하지만, 미군 전체 병력 수로 볼 때는 적지 않은 규모다.

    이 가운데 시리아의 병력은 빼고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병력을 그대로 둔다는 결정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에 대한 트럼프의 방위비 분담금 증액 요구, 북유럽과 동유럽 국가에 대한 미군 증원과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 예멘과 시리아 내전에 이란·러시아가 개입해 있는 현실, 사우디아라비아 등 걸프협력회의(GCC) 국가들이 최근 친미적 태도를 보이는 점 등을 함께 보면, 포석이 보인다.

    미군은 이라크 주변국 가운데 터키와 쿠웨이트, 바레인, 사우디아라비아, 이집트, 아랍에미리트연합(UAE)에 병력을 주둔시키고 있다. 시리아-이라크-이란-아프가니스탄으로 이어지는 ‘벨트’에서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만 병력을 배치해도 주변 우방국의 도움을 받으면 질서유지에 별 탈이 없을 것이라고 본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그렇다면 시리아와 그 주변에서 빠지는 병력은 어디로 재배치될까. 군사전문가들은 역시 동쪽, 즉 인도-태평양 지역에 배치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미국이 인도의 도움만 받을 수 있다면 페르시아 만에서 오만 만, 인도양을 거쳐 남지나해까지 이어지는 ‘벨트’에서 미군이 중국·러시아 중심의 反서방 세력에게 크게 열세에 처하지는 않을 수 있다. 특히 중국 해군에 맞서 급속도로 해군력을 증강 중인 인도가 미국의 편에 선다면 시진핑의 ‘일대일로’ 가운데 바닷길은 남지나해와 인도양에서 끊기거나 감시를 받을 수도 있다. 

  • ▲ 인도를 중심으로 본 세계 지도. ⓒ구글맵 화면캡쳐.
    ▲ 인도를 중심으로 본 세계 지도. ⓒ구글맵 화면캡쳐.

    트럼프 정부가 ‘인도-태평양 중심 전략’을 펼치는 가운데 해외배치 병력을 동아시아와 인도 중심으로 배치할 경우 전쟁전략도 바뀌게 된다. 현재의 전력과 장비로는 냉전 때와 같은 병력 배치와 전쟁전략을 쓰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무리 전 세계를 작전구역으로 하는 미군이라고 해도 냉전 당시에 비해 대폭 줄어든 해·공군 전력, 전략무기로는 동시다발적인 전쟁에 대응하기는 어렵다.

    미군 전쟁전략: 1&1 → 1+1(스윙) 전략 → 중심 이동

    냉전 당시 미군의 전쟁전략은 “전 세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전쟁이 벌어지면 동시에 적을 제압한다”는 전략을 내세웠다. 당시 미군은 전 세계 전투기의 40%, 해군 함정의 40%를 보유한, 대군이었다. 냉전이 끝난 뒤 1990년대 미군은 두 곳에서 전쟁이 벌어질 경우 한 곳에서는 적의 도발을 억지하고, 다른 한 곳에서 먼저 적을 격퇴한 뒤 다시 긴장상태인 곳에 전력을 돌려 승리를 잡는다는 ‘1+1전략’, 일명 ‘스윙 전략’을 채택했다. 그러나 이를 두고 美군사전문가들은 병력과 예산을 대폭 감축당한 미군 전력으로는 ‘1+1전략’ 실행이 불가능하다고 비판했다. 결국 2001년 테러와의 전쟁이 시작된 뒤 부시 당시 대통령은 ‘전략적 유연성’을 내세운 전쟁전략 수립을 지시했다. 노무현 정부 당시 국내에서도 논란이 된 주한미군 병력 재배치가 ‘전략적 유연성 강화’ 정책에 따른 것이었다. 실제 주한미군에 배속돼 있던 항공여단이 이라크에 파병되는 등 미군의 배치에 변화가 있었다.

    2009년 오바마 정부가 들어선 뒤에도 ‘전략적 유연성 증대 전략’은 계속 이어졌다. 주한미군 병력의 감축은 없었지만, 재정절벽으로 인한 강제 예산감축(시퀘스터)으로 인해 주한미군 전력의 약화는 불가피했다. 2017년 1월 취임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군 전력과 실상을 파악한 뒤 “미군은 예전처럼 강해져야 한다”고 일갈했다. 과거 냉전 시절이나 냉전이 끝난 뒤 ‘일극체제’의 중심에 있던 미군은 사라졌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문제의 핵심 원인을 ‘예산’으로 봤다. 그는 국방예산 증액 추진과 동시에 NATO와 동아시아 동맹국에게 거칠게 방위비 분담금 증액을 요구했다. 일본은 주일미군 기지에 대한 토지 임대료까지 포함시키며 “우리는 이미 많은 비용을 부담하고 있다”고 주장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먹히지 않았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은 핵무기와 탄도미사일을 개발하며 위협을 가하는 북한을 전면에 앞세우고 중국과 묶어 다루겠다는 뜻을 나타냈다. 2017년 11월 말까지 극한으로 치닫던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정권 간 긴장은 2018년 북한의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와 남북정상회담, 美北정상회담으로 누그러지는 듯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비핵화 행동”을 계속 요구하면서 중국을 향해서는 “북한이 저러는 것은 중국 탓”이라고 비난을 퍼부었다.

  • ▲ 美게임업체 THQ가 제작했던 '홈프론트'의 역사 설정 화면. 북한이 중국의 도움으로 한반도를 통일하는 것이 트럼프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홈프론트' 유튜브 트레일러 화면캡쳐.
    ▲ 美게임업체 THQ가 제작했던 '홈프론트'의 역사 설정 화면. 북한이 중국의 도움으로 한반도를 통일하는 것이 트럼프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홈프론트' 유튜브 트레일러 화면캡쳐.

    같은 시기 미군은 필리핀 재주둔 추진, 주한미군과 주일미군 재배치 등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태평양 사령부를 ‘인도-태평양 사령부’로 개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을 비롯한 美정부 관계자들은 모두 인도양부터 태평양까지 지역이 향후 미국의 국익을 지키는 핵심 지역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정부는 한국에 주한미군 주둔비용 분담액 증액을 요구하는 한편 “김정은은 좋은 사람이라 비핵화 약속을 지킬 것”이라는 ‘립 서비스’를 계속 내놓았다. 2018년 말에는 “2차 美北정상회담이 2019년 초에 열리기를 희망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트럼프 정부가 북한 비핵화에 관해 하는 말과 주한미군에 대해 하는 말을 함께 보면, “남북관계 개선으로 북한 비핵화가 가능하다고? 그럼 한국 마음대로 하라. 다만 비핵화에 실패하면 미국은 미국이 원하는 대로 할 것이다. 이때 미국 탓은 하지 말라”는 의도를 읽을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예측하기 어려운 사람이라는 점까지 더하면, 미국이 주한미군 철수 등 한반도에서 완전히 손을 떼고, 한반도 전체가 중국의 영향력 아래 들어가는 상황이 생길 가능성도 없지만은 않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과 일본 국민들이 최악의 상황을 겪은 뒤 미국이 동아시아 문제에 개입하면 더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계산을 할 수도 있다. 미군이 근시일 내에 이런 상황이 일어날 것을 상정해 대비한다면, 분산된 전력을 집중시킬 수밖에 없다.

    현재 중동 상황을 보면, 예멘은 휴전에 합의했고, 시리아는 러시아를 시켜 억제할 수도 있다. 시리아와 이란 등이 주변국을 위협한다면,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집트, 이스라엘과 레바논이 나설 수 있다. 자칫하면 美본토까지 핵미사일을 날릴 수 있는 북한이 있는 동아시아와는 위협 수준이 다르다. 트럼프 대통령이 시리아 주둔 미군을 철수시키고 중동 지역의 미군을 재배치하는 이유가 동아시아에서 발생할 사태에 대비한 게 아니냐는 주장은 이런 여러 가지 추측과 가정 때문에 힘을 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