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사 2심 "文대통령은 공산주의자" 발언에 '1000만원 배상' 판결... 형사 재판선 '무죄'
  • "제가 말한 대목에 모욕적인 언사나 모멸적인 표현이 어디 있습니까? 전 제가 믿는 진실한 사실에 근거해 의견을 진술했을 뿐 문재인 대통령을 폄훼하거나 모멸감을 주려는 의도는 추호도 없었습니다."

    고영주(69·사진) 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은 16일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항소7부(재판장 이원범)가 문재인 대통령을 '공산주의자'라고 말한 자신에게 1천만원의 손해배상 책임이 있음을 지적하는 판결(원고 일부 승소)을 내린 것과 관련, "지난 형사재판 판결과 대치되는 결과가 나오고 말았다"며 "해당 판결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으로 도저히 수용할 수 없다"고 밝혔다.

    고 전 이사장은 "원고(문재인 대통령)가 문제 삼는 제 발언은 2013년 1월 애국시민사회진영 신년하례회에서 했던 짤막한 인사말이었다"며 "당시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였던 문재인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우리나라가 적화되는 것은 시간 문제'라고 했던 말이 문재인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게 손해배상을 청구한 이유였다"고 설명했다.

    "대통령에 대한 모멸적 표현이 대체 어디 있나?"


    "당시 저는 노무현 정권 때 청와대의 부산인맥이란 사람들은 거의가 부림사건 관련 인맥이라고 말했고 공산주의 활동을 했던 사람들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문재인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우리나라가 적화(赤化)되는 것은 그야말로 시간문제라고 확신했다고 강조했습니다. 이 대목 어디에 문 대통령에 대한 모멸적인 표현이 있는지 재판부에 묻고 싶습니다. 정녕 이 나라엔 정치인에 대한 이념을 검증하고 토론할 자유조차 없단 말입니까?"

    고 전 이사장은 "저는 공안검사 출신으로 1981년 부산에서 일어난 부림사건(釜林事件)을 수사, 피의자들로부터 '공산주의 사회가 도래할 것'이라는 말을 직접 들은 장본인"이라며 "따라서 '재심' 변호를 맡아 그들의 실체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이, 피의자들의 주장에 동조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것은 그 역시 공산주의에 경도(傾倒)됐거나 매우 온정적인 시각의 소유자라는 걸 의미한다고 확신한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제가 모두 진술에서 밝혔다시피 북한의 대남전술에 동조하는 모습을 보이고 진보적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등 문 대통령이 공산주의자라는 근거는 얼마든지 있다"며 "이같은 확신을 토대로 문재인 대통령이 공산주의자라고 말했을 뿐인데 재판부는 제가 구체적 정황의 뒷받침도 없이 악의적으로 대통령을 모함했다고 판시했다"고 밝혔다.

    "형사재판 땐 '명예훼손의 고의 인정할 수 없다' 했는데..."


    고 전 이사장은 "지난 8월 서울중앙지법 형사11단독 재판부는 '피고인의 자료나 진술을 살펴보면 문 대통령을 악의적으로 모함하거나 인격적인 모멸감을 주려는 의도가 보이지 않는다'며 '명예훼손의 고의를 인정할 수 없다'는 판결을 내렸는데, 이번 민사항소심 재판부는 제 발언이 지나치게 감정적이고 모멸적 언사에 해당한다며 이를 표현의 자유로 인정할 수 없다는 납득하기 어려운 판결을 내렸다"고 지적했다.

    "이번 민사재판부는 제 발언이 문 대통령의 평가가 침해될 정도로 구체성을 갖췄다며 단순한 의견 표명으로 볼 수 없다고 하더군요. 대통령이 공적 존재이고, 발언 내용이 공적인 것이라 하더라도 악의적인 모함과 모멸적인 언사까지 표현의 자유로 인정할 수는 없다는 게 이번 판결의 요지였습니다."

    고 전 이사장은 "재판부는 남북이 대치하고 국가보안법이 존재하는 우리 현실에서 공산주의라는 표현 자체가 부정적이고 치명적인 의미를 갖는다고 말했으나, 저는 이념적 측면에서 '정치인 문재인'에 대한 평가를 내린 것이지 결코 그에게 모멸을 주고자 이같은 말을 했던 게 아니"라며 "만약 그 자리에서 제가 문재인 대통령을 폄하하고자 했다면 '공산주의자'라는 학술적이고 공식적인 말 대신 '빨갱이'라는 비속어를 썼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한민국에선 '공산주의자'란 말 못 꺼내나?"

    "비록 '의견 진술'이라 하더라도 모멸적인 표현까지 용인할 수는 없다는 대법원 판례가 있긴 하지만, 저는 '공산주의자'라는 말만 했을 뿐입니다. '공산주의자'라는 말 자체가 모멸적이라면 애당초 '공산주의자'라는 말을 꺼내지도 말아야 된다는 얘기인데, 자유 대한민국에서 그렇게 표현의 자유를 억압해도 되는 건가요?"

    고 전 이사장은 "유력 정치인의 이념은 국가적으로 큰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에 언제든지 공개하고, 수시로 검증과 토론의 대상이 돼야 한다는 지론에는 변함이 없다"며 "지난 형사재판에서도 그런 취지의 의견 진술이나 문제 제기는 광범위하게 허용돼야 한다는 판결이 내려졌는데, 이번 민사재판에선 사실상 특정 정치인에 대한 평가나 검증을 제한하는 판결이 나와 유감스럽다"고 밝혔다.

    고 전 이사장은 "재판부는 저를 허위 사실 유포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한 검찰의 논리를 그대로 답습, ▲문재인 대통령이 비서실장 시절 저에게 인사상 불이익을 줬고 ▲부림사건의 변호를 맡아 피고인들과 동지적 관계로 지냈으며 ▲북한의 주의·주장을 추종하는 공산주의자라는 저의 주장을 모두 허위 사실로 간주했으나, 이미 형사재판부가 제 발언의 허위사실 여부를 판단할 수 없다며 무죄를 판시한 마당에 왜 이를 부정해 논란의 불씨를 남겼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형사재판부는 허위사실 여부를 판단할 수 없다고 했지만, 제가 했던 의견 진술은 모두 사실에 부합합니다. ▲첫째, 참여정부 시절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이 저를 대검찰청 공안부장으로 전보발령 내려 했으나 당시 문재인 민정수석의 반대로 관철되지 못했던 건 사실입니다. 이미 이 이야기를 뉴데일리 인터뷰를 통해 밝힌 바 있습니다. ▲둘째, 문재인 대통령은 과거 부림사건 '재심사건'의 변호인이었습니다. 따라서 관련자들의 실체를 파악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던 것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셋째, 문 대통령을 공산주의자라고 말했던 것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고, 어디까지나 저의 주관적 견해일 뿐 사실을 적시한 게 아닙니다."

    고 전 이사장은 "이번 민사항소심 재판부는 당시 제 발언이 연설문 없이 즉흥적으로 이뤄진 것이라는 점을 참작해 배상액을 1심보다 2천만원 감액했지만, 제가 사실이 아닌 것을 얘기해 대통령에 대한 사회적 평가를 저해시켰다는 잘못된 판결을 내렸기 때문에 도저히 승복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앞서 문 대통령이 고 전 이사장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심리한 서울중앙지법 민사83단독은 2016년 9월 "피고의 발언은 원고에 대한 명예훼손적 의견을 단정적으로 표현했고, 이 발언이 진실이라고 믿을 상당한 이유가 존재한다고도 볼 수 없다"며 "피고는 원고에게 3천만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부림사건은 민주화운동 아닌 공산주의운동"

    지난 2013년 1월 4일 고 전 이사장은 '애국시민사회진영 신년하례회'에 국가정상화추진위원회 위원장 자격으로 참석, "이 사람(문재인 대표)이 대통령이 되면 우리나라가 적화되는 것은 그야말로 시간문제"라고 전한 뒤 "부림사건은 민주화운동이 아니라 공산주의 운동이며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 후보도 그걸 잘 알고 있었을 것"이라고 밝혀, 정치권에 뜨거운 화두를 던졌다.

    이후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를 대리했던 박성수 송파구청장(당시 새정치연합 법률위원장)이 고 전 이사장을 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하는 한편, 1억원의 손해배상까지 청구하는 민사소송을 제기하면서 양측간 법정 공방이 전개됐다.

    사건을 수사한 검찰(서울중앙지검 공안2부)은 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지난해 7월 고 전 이사장을 불구속 기소했고, 지난 7월 26일 서울중앙지법 형사11단독 심리로 열린 결심 공판에서 고 전 이사장에게 징역 1년 6월의 '실형'을 구형했다.

    이에 서울중앙지법 형사11단독(부장판사 김경진)은 8월 23일 열린 선고 공판에서 "명예훼손의 고의를 인정할 수 없다"며 고 전 이사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의 자료나 진술 등을 보면 악의적으로 모함하거나 인격적인 모멸감을 주려는 의도는 보이지 않고, 오히려 자유민주주의 체제라고 믿어 온 체제의 유지에 집착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한국전쟁을 겪은 세대와 이후 세대가 생각하는 공산주의 개념이 다른 것처럼 피고인이 표현한 공산주의의 개념도 다르고, 따라서 공산주의자란 표현이 허위 사실인지를 판단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