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거친 흙바람에도 사법적 양식(良識)은 등불을 밝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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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중앙지법 형사11 단독 김경진 판사는 "피고인의 자료나 진술 등을 보면 악의적으로 모함하거나 인격적인 모멸감을 주려는 의도는 보이지 않고, 오히려 자유민주주의 체제라고 믿어 온 체제의 유지에 집착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명예훼손의 고의를 인정할 수 없다"고 무죄 이유를 밝혔다. -뉴 데일리 2018/8/ 23

     고영주 변호사가 “문재인은 공산주의자”라고 한 데 대해 1심 재판부가 무죄를 선고한 것은 지금 같은 ‘모조리 궤멸’ 판에선 결코 쉽지 않은 소신 판결이었다.

     최근의 사법부 인사(人事)에서 보듯, 대법원과 헌법재판소 등 모든 요직에는 ‘코드’ 일색이 휩쓸었다. 이런 범람에도 불구하고 고영주 변호사의 의견 표명은 사법적 처벌의 대상이 아니라 사회적 논쟁의 대상이라고 한 것은, 혹 있을지도 모를 불이익을 고려하지 않은 용기 있는 논리였다.

      그 때 그 때의 권력의 대세에 순응하지 않고 오로지 판사 자신의 사법적 양심에 따라서만 판결한다는 것은 자유당-유신-신군부 때 뿐 아니라 오늘의 ‘이데올로기 세도(勢道)정치’ 하에서도 여전히 위험한 처신이다. 전체주의-획일주의 이데올로기의 위세(威勢)는 왕년의 권위주의와는 다른,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결코 덜하지 않은 공포일 수 있다.

     이 점에서 ‘유사(類似) 종교적 확신+정의 독점의식+홍위병 풍조+반(反)지성의 폭력’이 가해오는 중압은 오늘의 사법부를 또 다른 ‘정치의 도구’로 전락시킬 수도 있다. 일부 '운동권적  법관'의 “사법행위는 정치행위다”라는 공공연한 발언이 그 점을 반영한다.

      그러나 이 거친 흙바람에도 불구하고 다만 몇몇의 사법적 양식(良識)은 등불을 끄지 않은 채 살아있을 것이다. 그 드믄 사례를 ‘고영주 무죄’ 판결은 보여주었다. 항소심과 최고법원의 향방을 계속 주시할 것이다.

     류근일 / 전 조선일보 주필 /2018/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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