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김지선'의 삶은 인정, 그러나 정치는 다르지 않은가... '세습' 비판 경청하길
  • ▲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지난달 24일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 빈소에서 고인의 부인인 김지선 씨를 위로하고 있다.ⓒ뉴데일리DB
    ▲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지난달 24일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 빈소에서 고인의 부인인 김지선 씨를 위로하고 있다.ⓒ뉴데일리DB
    고(故) 노회찬 전 정의당 의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지 약 한 달만인 지난 20일, 기자들에게 한 통의 편지가 전달됐다. 노 전 의원 부인 김지선(64) 씨로부터 온 것이었다.

    편지 글은 "노 전 의원의 마지막을 배웅하고 추모해줘서 고맙다"는 내용도 있었으나, 눈에 띈 내용은 "슬픔을 추스르려 한다. 노회찬이 마지막까지 지키고 싶어했던 꿈을 이루기 위해 일어서려 한다. 그 꿈을 이루는 길에서 늘 여러분과 함께 하겠다"는 것이었다. 

    김씨의 글이 언론에 보도되자, 많은 사람들은 '정치활동 선언' '지역구 물려받기 아니냐'라는 반응을 보였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노 전 의원의 부인이 정치할 의향을 보인 것"이라며 "아마도 (출마한다면) 노 전 의원 지역구에 출마하지 않겠나"고 했다. 

    인터넷 여론도 비슷했다. 아이디 weld****는 "정치하겠으니 죽은 남편 대신 날 찍어라 그런거냐? 당신이 대체 뭘 할건지 말해봐라"고 했고, 아이디 jt05****는 "뭘 일어선다는건지..정치하겠다고?"라고 했다.

    김지선 "꿈을 이루기 위해 일어서려 한다"... 지역구 물려받기?

    공교롭게도 김씨가 기자들에게 편지를 보낸 즈음, 일명 '지라시(증권가 정보지)'가 나돌았다. 김씨가 남편인 노 전 의원 사망으로 내년 4월 3일 치러지게 될 보궐선거에서 남편의 지역구(창원시 성산구)에 출마할 것이라는 것과 속칭 '진보진영'에서 후보를 내지 않고 김씨를 '진보 단일후보'로 만들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기자가 이 내용을 단순한 '지라시'로 치부할 수 없었던 데는 과거 김씨의 행적이 '오버랩'됐기 때문이다. 2013년 4월, 일명 '안기부 X파일' 사건으로 노 전 의원이 의원직을 상실했을 때, 김씨의 출마설(?)은 현실화됐었다. 당시 노 전 의원 지역구인 서울 노원병 보궐선거 후보로는 진보정의당 소속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과 천호선 최고위원이 물망에 올랐다. 하지만 후보등록일이 다가오자 김씨의 출마설(?)이 나돌았고, 최종 공천권을 거머쥔 인물은 유권자에게 '듣보잡'이었던 김씨였다. 

    당시에도 김씨의 출마에 대해 '지역구 물려받기' 비판이 있었다. 하지만 김씨와 진보정의당은 "누구의 배우자가 아닌 김지선이란 이름으로 출마를 결심했다", "노회찬 대표의 부인이라서가 아니라 노원병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후보라서 추천했다"며 '지역구 물려받기'를 정면 반박했다. 유시민 전 장관이나 천호선 최고위원보다 김씨가 '경쟁력' 있다는 게 진보정의당의 판단이었다. 결과는 참담했다. 김씨의 득표율은 5.7%. 노 전 의원이 19대 총선에서 거뒀던 득표율(57.21%)의 10분의 1에 불과했다. 1위는 60.4%의 득표율을 기록한 안철수 당시 무소속 후보였다. 유 전 장관이나 천 최고위원이 출마했다면 '고작' 5.7%의 득표율을 기록했을까.
  • ▲ 7월 23일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마포구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의 모습.ⓒ사진공동취재단
    ▲ 7월 23일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마포구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의 모습.ⓒ사진공동취재단
    '노회찬 레거시' 받을 만한 인물인가?

    대한민국은 출마의 자유를 보장한다. 그렇다고 '누구나' 출마를 하진 않는다. 김씨를 '누구나'의 범주에 넣고 폄훼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다만 김씨가 노 전 의원의 '레거시(Legacy)'를 물려받을 정도의 인물일까.

    정의당은 지난 2013년 4월 서울 노원병 재보선과 마찬가지로, 김씨에 대해 "여성운동가, 노동운동가, 인권활동가"라며 충분한 '자격'이 있다고 할 것이다. 실제 김씨의 삶에서 '노동'은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언론 보도를 종합하면 인천 출신인 김씨는 인천송현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16세 때 인천의 한 목재공장에 취직했고, 이후 노동자로 살면서 자연스럽게 노동운동을 해왔다고 한다. 1978년 CBS생방송 도중 '동일방직 문제 해결' 등의 구호를 외친 '부활절 여의도 새벽 예배 사건'으로 구속됐고, 1983년 '인천블랙리스트 사건'으로 또다시 수감생활을 했다. 인천노동자복지협의회 사무국장, 인천지역노동자연맹 부위원장 겸 사무국장, 인천여성노동자회 회장 등을 거쳤다.

    '노동자 김지선'의 삶은 인정한다. 하지만 '정치인 김지선'은 어떤가. 정치로 국민에게 평가 받을 수 있는 그의 삶은 2013년 4월 현실정치에 발을 내디딘 후부터다. 김씨도 2013년 4월 낙선한 뒤 "저의 정치는 이제 시작이다. 끝까지 노원 상계동을 위해 일할 것을 약속드린다"며 정치활동을 계속하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그런데 이후 김씨가 어떤 정치활동을 했는지 우리는 잘 알지 못한다. 물론 정의당은 '여성 노동운동가'로 꾸준히 활동했다고 주장할 수 있다. "삼성 X파일 사건의 진실을 국민법정 앞에 세우는 가장 경쟁력 있는 후보"라고 했던 것처럼 '노 전 의원 마케팅'을 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정치인의 말은 '약속'이다. "노원구를 위해 끝까지 일하겠다"는 각오를 김씨는 약속했다. 김씨가 이번 보궐선거에 출사표를 던질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만약 김씨가 내년 4⋅3 보궐선거에 창원 성산구에 출마를 한다면 김씨의 약속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스스로 정치 초년생으로 "저의 정치를 시작하겠다"고 했던 김씨의 정치는 '지역구 물려받기' '세습' '철새' 정치인가 되묻고 싶다.

    지난 26일 정의당은 노 전 의원의 뜻을 기리는 '노회찬 재단' 설립을 추진한다고 했다. 이를 위해 노 전 의원의 49재인 9월 9일 추모사업 설립계획을 담은 제안문을 발표한다. 경제학자인 고(故) 정운영 박사는 노 전 의원을 '출중한 진보의 파수꾼'으로 평가했다. 노 전 의원은 특히 삼성 같은 '자본 권력'인 재벌 세습에 매우 비판적이었다. '정치권력'인 국회의원 세습에 대해 노 전 의원은 어떤 생각을 할까. ‘진보정치 아이콘' 노 전 의원의 레거시가 빛 바래지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