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美 역할 과소평가... 트럼프에겐 南-北-中 모두 北문제 해결의 지렛대일 뿐"
  • ▲ 도널드 트럼프 美대통령이 지난 24일(현지시간)에 올린 폼페이오 장관 방북 취소 트윗. ⓒ트럼프 美대통령 트위터 캡쳐.
    ▲ 도널드 트럼프 美대통령이 지난 24일(현지시간)에 올린 폼페이오 장관 방북 취소 트윗. ⓒ트럼프 美대통령 트위터 캡쳐.
    도널드 트럼프 美대통령이 지난 24일(현지시간)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방북을 전격 취소했다. 이때 트럼프 美대통령은 “우리는 북한 비핵화가 충분히 진전됐다고 느끼지 못해 폼페이오 장관에게 이번에는 북한에 가지 말라고 요청했다”면서 “폼페이오 장관은 아마 중국과의 무역 문제가 해결된 뒤, 가까운 장래에 북한에 갈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한 “김정은에게 안부를 전하고 싶다”며 “그를 곧 다시 만나기를 고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트럼프 美대통령의 발언이 나온 뒤 일부 한국 언론은 “이제 미국과 북한 사이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중재 역할이 주목된다”는 주장을 폈다. 청와대 안팎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왔다. 그런데 이런 시각에는 심각한 문제가 숨어 있다. 한반도 문제에 있어 한국의 위치를 잘못 보고 있다는 점이다.

    靑관계자 “문재인 대통령의 중재자 역할 더 커진 게 아닐까”

    폼페이오 美국무장관의 방북이 갑자기 취소된 이후 청와대는 처음에는 공식 입장이나 논평 없이 그냥 넘어가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지난 26일 청와대 관계자는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런 말을 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중재자 역할이 더 커진 게 아닌가 싶다. 북미 간 경색된 상황에서 막힌 곳을 뚫어주고 북미 간 이해의 폭을 넓히는 데 있어 문 대통령의 촉진자 역할이 더 커진 것이 아닌가. 그런 측면에서 (문 대통령이) 더 역할을 해주실 것이라 생각한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 같은 전제를 두고 “이런 구도 속에서 (3차 남북정상회담) 일정과 안건이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과 관련해서도 우리 정부는 미국과 상황 인식을 위해 긴밀히 소통하고 협의 중”이라고 이야기를 풀었다.

    이 발언은 청와대가 남북관계와 美北관계가 별개라고 보는 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그러나 청와대의 이전 발언은 남북관계 개선이 美北대화에 ‘종속’된 것이라고 풀이할 수 있는 설명이 많다. 제3차 남북정상회담이나 개성공단 남북연락사무소 개소 문제 등이 그렇다. 
  • ▲ A4 용지를 들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 2016년 4월 촬영한 사진이다.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A4 용지를 들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 2016년 4월 촬영한 사진이다.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정부 관계자 발언대로면 文대통령, 중재자 아닌 ‘종속변수’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지난 21일 “북미 관계가 빠르게 진전을 보면서 좋은 결실을 맺기를 기대하고 있다”며 “여러 번 말씀드렸듯 북미 관계 발전이 남북 관계 발전을 촉진하고, 남북 관계 발전이 북미 관계를 이끄는, 그런 선순환이 돼야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폼페이오 美국무장관의 방북이 취소된 이후인 26일 청와대 관계자는 “폼페이오 장관 방북에 대한 기대감이 있었는데 이뤄지지 않아서 아쉽다”고 말해 남북관계와 美北관계 간의 관련성이 깊다는 점을 시인했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이 27일 정례 브리핑에서 개성공단 남북연락사무소에 대해 설명한 점도 비슷한 맥락이다. 그는 개성공단 남북연락사무소와 폼페오 美국무장관 방북 간의 상관관계에 대해 “영향이 없다고 할 수 없다”고 답했다.

    김 대변인은 “남북연락사무소는 폼페이오 장관 방북과 남북정상회담…. 일정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가운데 추진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런 상황이 발생했으니 그에 맞춰 다시 한 번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면서 “우리 정부가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북측과 같이 상의해야 할 문제로, 북측이 상황 변화와 정세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아직 공식적인 논의가 안 되는 것으로 알고 기다리고 있다”고 밝혔다.

    김 대변인의 설명은 문 대통령이 美北 간의 대화에서 ‘중재자’로 부를 만큼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미국과 북한의 움직임과 태도에 ‘종속된 역할’밖에 할 수 없는 것으로 풀이해도 반박하기 어렵다.

    청와대가 얼마 전까지 “남북정상회담을 9월 초 평양에서 열 것”이라고 했다가 남북고위급회담 이후 “9월 초에는 어렵지 않을까 한다”면서 “일단 북한이 초대한 주인이니까 북측의 사정을 감안해 날짜를 정할 것”이라고 말을 바꾼 일, 통일부가 27일 정례 브리핑에서 폼페오 美국무장관 방북 취소 문제와 관련해 특별한 입장을 갖고 있으며, 8월에 있을 예정이던 남북연락사무소 개소와 소장 임명 등이 9월로 미뤄질 것 같다고 밝힌 점 등은 문 대통령이 美北 간의 중재자가 아니라 ‘종속된 역할’이 아닌가 하는 의심에 더욱 힘을 실어준다.
  • ▲ 2017년 11월 방한한 도널드 트럼프 美대통령을 만나는 문재인 대통령. 文대통령은 이날 경기 평택미군기지에 미리 가서 트럼프 美대통령을 기다렸다.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2017년 11월 방한한 도널드 트럼프 美대통령을 만나는 문재인 대통령. 文대통령은 이날 경기 평택미군기지에 미리 가서 트럼프 美대통령을 기다렸다.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트럼프, 중국과 북한 서로 견제하는 카드로 사용

    “문 대통령이 美北 관계에서의 중재자 역할을 할 것”이라거나 “남북관계 개선이 美北관계 개선과 함께 선순환 되어야 한다”는 청와대 주장은 한반도에 있어 미국의 역할을 과소평가하고 남북이 핵심 주체라는 전제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현실은 청와대 생각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트럼프 정부는 2017년 1월 집권 직후부터 북한과 중국을 ‘패키지’로 엮어서 보고 있다. 트럼프 美대통령은 2017년 11월 중국을 방문하기 전 “이번 방중의 핵심 사안은 북한 비핵화 문제”라고 언론 플레이를 했다. 트럼프 정부는 美北정상회담 일정이 정해진 뒤부터 최근까지 북한 비핵화를 언급할 때마다 김정은을 칭찬하면서 중국 정부를 향해서는 “북한 비핵화를 위해 노력 좀 하라”고 독촉했다.

    트럼프 美대통령이 지난 24일(현지시간) 트위터에서 “폼페이오 장관은 중국과의 무역 분쟁이 해결된 이후 북한에 갈 것”이라며 “중국이 예전만큼 북한 비핵화를 돕고 있다고 믿지 않는다”고 주장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 말을 한 날이 왕셔우원 中공산당 상무부 부부장(차관)이 美中무역전쟁 중단을 위한 방미 일정을 끝낸 다음날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트럼프 정부가 중국에게 북한 카드를 어떻게 쓰는지 추측할 수 있다.

    한편 트럼프 정부는 북한에게는 “우리와 손을 잡고 비핵화를 하자”는 제안을 여러 차례 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5월 말 김영철 北통일전선부장이 미국에 가서 폼페이오 美국무장관, 앤드류 김 美중앙정보국(CIA) 한국임무센터(KMC) 센터장 등과 만나고, 백악관을 찾아 트럼프 美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도 ‘베트남식 경제발전’을 제안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중국 품 안에서 나오라”는 의미다.

    미국과의 관계 개선으로 경제발전을 이룬 나라가 한둘이 아닌데 굳이 베트남을 거론한 이유를 두고 국내외 전문가들은 “미국과 전쟁을 할 만큼 적대적이었지만 지금은 우호관계를 맺고 있고, 중국과 한 때는 가까웠지만 지금은 서로 경계를 하는 나라”여서 베트남을 꼽은 게 아니냐고 풀이했다.
  • ▲ 지난 7일 경북 포항 북부신항 제7부두에서 북한산 석탄을 하역 중인 모습. 북한산 석탄 국내반입 사건은 미국을 열받게 하기 충분한 일이다.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지난 7일 경북 포항 북부신항 제7부두에서 북한산 석탄을 하역 중인 모습. 북한산 석탄 국내반입 사건은 미국을 열받게 하기 충분한 일이다.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문재인 정부, 트럼프 정부가 그리도 싫은가

    트럼프 정부가 중국과 북한을 서로를 움직이는 ‘지렛대’로 이용한다는 점은 상식처럼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2018년 8월 말 한국은 미국에게 어떤 상대일까.  

    2017년 말까지 한국은 분명 미국과 함께 북한 비핵화 협상에서의 ‘주체’였다. 그러나 올해 1월 남북고위급회담과 북한의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 4월 27일과 5월 26일 남북정상회담, 6월 12일 美北정상회담 등을 거치면서 한국은 스스로를 “미국과 북한 사이”에 두면서 ‘주체’에서 벗어나려 했다.

    美北정상회담 이후 한국은 북한이 요구하는 ‘종전선언’ 문제를 계속 꺼내들고 미국을 설득하려 했다. ‘종전선언’에 중국까지 끼워 넣으려 했다. 그리고 지난 7월 17일 ‘미국의 소리(VOA)’ 방송이 보도한 북한산 석탄 한국 반입 소식과 8월 10일 韓국세청의 조사결과 브리핑은 미국의 인내심을 시험하는 내용이었다. 이후 美국무부는 개성공단 남북연락사무소 개소, 개성공단 재개, 금강산 관광 재개 등의 소문이 한국 사회에서 나올 때마다 “누구든 간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제재를 성실히 이행해야 한다”는 입장을 강조했다.

    북한산 석탄을 한국에 수출할 때 도움을 준 러시아, 대북제재를 어기고 전력과 석유를 공급한 중국은 현재 미국으로부터 제재와 관세를 부과 받아 상당한 타격을 입었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북한은 중국과 러시아, 둘 중 하나라도 미국 편에 설까 두려워하게 된다. ‘판’이 이렇게 돌아가는 데도 문재인 정부는 북한산 석탄 반입, 개성공단 남북연락사무소, 3차 남북정상회담 등으로 트럼프 정부의 비위를 거스르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계속 ‘중재자’를 강조하며 북한 비핵화를 위한 대북제재에 빈틈을 만들면 트럼프 정부는 어떻게 할까. 중국과 북한에 한국까지 ‘한 패키지’로 간주하고, 서로를 향한 ‘지렛대’로 사용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 즉 북한 비핵화 문제에서 한국도 ‘문제 가운데 하나’가 된다는 뜻이다. 이미 한국을 그렇게 대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美의회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