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회견 통해 원자력업계·학계 비난... 전문가들 반박에 "대꾸할 가치 없다"
  • ▲ 에너지전환포럼(상임대표 홍종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은 지난 21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원자력업계 에너지전환 흔들기, 도를 넘었다'는 주제로 기자회견을 열었다. ⓒ뉴데일리 공준표
    ▲ 에너지전환포럼(상임대표 홍종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은 지난 21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원자력업계 에너지전환 흔들기, 도를 넘었다'는 주제로 기자회견을 열었다. ⓒ뉴데일리 공준표
    21일 에너지전환포럼(상임대표 홍종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이하 포럼)은 원자력계를 향해 작심한 듯 비판의 목소리를 쏟아냈다. 이날 포럼이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연 기자회견 주제도 <원자력업계 에너지전환 흔들기, 도를 넘었다>였다.

    두 전문가집단이 서로 상반되는 의견을 내는 경우는 흔하지만, 한 집단이 다른 집단에 이 정도 수준의 공격적 비난을 퍼붓는 건 드문 일이다. 하지만 포럼은 "원자력계는 에너지전환정책에 대해 사실과 다른 정보를 유포해 국민에게 혼란을 주고 있으며 정부 정책에도 제동을 걸고 있다"고 맹비난했다.

    이날 포럼은 '원전은 변방 산업으로 전락' '한전 적자는 탈원전 탓이 아니라 정부 규제 탓' '원전이 경제성이 없는 이유는 안전규제 강화 때문' 등의 주장을 펼쳤다. 포럼이 이날 배포한 자료 분량만 21페이지에 달한다. 이와 관련된 내용은 본지가 <"'원자력'이 변방산업? 기술적, 경제적 근거 없다!"> 제하의 기사로 22일 보도했다.

    회견 자료를 본 원자력 전문가들은 "터무니없다"는 반응을 보였지만, 일반인이 이날 포럼의 기자회견을 들었다면 어떻게 받아들였을지 모를 일이다. 우선, 포럼 측 참석자는 대학교수·정부출연기관 관계자 등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전문용어와 자료를 적절히 배합해 일정 수준 이상의 논리를 구사한다. 애당초 원자력 전문지식이 없는 일반인은 이들이 제시하는 자료와 주장의 행간에서 오류를 찾아내기 쉽지 않다.

    원자력 전문가 "석 위원, 한전 적자 전후관계 설명 안 해"

    이날 포럼 측 발표자 석광훈 에너지시민연대 정책위원은 '한전 적자는 탈원전 때문이 아니라, 전기요금에 원가반영을 막는 규제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석 위원은 일반 시민운동가로 보기 어렵다. 녹색연합 정책위원 출신 석 위원은 현재 정부출연기관인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 감사직에 올라 있다. KINS에 따르면 그는 지난 7월 23일 임용됐으며 임기는 2년이다. 하지만 석 위원은 이날 포럼 자료에서 시민단체 관계자로 소개됐다. 석 위원의 주장은 이렇다.

    "원자력계는 한전의 상반기 8천억원 영업적자와 정부의 전기요금 누진제 유지가 월성 1호기 폐쇄, 엄격해진 안전점검 등 '탈원전' 때문인 것으로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무리한 원전가동으로 94%라는 기록적인 원전이용율을 유지했던 이명박 정부 시기 한전은 2008년 2조8천억원, 2011년 1조원 등 훨씬 큰 규모의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따라서 원자력계의 주장은 아전인수에 불과하다. 정작 문제의 핵심은 당시나 현재나 석탄, 가스 등 연료가격 상승에도 원가의 전기요금 반영을 막는 정부 규제에 있다. 지난 4월부터 배럴당 70달러를 넘는 고유가 상황에서 유연탄 구입비용은 전년 상반기보다 28% 인상됐고, 한전 발전자회사 원료비 부담은 26.7% 증가했음에도 '발전원료비 연동제'가 지금까지 시행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우선, '원료비 연동제'는 가스·석탄 등 원료비가 오르면 전기료를 올리는 제도다. 전기값이 올라 국민 부담금이 높아지면 한전 적자폭이 줄어든다는 것은 초등학생도 알 만한 사실이다. 참고로, 지난해 정부는 2022년까지 탈(脫)원전·에너지정책 전환으로 인한 전기료 인상이 없다고 공언한 바 있다.

    과연 이같은 석 위원의 논리는 타당할까. 원자력 전문가 A씨는 "시장논리에 따르면 연동제가 바람직하고, 이 논리는 맞는다"면서도 "다만 나머지는 숫자를 교묘히 조합해 거짓을 주장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A씨는 "2008년 당시 유가는 배럴당 100달러를 넘었고, 가스값도 1MBtu(천연가스 단위)당 10~14달러 수준이었다. 현 가스값 2.8달러와 비교하면 최소 3.5~5배 높은 가격"이라며 "그럼에도 당시 전기료 인상 없이 2조8천억원의 적자에 그친 건 원전가동률을 최대로 유지했기 때문이다. 만약 그때 원전가동률이 지금 수준이었다면 적자폭은 훨씬 더 불어났을 것"이라고 말했다.

    A씨는 "앞뒤 전후관계를 다 자르고 이런 식으로 주장하는 것은 전문가로서 적절치 못하다"고 말했다. 사실관계에 대한 부연설명 없이 '10년 전 원전가동률은 매우 높았지만 적자폭은 지금보다 훨씬 컸다'→'한전 적자 원인은 탈원전이 아닌 정부 규제'→'따라서 한전 적자가 탈원전 때문이라는 원자력계 주장은 왜곡'이라는 논리를 펴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A씨는 "가스값이 2배만 올라도 한국 전기료는 요동치게 돼 있다. 지금까지 원료값 인상으로 인한 전기료 인상 압박을 고스란히 흡수한 에너지원이 원자력"이라며 "이 점을 부인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원전이용률, 한전 적자에 큰 영향 없다?

    27일 본지 통화에서 석광훈 위원은 "2008년 당시 원자력으로 3조 적자날 것 2.8조로 줄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정부 규제가 한전 적자의 핵심(문제)인 것은 사실"이라며 "시장의 수요공급 조절기능을 상실시킨 것이기 때문"이라고 재반박했다.

    석 위원은 "(연동제로) 가격 원가반영을 하면 수요가 줄게 되는데, 그런 식으로 하지 않다보니 전력시장 자체가 왜곡이 된다. 전력소비자들도 (전기가 싸다는) 잘못된 신호를 받아 수요가 증가하게 되고 궁극적으로 정전에 이르게 된다"며 "(원자력계는) 이런 핵심적인 부분을 말하지 않고, 원전을 돌리면 전기료를 낮출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원전 조금 더 돌려서 전기료를 약간 낮출 수 있다 해도, 고유가 상황을 원전으로 막는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높은 원전이용률이 결과적으로는 대세에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주한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한전이 적자보는 요인은 2가지"라며 "하나는 LNG(액화천연가스) 가격 상승이다. 원전이용률이 같아도 LNG 가격이 오르면 적자다. 또 하나는 원전이용률이 줄어들고 LNG 대체발전이 늘어나는 것이다. 이 경우, 적자폭은 더욱 커진다"고 설명했다.

    이어 주 교수는 "원전가동을 줄인 만큼 값비싼 석탄·가스 등으로 대체발전을 했으니 한전 적자가 확대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실제 지난 2일 정유섭 자유한국당 의원이 한전·전력거래소 등으로부터 입수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한전 전기 판매 수익은 지난해 상반기 3조431억원, 올 상반기 2조301억원으로 지난해 대비 1조원 이상 감소했다. 같은 기간 원전가동률은 75.2%에서 59.8%로 크게 줄었다.

    한전은 2015년과 2016년 10조원 이상의 영업이익을 냈고 2017년도 5조원에 육박하는 수익을 올렸다. 그러나 탈원전이 본격화된 지난해 4분기부터 2분기 연속 1천억원 이상의 적자를 냈다. 따라서 원자력계는 탈원전이 한전 적자에 결정적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것이 넌센스라고 주장하고 있다.

    "반박할 가치 없다"며 깎아내리기만…

    21일 포럼 기자회견이 끝나자 10여 건의 기사가 보도됐다. 원자력계는 포럼 측 회견자료를 검토한 뒤 22일 즉각 반박자료를 냈다. 이 반박문 역시 포럼과 비슷한 수준의 기사량이 포털에 게시됐다. 원자력계 반론이 나온 지 일주일 가까이 지났음에도 포럼은 재반박을 하지 않고 있다. 반박할 가치가 없다는 게 이유다.

    27일 에너지전환포럼 관계자는 "대꾸할 만한 가치가 없다. (원자력계 반박에 대한) 반박은 기자회견 자료를 보면 다 나와있다"면서 "그분들(원자력 전문가)은 경제학자도 아니고, 전기공학자도 아니다. 전문적인 내용을 잘 모르는데 우리가 일일이 대응하는 것은 사회적으로 생산적인 일이 아니다"고 말했다. 

    송종순 조선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이미 원자력계는 반박자료를 낸 상태고, 향후로도 이 문제와 관련해 포럼에서 반박자료가 나오면 또다시 팩트체크를 통해 정확한 정보를 국민에게 제공할 것"이라며 "서로 국회와 같은 독립적 장소에서 심포지엄 등 논의를 통해 최종적으로 정부 정책변화까지 이끌어내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각자의 주장 및 자료에 대해 '반박할 가치가 없다'고 느낀 쪽이 비단 '에너지전환포럼' 만의 감상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원자력계는 포럼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한 자료를 만들어 이튿날 아침 언론에 배포했다.

    반면, 주요 발표자 중 1인이었던 석 위원은 27일까지 한국원자력학회의 반박문도 보지 않았다고 했다. "대꾸할 만한 가치가 없다"고 말한 포럼 관계자 역시 회견 발표자였다. 과연 어느 쪽이 국민과 국가 에너지정책에 진정성·책임감을 가진 전문가집단이라고 할 수 있나. 과연 어느 쪽이 국민 혼란을 야기하고 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