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법위반 사건 송치하면서 공소시효 10년 법조항 적용체포 당시엔 6개월로 보고 긴급체포법원 "인신 구금은 신중해야"…경찰 과잉 체포 지적법조계 "오히려 무리한 체포였음을 스스로 인정"
  • ▲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서성진 기자
    ▲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서성진 기자
    공소시효 임박을 내세워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을 무리하게 체포해 논란을 빚은 경찰이 사건을 송치하면서 말을 바꿔 논란이 더 커지고 있다.

    경찰은 이 전 위원장에게 적용된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공소시효를 6개월로 보고 체포가 불가피했다는 입장이었지만 막상 검찰에 사건을 송치하면서 공소시효 10년에 해당하는 법 조항을 적용했기 때문이다.

    법조계 일각에선 경찰이 정부의 눈치를 보고 '망신주기' 체포에 나선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검찰개혁 이후 예상됐던 경찰의 무소불위 권한 남용 우려가 현실화한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경찰, 이진숙 공소시효 6개월 주장하더니 10년으로 말바꿔

    25일 법조계 등에 따르면 지난 24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청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경찰 관계자는 "공무원이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범죄를 저지르더라고 직무 관련 또는 지위 이용이 있는 경우에는 공소시효가 10년"이라며 "직무와 관련되고 지위를 이용했는지 여부는 조사를 해봐야 안다"고 말했다.

    해당 관계자는 "단기 공소시효가 적용될 여지를 열어두고 수사를 진행하다가 본인이 증거를 제출해서 직위 이용이 아니라는 부분에 대해 확인될 수도 있어 우선적으로 수사를 진행하게 된 것"이라며 "최종적인 판단은 조사 내용을 종합해서 직무 관련성이 있었다고 결론 낸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성주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도 공소시효 적용 판단이 바뀐 것은 아니다라면서 "검찰에서도 추가적인 수사를 진행해서 (경찰에) 보완수사 요구가 올 수 있어 판단 근거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씀드리기 어렵다"고 말했다.

    앞서 서울 영등포경찰서는 지난 19일 이 전 위원장을 해당 혐의로 서울남부지검에 불구속 송치했다. 다만 경찰은 이 전 위원장의 일부 발언에 대해선 혐의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보고 불송치 결정을 내렸다. 이 과정에서 쟁점이었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의 공소시효가 최종적으로 10년 규정이 적용됐다.

    당초 경찰과 이 전 위원장은 사건 공소시효를 두고 엇갈린 주장을 폈다. 경찰은 지난달 2일 이 전 위원장을 체포했다가 법원의 체포적부심 인용으로 약 50시간여 만에 석방했다. 이후 과잉 수사 논란이 일자 공소시효가 임박했다는 명분을 내밀었다.

    선거법 위반 사건 공소시효가 지난 대선일로부터 6개월 후인 12월 3일로 촉박해 이미 6차례 출석 요구에 불응한 피의자를 체포할 수밖에 없었다는 논리다.

    하지만 이 전 위원장 측은 선거법 제268조의 3항을 들어 '공무원이 직무와 관련해 또는 지위를 이용'한 경우에 해당해 공소시효가 10년이라고 주장했다. 공소시효가 경찰의 체포 영장 집행의 명분이 될 수 없다는 취지에서다.

    한 법조계 인사는 "공소시효에 대한 해석의 여지가 있지만 그렇게 서둘러야 했던 상황이라면서 송치는 오히려 느긋하게 했다"면서 "공소시효와 관련한 경찰 주장은 오히려 무리한 체포였음을 스스로 인정하고 꼴"이라고 지적했다.
  • ▲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4일 오후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 열린 체포적부심사에 수갑을 찬 모습으로 출석하고 있다. ⓒ서성진 기자
    ▲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4일 오후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 열린 체포적부심사에 수갑을 찬 모습으로 출석하고 있다. ⓒ서성진 기자
    ◆법원도 경찰 과잉 체포 인정…법조계 "경찰 표적수사 우려"

    이 전 위원장은 방송통신위원장을 지내던 지난해 9~10월과 올해 3~4월 유튜브와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정무직 공무원으로서 정치적 중립을 위반하는 발언을 하거나(국가공무원법 위반) 제21대 대통령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사전 선거운동을 한(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받았다.

    사실상 직무 관련성이 인정되는 부분이다. 하지만 경찰은 혐의를 설명하며 직위를 이용한 행위라고 주장하면서도, 체포할 때는 6개월 공소시효를 적용하는 이중잣대를 들이댔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공소시효 6개월 규정의 취지는 선거에 나온 후보자의 지위를 신속히 안정시키기 위한 것"이라며 "이 전 위원장의 행위는 후보자를 비판한 쪽이므로 그 취지와 맞지 않기 때문에 10년 시효를 적용하는 것이 타당했다"고 설명했다.

    사실 법원도 경찰의 과잉 대응을 문제삼았다. 이 전 위원장은 지난 2일 경찰에 체포된 지 50시간 만에 법원 결정으로 풀려났다.

    당시 서울남부지법은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제한을 이유로 한 인신 구금은 신중해야 하고 이 전 위원장에 대한 체포의 필요성이 유지되지 않는다"며 경찰의 체포가 부적절했음을 밝혔다.

    이에 법조계에서는 검찰개혁 이후 과도하게 비대해질 경찰 권한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검찰개혁으로 수사·기소가 분리되고 검찰청 해체가 현실화하면 경찰은 모든 1차 수사권을 사실상 독점하게 되기 때문이다.

    차진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검찰청 폐지 후 경찰이 수사권을 독점하면 이번 사태와 같은 일들이 더욱 빈번하게 나타날 것"이라며 "경찰이 민주당의 요구에 부응해 실적을 빨리 보여주려 한 것 아니냐는 의혹으로 보이기에 충분하다"고 말했다.

    이어 "검찰개혁 이후 경찰 수사에서 범죄 피해자와 가해자가 뒤바뀌거나 일반 서민의 사기·횡령 사건은 수사가 미진해질 위험이 있다"며 "정치적 실세가 피해자인 경우에는 별건 수사까지 진행하는 등 수사 대상에 따른 하명 수사가 심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