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실익이 협정 조기 개정의 최종 변수文 정부 '한미미사일지침 해제' 선례 주목트럼프 행정명령, 美 원자력 한계 드러내MASGA에 MANIGA까지 새 프레임 필요5% 농축·블랙박스 모델 등 절충안 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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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재명 대통령이 8월 25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을 마치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뉴시스
오는 29일 열릴 한미 정상회담 합의문에는 우라늄 농축과 핵연료 재처리를 허용하는 방향으로 한미 원자력협정 조기 개정 추진을 시사하는 내용이 포함될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이는 한국의 3500억 달러(약 495조 원) 규모 대미 투자안이 합의될 경우에 한해 '긍정적 방향성'을 명시하는 수준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親 트럼프 진영 내에서도 엇갈린 시선 … 실리론 vs 신중론한국 정부는 한미 원자력협정 조기 개정을 핵잠재력 확보 시도가 아닌, 산업·경제적 필요에 따른 절차로 선을 긋고 추진해 왔다. 그러나 미국 공화당에서는 한국이 핵잠재력을 확보하면 한미동맹 안에서 더욱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있으며 대중 억제력을 높일 수 있다는 실리론과 역내 핵확산 위험을 키울 수 있다는 신중론이 공존한다.하경석 국가안보전략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지난 20일 니어재단 세미나에서 "공화당 내 친(親)트럼프 진영에서도 한국의 핵 잠재력 확보가 한미동맹에 도움이 된다는 의견과 한국의 잠재적 핵 의지 자체에 강한 거부감을 표하는 의견이 나뉘어져 있다"고 전했다.이러한 내부 이견은 향후 합의문 문안 반영 과정에서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보이며, 합의문 문구 확정까지는 정치적 조율이 남아 있다는 것이 복수 외교 소식통의 전언이다.◆이념 아닌 실익이 움직인 바이든의 결정 … 文 정부 한미 미사일지침 해제진보좌파 성향의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21년 조 바이든 당시 미국 행정부가 한미 미사일지침을 전격 해제하며 한국의 미사일 사거리(800㎞) 제한을 완전히 폐지한 사례를 고려하면 이번 협정 개정도 이념적 요인보다는 미국의 전략적 실익에 따라 좌우될 가능성이 크다.바이든 행정부가 한국 정부의 이념 성향과 관계없이 미사일지침 해제를 단행한 것은 중국 견제 구도에서의 전략적 실익을 우선 고려했기 때문이다. 이는 거래주의적 성향이 뚜렷한 트럼프 행정부에서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 논의도 미국의 국익에 부합한다고 판단되면 현실적 거래로 이어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미국의 대외 정책이 '실익의 논리'로 수렴하는 흐름 속에서, 이재명 정부가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 문제를 한미 간 실익 조율의 핵심 의제로 끌어올렸다. 그 배경에는 한국이 원자력 기술을 미국으로부터 도입한 만큼 현행 한미 원자력협정 체제 아래에서 기술적·제도적 제약을 받아야 하는 현실이 있다.2015년 개정을 거쳤지만, 여전히 원전 연료의 안정적 공급을 위한 우라늄 농축과 사용후핵연료를 포함한 방사성 폐기물 관리에 필수적인 재처리 역량 확보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트럼프 대통령의 원자력 관련 행정명령에서도 만료 10년을 앞둔 원자력 협정을 재협상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어 미국 측에도 협정 개정에 나설 유인이 존재한다. 현행 한미 원자력협정의 만료 시점은 2035년 6월이다.◆트럼프의 원자력 부흥 행정명령 … 'MASGA' 넘어 'MANIGA'로이러한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원자력 산업 확대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낸 것은 한국에 호재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5월 원자력 부흥과 공급 역량 확충, 규제 완화를 골자로 한 4건의 행정명령에 서명한 바 있다.그러나 미국의 원자력 산업은 수십 년간 신속하고 효율적인 원전 시공 능력을 입증하지 못했고, 핵연료인 농축우라늄의 상당 부분을 러시아 등 해외 수입에 의존하고 있어 공급망 교란에 취약한 구조적 한계를 안고 있다.미 조지아 주의 보글(Vogtle) 발전소 3, 4호기와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의 V.C. 서머(Summer) 발전소 2, 3호기 프로젝트는 트럼프 행정부가 추진하는 독자적인 원자력 진흥이 순탄치 않을 것임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심상민 아산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전날 브리프를 통해 "우리나라 원자력 산업은 미국이 필요로 하는 원전의 예산 범위 내 적기 건설의 노하우와 안정적 생태계를 갖추고 있어 우리나라와 미국이 원자력 진흥을 위해 협력하기로 할 경우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할 수 있다"며 한국의 원전 건설 능력을 미국의 원자력 공급망 강화 전략과 결합하는 '마니가'(MANIGA·미국 원자력 산업을 다시 위대하게) 구상을 제언했다.한국이 조선산업을 지렛대로 한미 조선 협력인 '마스가'(MASGA·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를 통해 포괄적 합의를 이끌어냈듯, 새로운 협상 프레임을 제시할 필요가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신규 원전 건설 역량 확보와 취약한 우라늄 공급망 강화는 한미 원자력협정 조기 개정이 미국에 주는 실익이 될 수 있다. 미국은 30년 가까이 신규 원전을 제때 완공하지 못한 반면, 한국은 APR1400 등 검증된 시공·운전 기술을 확보하고 있다. 미국이 러시아산 농축우라늄(로사톰 44%)과 중국CNNC(14%)에 크게 의존하고 있으므로 한국이 저농축우라늄·고순도저농축우라늄 공동생산체계에 참여할 경우 공급망 불안을 완화할 수 있다. -
- ▲ 이찬송 세종연구소 연구위원이 지난 8월 1일 발표한 세종정책브리프 '한미 원자력협정 협상 전략: 선택지 개발 및 최적 차선책' 발췌.ⓒ세종연구소
◆5% 농축·블랙박스 모델 등 과도기적 절충안도 고려해야한미 원자력협정의 조기 개정은 현실 정치의 제약에 부딪히더라도 단계적 절충안을 통해 추진될 여지가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이찬송 세종연구소 연구위원은 지난 8월 브리프에서 ▲한국 내 5% 미만 농축 허용 및 해외 위탁 재처리 부산 물질 반입 ▲한국 내 블랙박스 모델 도입 및 해외 위탁 재처리 부산 물질 반입 ▲미국 내 20% 미만 농축 및 해외 위탁 재처리 부산 물질 반입 ▲미국 내 공동 농축 및 해외 위탁 재처리 부산 물질 반입 ▲해외 재처리 재활용 기술 개발 참여 확대 등 다섯 가지 과도기적 방안을 제시했다.이 연구위원은 한국이 농축 권리를 전면적으로 주장하기보다는 우라늄-235 농축도에 5% 미만의 상한선을 제시하는 단계적 접근이 현실적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는 국내 원전이 주로 4~5% 수준의 저농축 우라늄을 사용하는 현실을 반영하면서 한미 협정의 기술적 틀을 유지하는 실질적 절충안으로 해석된다.그는 또 국내 농축시설을 설치하되 기술 접근을 원천 차단하는 이른바 '블랙박스 모델'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제언했다. 이 방식은 비확산 원칙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연료 생산물에 대한 소유권을 확보해 핵연료 시장에 간접적으로 참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산업적 참여 확대 방안으로 꼽힌다.이와 함께 한국의 농축 활동을 미국 내로 한정하되, 생산된 핵연료에 대한 소유권을 한국이 보유하는 방안도 있다. 한국 기업은 미국 내 농축시설에서 가스원심분리기나 레이저 농축 기술에 접근하면서 생산량을 자율적으로 조절할 수 있고,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의 안전 및 방호 기준을 준수해야 한다.미국은 이러한 구조를 통해 핵확산 위험을 최소화하는 동시에 현지 고용과 투자 활성화를 유도할 수 있으며, 향후 캐나다·프랑스·영국 등 핵확산 위험이 낮은 제3국으로 생산 허용 범위를 단계적으로 확대하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또한 재처리 부문에서는 단순 위탁 수준을 넘어 미국·유럽 등과의 차세대 재활용 기술 공동개발과 실증사업 참여를 확대하는 방향이 제시된다. 이러한 과도기적 절충안은 단기간의 기술 자율화보다 중장기적 신뢰 축적을 우선시하며, 트럼프 행정부가 중시하는 거래적 실익 구도와도 맞물린다.◆한미원자력협정 조기 개정, '기술동맹'으로 진화할 한미동맹의 분수령한미 원자력협정의 조기 개정이 현실화되면 이는 단순한 기술 조항의 수정에 그치지 않고 한미 관계를 '전통적 안보동맹'에서 '첨단 기술동맹'으로 격상시키는 상징적 이정표가 될 것으로 평가된다.결국 이번 APEC 계기 한미 정상회담은 이재명 정부의 실용외교가 시험대에 오르는 분수령이자, 양국이 실익과 신뢰의 균형점을 어떻게 조율하느냐에 따라 향후 기술안보 협력의 깊이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