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광복의 완성은 통일 … 상호 이해가 먼저다""1945년 8월 15일 광복절이 아니었다? 역사적 배경 설명한 것""종교 편향 없어 … 동일 원칙으로 지원했다""특별감사 정면 소명 … 공사 구분은 엄격했다""임기 책임 다하겠다 … 독립정신으로 국민통합에 기여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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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형석 독립기념관장 ⓒ정경진 기자
"진정한 광복의 완성은 통일이고 상호 이해가 먼저다"8.15 광복절 기념사로 편향 논란에 휩싸였던 김형석 독립기념관장이 자신을 둘러싼 비판과 의혹들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김 관장은 최근 뉴데일리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광복절 기념사는 상반된 역사 인식을 함께 이해하자는 메시지였다고 강조하며 독립기념관의 역할을 "모든 독립운동을 존중하는 공적 교육기관"으로 규정했다.◆"사회 갈등 해소하려면 서로 다른 역사관 이해하고 용납해야"김 관장은 기념사의 핵심을 갈등 완화와 통합으로 요약했다. 그는 "우리가 서로 다른 역사관이 있지만 진정한 광복의 완성은 통일되는 것"이라며 "우리 사회 내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서로 다른 역사 인식을 이해하고 용납해야 한다"고 말했다.이어 "극심하게 대립되고 있는 역사관을 놓고 갈등을 치유해 남북통일로 나아갈 수 있는 계기를 만들자"는 취지였다고 덧붙였다. 비판 여론에 대해서는 "양쪽 역사관을 설명한 문맥이 생략된 채 독립운동 비하로 비쳐 안타깝다"는 입장을 밝혔다.이는 실제 광복사 취임사를 보면 확인할 수 있다.취임사에서 김 관장은 "광복 80주년을 맞이한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최우선 과제가 '국민 통합'인 것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그런데 우리 사회의 갈등에는 역사문제가 한 몫을 차지하고 '광복'에 관한 역사인식의 다름이 자리하는 것이 사실"이라고 강조했다.또 "우리나라의 '광복'을 세계사적 관점에서 보면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연합국의 승리로 얻은 선물이다. 그러나 이 같은 해석은 '항일 독립전쟁 승리로 광복을 쟁취했다'는 민족사적 시각과는 다른 것이다. 우리 민족은 세계가 주목하는 3.1운동으로 '자주 독립국'임을 선언하고 이를 계기로 우리의 독립운동은 국내외에서 다양하게 전개됐다"고도 역설했다.기념사 어디에도 그가 광복을 연합군 승리의 선물로만 규정했다는 대목은 없다.◆"뉴라이트 낙인 부당…광복회가 정한 정의, 동의할 수 없어"이념 편향 지적에 대해 그는 자신이 그 범주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김 관장은 "뉴라이트의 정의는 2개다. 하나는 과거 운동권이었다가 이제는 보수우파로 돌아온 사람들을 뜻하며 역사학계에서는 일본의 식민통치가 우리나라 근대화에 도움이 됐다는 근대화론을 주장하는 사람을 뉴라이트라고 한다"고 설명했다.이어 "뉴라이트의 옳고 그름을 떠나 나는 뉴라이트를 한 적도 없고 관련된 글을 발표한 적도 없는, 둘 다 해당이 안 된다"고 강조했다.다만 그는 광복회의 뉴라이트 정의에는 동의할 수 없다고 못 박았다."광복회는 독립운동가들의 후손이지만 역사학자가 아니다"라며 "독립운동도 7가지 계열로 분류가 되며 총 1만8600여 명의 독립운동가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광복회는 자신들과 생각이 다른 독립운동 계열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며 광복회 주장에 이의를 제기했다.앞서 광복회는 지난해 8월 12일 '뉴라이트 감별법 9가지'에서 뉴라이트를 1948년을 '건국절'로 주장하는 사람이나 단체로 규정하고 이승만 대통령을 역사적으로 인정하는 사람들에게도 '뉴라이트' 프레임을 씌운 바 있다.김 관장은 "그 논리라면 대한민국의 절반이 뉴라이트에 해당하게 된다"며 광복회의 분류 기준에 동의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실제 같은 논리라면 김대중 전 대통령 역시 '뉴라이트'가 된다. 김대중 정부는 1948년 8월 15일을 '건국일'을 넘어 '건국기념일'로 부르기도 했다.김 관장은 "독립기념관장으로서 모든 독립운동가의 운동을 존중하고 국민들이 와서 독립정신을 배우는 국민이 주인인 독립기념관이 돼야 한다"며 "이념에 따라 독립운동 인정 여부가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나라를 위해 희생하신 1만8600여 독립운동가 모두를 존중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
- ▲ 독립기념관에서 진행했던 '한국독립과 불교' 기획전 ⓒ독립기념관 홈페이지
◆"1945년 8월 15일 광복절이 아니었다? 역사적 배경 설명한 것"김 관장은 8·15 용어 사용을 둘러싼 공방에 대해서도 문헌을 근거로 한 해석을 내놨다."제헌국회 회의록 등을 보면 1945년 8월 15일은 해방기념일이라고 불렀다. 일제로부터 속박에서 벗어났다는 의미다. 3년 후인 1948년 8월 15일은 독립기념일로 불렀다. 왜냐하면 1945년은 일제로부터 해방은 됐지만 주권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광복이란 말이 등장한 것은 그로부터 1년 후인 1949년 4대 국경일을 제정하면서다. 당시 4대 국경일로 3·1절과 헌법공포일(제헌절), 독립기념일, 개천절로 하는 것이 정부의 원안이었다""당시 법제사법위원장인 백관수 국회의원이 4대 국경일로 독립기념일(1948년 8월 15일)을 할 경우 1945년 8월 15일 해방기념일에 대해 우리가 잊어버리게 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해소하고자 독립과 해방을 함께 기리기 위해 '광복'이란 단어를 제안해서 광복절이 나오게 됐다"고 설명했다.그는 어원과 제정 과정을 설명했을 뿐인데 맥락이 생략된 채 "광복절 부정"으로만 비쳤다고 반박했다.김 관장은 "역사적인 설명을 한 것에 대해 설명한 부분만 자른 채 '1945년 8월 15일이 광복절이 아니다'라고 프레임을 씌워 매도하고 공격하니 상당히 답답했다"며 심경을 전했다.◆"종교 편향 없다…동일 원칙으로 지원했다"종교 편향 지적에 대해 그는 운영 원칙을 재확인했다. "내가 나의 종교인 기독교를 소중히 여기는 만큼 다른 종교인들에게도 그 종교가 소중하기에 동일하게 존중했고 공적 자리에서 종교 편향적 태도를 보인 적이 없다"고 말했다.불교 위령제, 천주교 미사, 천도교 제례 등 독립운동 추모·기념 프로그램을 동일 원칙으로 지원해 왔다고 설명했다. 단체 방문과 관련해서도 "종교와 무관하게 협조 요청을 받으면 프로그램 지원을 제공했다"고 밝혔다.김 관장은 "실제로 '한국독립과 불교'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불교 역사상 처음으로 독립운동가를 기리는 위령제를 성대하게 할 수 있었으며 천주교 역시 천주교 독립운동가들을 대상으로 한 미사를 드렸고, 천도교 역시 천도교 방식으로 제사를 지냈다"고 설명했다.◆"특별감사 정면 소명…공사 구분은 엄격했다"현재 국가보훈부는 김형석 독립기념관장에 대한 감사를 진행 중이다. 특별감사와 관련해 그는 원칙적 대응을 예고했다.그는 "법적·도덕적으로 책임질 만한 일을 하지 않았다"고 했고 "업무추진비는 공사 구분 원칙에 따라 사용했으며 사적 사용은 없었다"고 강조했다. -
- ▲ 이승만 전 대통령과 김구 선생 모습 ⓒ'끝나야할 전쟁' 책 표지 캡쳐
◆"임기 책임 다하겠다…독립정신으로 국민통합에 기여하겠다"관장직을 둘러싼 논란과 관련해 그는 "독립기념관 경영에 대한 3년 임기를 맡았으며 개인의 자리가 아니라는 점을 무겁게 인식하고 있다"며 "임기 동안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하루도 소홀하게 근무하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하며 책임 경영 의지를 밝혔다.김 관장은 인터뷰를 통합 메시지로 마무리했다."김구 선생도 존경하고 이승만 대통령도 존경하면 그게 죄가 되는지 묻고 싶다"며 "이승만 대통령은 대한민국 독립에 있어서 대한민국장(건국훈장 중 최상위 등급)을 받으신 분인데, 생각이 다 다르고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다고 해서 김구 선생을, 혹은 이승만 대통령을 폄하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이어 "나와 관점이 다르다고 '상종해선 안 된다'란 태도를 가지는 것은 단일민족으로서의 의미가 사라지는 것이며 서로 다른 입장을 존중해 줄 때 대한민국이 하나가 될 수 있고 대한민국의 갈등을 치유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김 관장은 처음 독립기념관장에 응모하게 된 이유를 설명하며 광복과 통일을 연결했다.그는 "독립기념관장 응모자격 및 응모요건에 써져 있던 글이 '독립정신을 널리 알려서 국민통합에 기여할 사람을 찾는다'라는 말을 보고 지원하게 됐다"며 "그 말은 내가 평생토록 나의 모토로 삼아온 말이었다"고 강조했다."학도병으로 6.25 전쟁에 참여하며 전쟁의 참상을 겪었던 아버지는 빨리 통일이 되어야지 이런 비극이 다시는 없을 거다란 말씀을 자주 하셨다"며 "나 역시 우리의 진정한 광복은 통일이라고 생각한다.그러려면 먼저 대한민국의 갈등이 없어져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역사'가 국민이 하나 되는 데 사용되지 못하고 오히려 국민을 갈라지게 하는 도구가 되고 있다. 그래서 항상 국민통합사관을 주장해왔다"며 자신이 평생 힘써온 국민통합사관을 설명했다.김 관장은 "이승만 대통령도 과오가 있지만 훌륭한 독립운동가였으며 김구 선생도 마찬가지"라며 "서로가 끼친 공적을 존중해야 대한민국이 하나가 될 수 있다. 이념적으로 서로 다른 상대방도 존중해 온전한 통일인 광복으로 나아가야 할 때"라고 피력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