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수원FC에 극적인 3-2 승리1-2로 뒤지던 상황 반전시킨 주민규의 골75일 만에 리그 11호골 신고한 주민규
  • ▲ 대전의 주민규가 리그 11호골을 넣으며 팀의 3-2 승리를 이끌었다.ⓒ뉴데일리
    ▲ 대전의 주민규가 리그 11호골을 넣으며 팀의 3-2 승리를 이끌었다.ⓒ뉴데일리
    공격수는 골로 말해야 한다. 다른 말은 필요없다. 골로 말하지 못하는 공격수는 가치가 없다. 자격도 없다. 다른 방법도 없다. 

    최근 거짓말처럼 득점포가 멈춘 스트라이커가 있다. K리그1 대전하나시티즌의 최전방 공격수 주민규다. K리그를 대표하는 공격수이자 한국을 대표하는 스트라이커다. 

    올 시즌을 앞두고 울산HD를 떠나 대전으로 이적했다. K리그 간판 공격수를 품은 대전은 K리그1에 파란을 일으켰다. 시즌 초반 대전은 압도적 위용을 드러내며 리그 1위를 질주했다. 그 중심에 주민규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주민규는 리그 10골을 터뜨리며 득점 1위에 이름을 올렸다. 대전의 첫 우승에 대한 기대감이 부풀었다.  

    그런데 이런 기세와 흐름이 거짓말처럼 멈췄다. 주민규도 대전도. 주민규는 지난 5월 27일 열린 포항 스틸러스와 16라운드에서 리그 10호골을 넣었다. 그리고 침묵했다. 간판 공격수가 침묵하자 대전도 힘이 빠졌다. 리그 1위는 전북 현대에게 내줬고, 리그 2위 자리가 위태로워지는 상황까지 왔다. 대전에는 환호가 아닌 침울이 지배했다.  

    골을 넣지 못하는 공격수. 책임을 홀로 진다. 골을 넣지 못하는 건 공격수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공격수 혼자만의 책임도 아니다. 골은 혼자 넣을 수 없는 것이다. 팀원들의 도움이 있어야 하고, 팀이 전체적으로 공격수가 골을 넣을 수 있게 움직여야만 한다. 

    사실 시즌 중반으로 가면서 대전의 팀 전체 밸런스와 조직력이 무너졌다. 부상자도 많았고, 이적생도 많았다. 팀은 혼란스러웠다. 당연히 상승세는 사라졌고, 성적은 떨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많은 비판이 간판 공격수 주민규로 향했다. 주민규가 골로 말하지 못하니 팀이 승리하지 못한다는 매우 단순한 논리. 

    억울하지만 억울해할 수도 없다. 이것이 공격수의 운명이다. 골을 넣으면 영웅. 골을 넣지 못하면 바로 역적으로 몰리는 포지션이다. 과도한 관심과 가장 엄격한 평가를 받는 포지션이기도 하다. 비난받지 않는 공격수는 매 경기 골을 넣는 공격수뿐이다. 세상에 그런 공격수는 없다. 

    주민규가 득점포를 멈춘 지 '75일'이 지난 11일.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는 대전과 수원FC의 25라운드가 열렸다. 수원FC는 4연승을 달리며 최고의 상승세를 가진 팀. 그 중심에 있는 '괴물 공격수' 싸박. 이 경기에 앞서 골을 잊은 주민규보다 싸박이 더욱 많은 관심을 받았다. 최근 흐름에서 싸박이 주민규를 압도한 건 분명했다.  

    주민규가 득점포를 재가동할 거라는 기대감은 크지 않았다. 그렇지만 황선홍 대전 감독의 생각은 달랐다. 황 감독은 한국 축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스트라이커 중 하나로 꼽히는 전설. 공격수의 마음은 공격수가 가장 잘 안다. 그는 경기가 열리기 전 이렇게 말했다. 

    "주민규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팀 전체적으로 합이나 이런 것들을 생각해야 한다. 다 맞아 들어가야 힘을 발휘할 수 있다. 공격수가 매번 골을 넣으면 좋겠지만 쉽지 않다. 심리적으로 스트레스를 받을 것이다. 내가 누구보다 그 마음을 잘 알고 있다. 이해하려고 한다. 주민규도 냉정하게 접근 중이다. 이제 물꼬를 틀 때가 된 것 같다."

    선수 시절 '황새'라 불린 전설적 공격수. 공격수의 촉은 무섭다. 그 촉은 정확하게 맞아떨어졌다. 

    전반 1분도 되지 않은 시점에 최건주의 골로 리드를 잡은 대전은 전반 추가시간 싸박과 루안에 연속골을 내주며 1-2 역전을 당했다. 분위기가 침체된 대전을 다시 살린 이가 바로 주민규였다. 그는 후반 30분 문전에서 오른발 슈팅으로 골망을 흔들었다. 75일 만에 터진 리그 11호골이다. 8경기 만에 드디어 주민규의 골이 터진 것이다. 

    흐름을 바꾼 대전은 후반 37분 김준범의 결승골까지 터졌다. 대전은 3-2 짜릿한 승리에 포효했다. 리그 3위로 밀린 대전은 리그 2위로 상승했다. '게임체인저'는 분명 주민규였다. 75일간의 침묵을 깬 선물이었다.
     
  • ▲ 쥬민규는 수원FC와 경기에서 1-2로 뒤지던 후반 30분 대전의 동점골을 터뜨렸다.ⓒ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 쥬민규는 수원FC와 경기에서 1-2로 뒤지던 후반 30분 대전의 동점골을 터뜨렸다.ⓒ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경기 후 만난 주민규. 그는 75일 동안 이어진 고통의 시간에 대해 털어놨다. 그의 첫 마디.

    "아..."

    잠시의 침묵이 흐른 후 주민규가 다시 말을 꺼냈다. 

    "이 감정을 어떻게 전달해야 할지 모르겠다. 굉장히 힘들었다. 내가 골을 넣으면 이긴 경기가 많았다. 내가 골을 넣지 못하니 팀 성적이 나오지 않았다. 부담으로 다가왔다. 황선홍 감독님은 나를 위해서 팀의 문제라고 이야기를 해준 것 같다. 아니다. 팀에 문제는 없었다. 전적으로 내 문제였다. 찬스가 분명 있었고, 내가 찬스를 살리지 못했다. 내 개인적인 문제였다. 동료들에게 미안했다. 혼자 끙끙댔다. 정신적으로도 힘들었다. 책임감을 가지고, 간절하게 결과를 내기 위해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 몸관리, 경기 시작 등 처음부터 다시 했고, 그동안 어떻게 골을 넣었는지 다시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 고통의 75일을 어떻게 버텨냈을까. 그리고 어떻게 극복했을까. 

    "이것 또한 내가 이겨내야 했다. 묵묵히 내 할 일을 했다. 차곡차곡 쌓여 지금 결과로 나온 것 같다. 감독님, 코칭스태프와 팀 동료들은 나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 묵묵히 기다려줬다. 강압적으로 하지도 않았다. 좋은 동료들이 있어서 긴 터널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오늘 골은 굉장히 짜릿했다. 한 골 넣기가 이렇게 힘들다. 기회가 왔을 때 못 넣으면 어쩌나 의심을 했다. 더 신중하게, 온 힘을 다해 집중을 해서 골을 넣었다. 자신감이 생겼다. 앞으로 더 많은 골을 넣을 수 있다."

    주민규가 골에 집착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그는 한국 '토종 스트라이커'의 자존심이다. 그의 득점에는 한국 축구의 '자긍심'이 들어있다. 한국 축구 안에서는 외국인에게 득점왕 자리를 내주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담겨 있다. 그래서 주민규는 또 골을 넣어야 한다. 

    "한국 선수로서 자존심을 지키고 싶다. 한국 축구 선수를 대표해 득점 순위권에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을 한다. 항상 외국 선수들보다 순위표 위에 있기 위해 노력한다. 외국인 선수가 찬스 2개를 넣지 못하면 적응의 문제라고 한다. 하지만 한국 선수가 2개를 넣지 못하면 한국 축구 선수라서 골을 넣지 못한다는 이미지가 생긴다. 이런 편견을 내가 깨고 싶다. 더 노력해서 외국인 선수보다 더 많은 골을 넣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