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서한' 도착 뒤 통상장관회의 "합의 근접했었으나, 유감"1차 보복 유예 연장, 2차 조치는 축소…협상력 활용하되 자극은 최소화
  • ▲ 미국-EU 관세협상. 사진=EU 무역담당 집행위원 SNS. ⓒ연합뉴스
    ▲ 미국-EU 관세협상. 사진=EU 무역담당 집행위원 SNS. ⓒ연합뉴스
    내달 1일부터 30%의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예고를 받은 유럽연합(EU)이 협상전략을 재정비하고 있다.

    AFP통신, 연합뉴스 등에 따르면 EU 27개국은 14일(현지시각)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외교이사회 통상부문회의에서 대미(對美)협상을 이끄는 마로시 셰프초비치 EU 무역·경제안보 집행위원에게 협상 진행상황을 공유받고 향후 대응전략을 논의했다.

    셰프초비치 집행위원은 "30% 혹은 그 이상의 관세 부과는 엄청난 충격을 가하는 것으로, 우리가 아는 무역은 지속할 수 없으며 현재 하루 44억유로(7조1000억원) 규모의 대서양 교역을 사실상 완전 중지시킬 수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하반기 EU 의장국인 덴마크의 라르스 뢰케 라스무센 외무장관은 회의가 끝난 뒤 기자회견에서 모든 회원국이 미국의 '30% 관세'를 절대로 수용할 수 없다는 데 공감했다고 밝혔다.

    회원국들은 또 27개국을 대표해 협상 중인 집행위원회를 전적으로 지지하고, 필요하다면 단호하고 비례적인 대응조치에 나서야 한다는 데 동의했다고 라스무센 장관은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율 통보 서한 발표 이틀 만에 열린 이 날 장관급 회의에서는 당혹과 실망이 역력했다.

    셰프초비치 집행위원은 기자들과 만나 "우리 쪽에서는 합의 타결에 매우 근접했다고 느끼고 있었다"면서 트럼프 대통령 서한에 유감을 표명했다.

    EU는 지난주까지만 하더라도 대미협상에 진전이 있다면서 큰 틀의 협상 방향을 규정하는 이른바 '원칙적 합의' 체결이 가능할 것으로 낙관했다.

    언론에도 자신들은 한국, 일본 등과 달리 '트럼프 서한' 수령 대상이 아니며 이르면 수일 내 합의 타결이 가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12일 EU에 협상 불발시 8월1일부터 상호관세 30%를 부과하겠다는 서한을 보냈다. 더욱이 30%는 애초 4월 상호관세가 처음 발표됐을 때 EU에 적용한 20%보다 높은 수준이다. EU로서는 뒤통수를 맞은 격이다.

    그럼에도 EU는 '무역 전면전'을 피하기 위해 8월1일까지 협상에 전념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미 어느 정도 진전이 있었고, 트럼프 대통령의 서한이 SNS에 게재되기 전 EU에 관련 내용을 통보한 점 등으로 미뤄 아직은 협상 여지가 있다고 판단하는 분위기다.
  • ▲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EU 외교이사회. 250714 사진=EU 제공. ⓒ연합뉴스
    ▲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EU 외교이사회. 250714 사진=EU 제공. ⓒ연합뉴스
    셰프초비치 집행위원은 이날 오후 늦게 미국 측과 다시 통화할 예정이라면서 "원칙적 합의에는 아주 근접했고, 현재 (미국의) 무역확장법 232조 적용 품목에 관한 상호 수용가능한 해결책을 찾기 위해 협상 중"이라고 설명했다.

    EU는 협상테이블에서 지렛대가 될 보복조치 준비에 속도를 내면서도 불필요한 자극은 삼가자는 분위기다.

    집행위는 이날 회원국들에 720억유로(약 116조원) 규모의 이른바 2차 보복조치 패키지를 제안했다.

    항공기, 자동차 부품 등 특정 미국산 상품에 고율관세 부과를 목표로 하는 2차 패키지는 애초 최대 1000억유로(약 161조원) 규모로 계획됐으나, 회원국 및 이해관계자 의견수렴과정에서 축소됐다.

    이 패키지가 실행 가능한 수준이 되려면 회원국 승인을 받은 이행법이 채택돼야 한다.

    14일 0시부로 자동 발효 예정이던 1차 보복조치 역시 8월 초까지 추가로 연기됐다. 대상 규모는 210억유로다.

    협상력 극대화를 위해 미국을 상대로 오히려 충격요법이 필요한 것 아니냐는 질문에 라스무센 장관은 "동의하지 않는다"며 "우린 미국과 무역전쟁을 원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그럼에도 강경 대응책을 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프랑스는 협상력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통상위협대응조치(ACI) 발동 등 더 강경한 대응수단을 준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ACI는 EU와 그 회원국에 대해 제3국이 통상 위협을 가한다고 판단되면 서비스, 외국인 직접 투자, 금융시장, 공공조달, 지식재산권의 무역 관련 측면 등에 제한을 가할 수 있는 조치다. 전례 없이 강력한 무역 방어수단이라는 점에서 '바주카포'로도 불린다.

    그러나 전날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 집행위원장은 "ACI는 비상상황을 위해 마련된 도구다. 우린 아직 그 상황에 이르진 않았다"라고 선을 그었다.

    한편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 27개국 멤버의 EU는 블록 전체로 해서 대미 상품수출액이 지난해 6060억달러로 멕시코, 중국, 캐나다 등을 제치고 1위다. 다만 수입액도 3700억달러에 달해 미국의 대 EU 상품교역 적자는 2360억달러(325조원)로 중국의 2950억 달러보다 적다.

    트럼프 대통령은 '해방의 날'로 칭한 4월2일 일방적인 상호관세율을 발표하면서 EU에 20%를 매겼다. 중국의 34% 및 한국의 25%보다 낮았다.

    트럼프 대통령의 일방적 상호관세는 4월9일 시행 몇시간 만에 중국을 제외하고 모두 10%의 기본 보편관세로 내려가고 보편율을 포함한 각국 상호관세는 7월9일까지 90일간 유예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