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체육회, 테니스협 등 산하 단체들과 내홍체육계 "수장이 권력 독식하며 '정치집단화'" 지적"고인물은 썩기 마련"…여야 정치권도 비판 가세문체부 "체육회 정상화 위한 대개혁 불가피"
  • ▲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이 2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2024.8.26 ⓒ서성진 기자
    ▲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이 2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2024.8.26 ⓒ서성진 기자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이 사실상 3연임 도전 의사를 내비친 가운데 산하 체육단체들을 중심으로 반발이 크게 확산하면서 체육회 내홍이 깊어지고 있다.

    이 회장 연임에 반대하는 체육단체들은 이 회장이 그동안 측근들을 내세워 독단적으로 체육회를 운영하며 전횡을 펼쳐왔다고 주장하며 체육회에 대한 대수술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특히 최근 대한체육회가 관리단체로 지정한 대한테니스협회와 배드민턴협회는 정상적인 절차를 거쳐 회원들의 총의를 모아 선출한 신임 회장을 체육회가 받아들이지 않는 등 협회 운영을 본인들의 입맛대로 좌지우지하려 한다며 불만을 쏟아내는 등 내부 갈등이 확산하는 모양새다.

    5일 체육계에 따르면 대한체육회는 지난 7월10일 테니스협회가 46억 원의 부채를 탕감할 능력이 없는 등 재정이 악화해 정상적인 사업 수행이 어렵다고 판단하고 테니스협회를 관리단체로 지정했다. 이에 테니스협회는 즉각 반발하며 서울동부지법에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김두환 테니스협회 정상화대책위원회 위원장은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대한체육회가 문제로 삼은 46억 원 부채 문제는 사실상 해결된 상태였다"며 "테니스협회가 지난 6월 새 수장으로 선출한 주원홍 전 회장이 채권자인 미디어윌로부터 '관리단체 미지정'을 조건으로 46억 원 채무 탕감을 약속 받았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이어 "가장 큰 난제였던 부채 문제가 해결됐는데도 대한체육회는 신임 회장을 인준해주지 않아 주 전 회장은 아직까지도 정식 취임하지 못하고 있다"며 "체육회가 산하 단체들의 운영을 본인들의 입맛대로 좌지우지하려는 것"이라고 토로했다.

    실제 대한체육회는 신임 주 회장을 인준하지 않은 채 최근 테니스협회 쪽에 체육회 내부 직원을 관리 직원으로 보내 운영 업무를 보게 했다. 

    이에 대해 대한체육회 측은 "테니스협회가 2016년부터 현재까지 채무 변제를 위해 법원에 채무조정신청 등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았다"며 "테니스협회가 제출한 채무탕감안과 관련해 '관리단체 미지정' 조건 확약서도 결국 채무관계 해결이 선행돼야 하므로 유효하다고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또 "관리단체 지정과 채무면제 사이에 선후가 바뀐 것으로 판단해 테니스협회에 채무 면제 기회를 추가 제공하기도 했으나 기간 내에 확약서를 다시 제출할 수 없다고 밝혀 관리단체 지정 사유가 해소되지 않은 것"이라고 부연했다.

    ◆"3연임 위한 포석?… 산하 기관을 친위 세력으로 이용"

    테니스협회를 비롯한 체육계 내부에서는 "부채가 많아 관리단체로 지정하는 것은 상황을 더 악화시키는 꼴"이라며 이 회장이 부실한 산하 단체를 관리단체로 지정한 뒤 측근들을 앉혀 자신의 연임에 유리한 구도를 만들기 위한 것이란 비판이 나오고 있다.

    김 위원장은 "이 회장이 자신의 연임을 위해 가맹단체를 관리단체로 지정한 것"이라며 "지난 8년 간의 회장 임기 동안 지정한 관리단체만 10개에 달한다"고 지적했다. 대한체육회 역사상 총 20차례의 관리단체 지정이 있었는데 절반이 이 회장 재임 기간 이뤄졌다는 것이다.

    그는 이어 "당초 테니스협회는 새로 회장을 선출해 채권자인 미디어윌과 약 19%에 달하는 이자율을 일반 금융권 수준인 2~3%로 낮춰 원리금 상환 조건을 완화키로 협의한 바 있다"며 "테니스협회가 보유 중인 기금을 담보로 대출 받아 빠른 시일 내에 채무 상환이 가능했다"고 설명했다.

    대한체육회 관리단체로 지정되면 회원단체로서의 모든 권리 및 권한이 즉시 정지된다. 모든 업무도 대한체육회가 구성한 관리위원회를 통해 진행된다. 테니스협회 측은 "산하 단체를 이 회장 연임을 위한 친위 세력으로 이용하기 위해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들이대면서 탄압하고 있는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한편 테니스협회와 함께 관리단체로 지정된 배드민턴협회는 대한체육회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 ▲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2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2024.8.26 ⓒ서성진 기자
    ▲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2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2024.8.26 ⓒ서성진 기자
    ◆정치권도 '체육회 구태' 비판…"체육회가 정치집단인가"

    이 회장의 연임을 둘러싼 체육계 갈등을 바라보는 정부의 시각도 곱지 않다. 이 회장이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장관 취임 이후 문체부를 길들이기 위한 '힘겨루기'를 벌인다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여야 정치권도 파리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안세영 선수의 작심 토로로 드러난 체육계의 민낯에 대해 "대한체육회가 19세기 관행에 머물러 있고 시대에 역행하고 있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상태다.

    체육계는 대한체육회가 비영리단체라는 점을 악용해 소수의 특정 세력 인사들이 연임을 이어가는 등 협회가 갈수록 '사유화'돼 간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한다.

    체육계 한 관계자는 "체육회를 마치 본인들의 전유물처럼 여겨 온 인사들이 체육계 전체를 망치고 있다"며 "대한민국 체육계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이번에 구태와 악습을 반드시 끊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체부 "체육회 정상화 위한 대개혁 불가피"

    앞서 이 회장은 지난 7월4일 대한체육회 임시대의원 총회를 열고 체육단체장 연임 제한 규정을 폐지한 체육회 정관 개정안의 승인을 주무 부처에 요청했다. 체육회장을 제외한 단체장의 연임은 제안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다.

    하지만 문체부는 이를 승인하지 않았고 유 장관도 "이 회장 체제가 8년 간 이어지면서 대한체육회가 마치 문체부 상위 기관처럼 군림해왔다"며 거부 의사를 밝혔다. 아울러 문체부는 내년도 예산안에서 그간 대한체육회에 지원했던 생활 체육 예산 416억 원을 지방단체 몫으로 책정하는 등 '체육회 패싱'이란 강수도 뒀다.

    기존 정관에 따르면 체육단체장의 3연임은 스포츠공정위원회의 승인을 받게 돼 있다. 이 회장이 '나 빼고 연임'을 내걸었지만 정관 개정과 상관 없이 이 회장의 3연임은 현재도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차기 체육회장 선거는 내년 1월 치러진다. 이 회장이 직접 3연임 도전 의사를 밝히진 않았지만 상급 기관인 문체부와의 힘겨루기를 두고 '사실상 출마'를 점치는 분석이 우세하다.

    체육계 관계자는 "스포츠 황금기를 거치며 체육회가 정치 집단으로 변질되는 등 괴물이 돼 버렸다"며 "이젠 정말 변화가 필요할 때고 자기 역할을 다했을 때 내려놓을 줄도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