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 한국역사상 최초로 남녀공학 의무교육 실시""독립 정부 수립에 유엔외교로 용기낸 것이 우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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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영기 명예교수 ⓒ서성진 기자
이승만 전 대통령이 남긴 업적을 살펴보고 이 전 대통령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이승만과 대한민국' 포럼이 5일 서울 정동 제일교회에서 열렸다. 사단법인 이승만건국대통령기념사업회가 행사를 개최했다.이날 행사에는 김남수 이승만건국대통령기념사업회장, 김황식 이승만대통령 기념재단 이사장, 박민식 전 국가보훈부 장관, 최재형 전 국회의원, 최불암 원로배우, 이장호 영화감독 등이 참석하였다.'교육 대통령 이승만'이라는 주제로 발표에 나선 김영기 조지워싱턴대학 박사는 "이 전 대통령이 오늘날 한국의 번영을 위해 이룬 큰 업적 중 하나는 교육 정책"이라며 "이 전 대통령은 국민 계몽을 목표로 오늘날 우리나라가 인재를 키울 수 있었던 교육 정책을 펼쳐나갔다"고 강조했다.김 박사는 "이 전 대통령은 한성 감옥에서 옥 중 학교를 운영하며 한글과 한문을 가르쳤고, 망명 생활을 하게 됐을 때 역시 교육자 역할을 계속 해나갔다"고 소개했다.이어 "그는 한국 역사상 최초로 남녀공학을 실시하는 혁명적인 변화를 불러왔다"며 "그는 교육을 하나의 인권 문제로 보았고, 모든 학교 교육은 국민의 권리요 의무라고 보았다"고 지적했다.또 "이 전 대통령은 교육 수준과 내용을 통일해 모든 학생들이 다음 단계의 교육을 평등하게 받을 수 있도록 했다"며 "이렇게 길러진 고급 인력은 1960년부터 보인 세계가 놀라게 하는 산업화와 경제발전에 직접 기여했다"고 교육대통령의 유산임을 역설했다. -
- ▲ 이택선 명지대학원 교수 ⓒ서성진 기자
David P. Fields 위스콘신대학교수는 "이 전 대통령의 삶을 이해하고 해석할 수 있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다"고 밝혔다.그가 제시한 패러다임은 '하나의 목표, 두 개의 특성'이다. "이 전 대통령은 평생 한국의 독립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가졌고, 그 과정에서 완고함과 급진주의가 나타난다"고 했다.그러면서 "이 전 대통령은 고집이 센 것으로 알려져 있다"며 "그 고집이 걸림돌이 되기도 했지만 그것이 그의 경력의 많은 부분에서는 성공의 열쇠가 됐다"고 덧붙였다.'미군정기 이승만의 방미외교와 남한단정론'이라는 주제로 발표에 나선 오영섭 독립기념관 이사는 "이 전 대통령은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에 대한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방미외교를 펼쳤다"고 했다.오 이사는 "오늘 발표는 미군정기 이 전 대통령 연구에서 가장 부진한 이 전 대통령의 방미활동을 새롭게 조명하는 작업의 일환"이라며 1946년 12월 2일부터 1947년 4월 5일까지 4개월 여간 이뤄진 이 전 대통령의 방미 유엔외교와 남한단독정부 수립론을 집중 조명하였다.오 이사는 "1946년 당시 남한 독립 정부를 구성하는 문제는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상식적 차원의 문제"라며 "그러나 용기 있게 그 문제를 명확하게 짚고 넘어간 사람이 우남"이라고 강조했다.'이승만 정부의 농지개혁'이라는 주제로 발표한 이택선 명지대학원 교수는 "이 전 대통령의 농지개혁은 세계사적 관점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토지개혁으로 평가받는다"며 말문을 열었다.이 교수는 농지개혁 성공 요인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그 과정에서 여러 갈등을 조정했던 것은 이 전 대통령인 만큼, 그의 공을 높이 사는 것"이라 했다. "이승만의 탁뤌한 결단력이 주도하고, 지주들 역시 공산혁명을 저지해야만 한다는 목적의식이 뚜렷했기에 자직농들의 이익이 침해되는 것을 감수했다"고 지주들의 공로도 거론했다.'대한민국 부흥의 기반을 세운 우남 이승만과 그의 스승 아펜젤러 선교사'를 소개한 원성웅 목사는 "청년 이승만이 배재학당에 입학한 후 얼마 안 되어서 아펜젤러 선교사는 그의 뛰어난 면모를 인정하고 영어 과목 조교를 시켰다"는 일화를 제시했다.그러면서 "한성감옥에 갇힌 이승만은 처음으로 생전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고, 그때부터 선교사님들에 대한 의심과 경계를 풀고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여 배우기로 결심한 것"이라고 했다.이 과정에서 스승 아펜젤러 선교사는 우남이 갇힌 감옥을 직접 찾아가 공부하도록 격려했고, 배재학당 교사였던 벙커는 영어로 된 기독교 잡지들을 넣어주는 등 우남을 도운 선교사들을 소개했다.이어 "우남은 언제나 하나님께 기도하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며 살았던 진실한 그리스도인이었다"며 "해방 직후 공산주의자들의 온갖 방해 공작들을 이겨내고 자유 대한민국을 건국했을 때 제헌국회 의장이 된 우남은 '이 나라의 건국은 사람의 힘으로 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었다. 그러므로 모두 기립해 이윤영 의원이 기도함으로 제헌국회를 개회하자'고 했다"고 덧붙였다. -
- ▲ 김남수 이승만건국대통령기념사업회장 ⓒ서성진 기자
이날 김남수 회장은 대회사에서 "대한민국과 이승만 박사는 서로 떼어놓고는 설명할 수 없다"며 "이승만 박사가 아니었다면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은 없었을 것"이라고 단언했다.이어 김황식 이승만기념재단 이사장은 축사에서 "이승만 재평가 열풍이 불고 있다"며 "이승만 대통령 기념관 건립으로 대한민국의 위상을 바로 세울 것이며 국민들의 적극적인 지원을 당부한다"고 강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