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종에서 이승만 동상 하나 세워야 하지 않나""불교정화유시로 불교계 분열? … 사실 아냐""이승만기념관 건립, 종교 문제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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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준모 연세대학교 이승만연구원장 ⓒ서성진 기자
양준모 연세대학교 이승만연구원장이 4일 "조계종에서 이승만 대통령 동상을 하나 세워야 하지 않느냐"는 소감을 밝혔다. 이승만 전 대통령이 조계종을 부활시켰다는 역사적 사실들을 제시하면서 나온 말이다.연세대학교 이승만연구원은 이날 우남기억 범국민운동본부와 함께 '대한민국의 발전과 건국전쟁' 세미나를 열었다. 행사에서는 대한민국 발전과 불교계의 역할을 토론했다.1부에서는 '대한민국의 발전과 불교계의 역할'이라는 주제로 양준모 이승만연구원장이 발표에 나섰다.양 원장은 "불교 정책과 관련된 이 전 대통령의 일부 오해를 밝히고 국민 화합의 장을 만들고자 했다"는 세미나의 개최 목적을 분명히 밝혔다.그는 이 전 대통령에 대해 "불교를 사랑한 분"이라고 정의했다."(이 전 대통령) 자서전에 보면 어머님으로부터 불교 교리를 습득하고 생일 때마다 공양미를 전달했다고 나와있다"며 "불교를 일반 대중 종교로 유교와 화합하면서 포교하도록 말씀하셨다. 기독교인이지만 다른 종교에 대한 존중의 마음을 한 번도 놓치지 않으셨던 것"이라고 양원장은 강조했다.이어 "조계종에 이 전 대통령 동상을 세워야 하지 않겠느냐고 묻고 싶다"고 했다.이 전 대통령이 조선조의 숭유억불 정책과 일제의 대처승(帶妻僧·살림을 차리고 아내와 자식을 거느린 승려) 장려 정책으로 억압받던 전통적 한국 불교를 살려내고 비구승(比丘僧·부처님의 계율을 엄수해 결혼하지 않는 독신승)을 지원해 조계종을 부활시킨 역사적 사실들을 제대로 알게되면 그런 느낌을 자아낸다고 강조한 것이다.또 이 전 대통령이 1954년 5월에 내린 '불교정화유시(佛敎淨化諭示)'로 불교계를 분열시켰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양원장은 방대한 자료를 요약 준비하여 일일이 역사적 기록들을 보여주면서 설명해나갔다.양 원장은 "1945년 9월, 여기서부터 (불교계 내에서) 싸움이 시작된다"며 "친일 관련 부분에 자체 내에서 간부 교체와 이런 운동들이 시작되게 된다"고 밝혔다.시기상 따져보았을 때 해방 전후로 불교계 내에서 여러 갈등이 이어져 온 것이지 이 전 대통령의 유시 때문에 불교계 갈등 촉발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양 원장은 이 전 대통령의 불교 탄압설도 사실이 아니라고 일축했다.일각에선 이 전 대통령의 농지 개혁으로 불교계가 갖고 있던 땅들이 대거 수용돼 절반 이상 토지를 잃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양 원장은 "이 전 대통령은 일률적 규정을 위해 공평하게 농지 개혁을 했지만 특별히 불교에 대해서는 (규정을) 완화했다"며 "일부 분배된 농지들을 다시 절에 귀속시키고 유시를 내렸다"고 반박했다.그러면서 "귀속 재산을 분할해 불교계는 가장 최고의 재벌이 된 것"이라며 "어떻게 한 정권이 특정 종교에 대해 이만큼의 혜택을 줄 수가 있었느냐"고 강조했다.당시 이 전 대통령은 '농지개혁'을 하면서도 사찰의 농지는 '불전의 공양과 비구승들의 공양'이라는 것을 감안해 "사찰의 농지는 사찰로 돌려주라"고 명령했다. 전국 대소 공찰(公刹)에 비구승이 살 수 있도록 조처를 내려 오늘날까지 불전공양과 수도승들의 공양에 이바지 한 장본인이 바로 이 전 대통령이다.양 원장은 이 전 대통령 기념관 설립 중요성에 대해서도 역설했다.그는 "지금 이승만대통령 기념관은 종교와는 아무 관계 없는 이야기 아닌가. 송현녹지광장은 종교와는 아무 관계 없는 이야기 나니냐"며 "(기념관 건립은) 종교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했다.최근 한국 불교 최대 종단인 대한불교조계종에서 "반(反)민주적 이승만기념관 건립을 반대한다"며 "한국 불교를 분열시키고 박해했던 이 전 대통령 기념관 건립을 다른 곳도 아닌 조계종 총무원과 태고종 총무원 청사 사이에 건립한다는 건 한국 불교에 대한 큰 모욕"이라고 반발한 데 자신의 의견을 내놓은 것이다.앞서 대한민국지키기불교도총연합(이하 '대불총', 상임대표 공동회장 박희도)은 지난달 발표한 성명에서 "이승만대통령기념관은 이승만 건국대통령에 대한 일시적이고 부분적인 부정적 평가를 무시할 수 있을 만큼 '국가정신 함양'에 좋은 교육 현장이 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대불총은 이 전 대통령이 '불교정화유시(佛敎淨化諭示)'를 내려 불교계의 분열과 갈등을 조장했다는 일각의 주장을 소개한 대불총은 "당시 비구승(比丘僧)과 대처승(帶妻僧)의 분열과 갈등은 승단 스스로 잉태하고 있던 문제"라며 "'정화유시'에 의해 불교계 갈등이 조장됐다기보다는 승려들의 완고함 때문에 생겨난 필연적 사태가 아니었는지 되새겨 봐야 한다"고 제언했다.대불총은 건국 초기 '군종 장교' '종교 방송' '성탄절 공휴일' 등 기독교 편향적 조치가 있었던 것을 두고, 불교계 일각에서 '이 전 대통령이 반불교적 행위로 불교를 탄압했다'고 비판하는 것 역시 지나친 해석이라고 주장했다. -
- ▲ 대한민국의 발전과 건국전쟁 세미나 ⓒ서성진 기자
이석복 대한민국지키기불교도총연합 공동대표는 한국 불교의 발전과 이승만이라는 주제로 기조 연설에 나섰다.이 공동대표는 이 전 대통령 기념관 건립에 대해 "불교계 조계종단 및 태고종단에서는 이 전 대통령이 불교계를 탄압했다는 반이승만 세력의 역사왜곡에 의거, 조계종과 태고종 본산 근처 송현동 부지에 건립하는 안을 반대하고 있다"고 했다.그렇지만 "이 전 대통령 기념관 사업은 국가적 사업으로써 전통 불교 복원과 불교 중흥의 기반을 제공한 진실한 업적을 고려해서라도 불교에서 인정해야 한다고 본다"고 했다.2부에서는 영화 '건국전쟁' 출연진과의 토크쇼가 진행됐다.이 자리에서 김덕영 건국전쟁 감독은 '건국전쟁5'까지 제작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건국전쟁은 이 전 대통령을 재조명한다큐멘터리 영화로, 100만 관객을 돌파하며 흥행에 성공했다.이날 행사에는 양준모 이승만연구원장을 비롯해 이각범 전 대한불교진흥원 이사장, 이주영 전 건국대 부총장, 박희도 대한민국지키기 불교도총연합 공동회장과 이석복 대표, 류석춘 전 연세대학교 교수, 송재윤 캐나다 맥매스터 대학교수,김덕영 '건국전쟁' 영화감독 등이 참석해 다양한 의견을 나누었다.이각범 전 이사장은 축사에서 "우리나라는 이승만 전 대통령이라는 큰 복을 가졌다. 그는 독립과 우리나라가 나아갈 발전 방향, 평화의 토대를 만드신 분"이라면서, 일본의 식민 탄압을 받았던 불교가 해방후 어떻게 발전할 수 있었는지에 대하여 설명했다.이주영 전 부총장은 자신이 겼었던 소련군의 만행을 소개하고 "새삼 가장 감사하게 생각하는 것이 남한에 소련군이 들어오지 않았다는 사실"이라며 "소련군 때문에 국민이 잔인해지지 않은 것만으로도 감사드린다"고 했다. - <양준모 연세대학교 이승만연구원장 발표 일부>-이승만대통령 기념관 건립 관련송현 녹지광장은 종교와는 아무 관계없는 얘기 아닙니까. 지금 이승만 대통령 기념관 짓겠다는 얘기인데, 거기에 종교시설을 짓는다는 이야기가 아니고. 그래서 왜 종교가 여기(이승만대통령 기념관 건립에) 나서냐. 종교의 문제가 아니다라는 말씀을 드립니다. 그게 제 메시지입니다. 이 아름다운 공원에 멋진 기념관을 세워서 대한민국을 풍요롭게 만들고, 근본 있는 나라, 자유를 존중할 줄 아는 나라 , 자유를 위해서 희생하신 분들에 대한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을 아는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이승만 대통령과 불교계 사이의 오해우리가 불교에 대해서 고마움을 잊지 말아야 된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저희 연세대학교는 기독교 학교이고 기독교를 정신을 숭상하는 학교입니다만 다른 종교에 대해서 존중하는 마음을 한 번도 잃은 적이 없습니다. 그러한 존중하는 마음으로 저희 함께 같이 화합의 길로 가자는 메시지를 던지고 싶습니다. 일정기 불교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1911년 사찰령을 이해하셔야 합니다. 엄혹한 현실 속에서 종교 활동을 한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우리가 일률적으로 대처승이니 비구승이니 이렇게 나눠서 불교를 생각하지 말자는 말을 전해 드리고 싶습니다.사찰령은 이미 다 아시는 얘기고요. 우리 체제가 사찰령에 의해서 통제되는 사회였다라고 하는 거고 지금 우리가 쓰는 흔히 쓰는 용어에도 그런 일본이 들어왔던 사찰령에 의해서 이렇게 나온 용어를 지금도 쓰시고 계십니다. 그런 건 조금 생각을 해 볼 점이고요. 서로 불교를 존중하는 차원에서 화합의 길을 모색하고자 하는 것이 이승만의 뜻이었다, 저는 그렇게 해석을 하고요.조계종은 제가 이승만의 동상을 하나 세워야 되지 않느냐 저는 정말 한번 묻고 싶어요. 일정기때 총본산 건설 운동이 아까 이제 사찰령에 의해서 시작이 됐고요. 37년에 조계사 대웅전을 건축합니다. 그다음에 38년에 태고사라는 사명으로 총독부의 인가를 이제 받게 됩니다. 41년 조선 불교 조계종 총본산 태고사가 출범을 합니다. 45년 9월, 해방이 되고 이제 여기서부터 싸움이 시작이 됩니다. 친일 관련된 부분에서 자체 내에서 이제 간부 교체와 이런 운동들이 시작이 되게 됩니다. 그러니까 이승만 유시 때문에 일어났다 이런 얘기는 전혀 근거가 없다는 겁니다. 이제 54년 11월에는 비구승 중심으로 해서 태고사를 조계사로 명칭을 변경하게 됩니다. 이때 이제 사단이 나게 됩니다. 유혈 사태가 벌어지고 이것도 이승만하고는 전혀 관계가 없는 종교 내부의 갈등이었고요.따라서 이 전체로 봤을 때 지금 나오는 얘기들이 시기가 막 혼재하면서 기억의 왜곡을 통해서 전혀 관계없는 사람을 갖다가 반대 운동을 하게 되는 그런 이상한 일이 벌어지게 됩니다. 이래서 역사는 바로 알리고 바로 생각해야 된다는 생각을 저는 이번 기회에 더 느끼게 됩니다. 정말 이승만은 불교 사랑을 하신 분이에요. 자서전에 보면요. 어머님으로부터 불교 교리를 습득하고 생일 때마다 불러서 공양미 전달 드렸고요. 또 불교를 일반 대중의 종교로서 유교와 화합하면서 포교를 하도록 이렇게 얘기를 하시기도 합니다. 다른 종교에 대한 존중의 마음을 한 번도 놓치지 않으셨다라는 말씀을 드립니다.-이승만 대통령 농지개혁에 대한 오해52년도에 가면 이제 농지개혁사에 아까 우리 이석복 장군께서 말씀하듯이 일률적인 규정을 통해서 공평하게 농지 개혁을 하셨습니다마는 전쟁 와중에 특별히 불교 농지에 대해서는 완화를 하셨어요. 법을 바꾸셔 가지고 일부 분배된 농지들을 다시 절에 귀속시키고 유시를 내렸는데 그 유시가 뭐냐 하면 왜 아직도 농민들이 저항하고 사찰에다가 토지를 돌려주지 않느냐가 유시내용입니다. 몇 번의 유시에 걸쳐서 싸움을 부추겼다라고 쓰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 몇 번의 유시를 보면 하나같이 불교를 위한 불교 사랑의 마음이었지 불교를 어떻게 분리시켜서 싸움질을 붙인다는 얘기는 전혀 안 나옵니다. 순리로 해결하라고 했습니다.(귀속재산 불하사례 예시) 더 이상 어떻게 한 정권이 특정 종교에 대해서 이 만큼의 혜택을 줄 수가 있었느냐, 기독교 학교인 저희 학교에서 뭘 받았는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아까 예시만 들었지만 재산을 뺏겼다 전혀 그런 일이 없다, 다만 토지의 경우에는 아까 말씀드렸던 농지개혁상에서 일괄적으로 했기 때문에 나중에는 또 법을 바꿔서 다시 돌려줬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후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