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 [나 = 자유롭고 독립적인 개인]이라고 설파한 최초의 한반도人그가 설계하고 만든 나라가 대한민국[자유롭고 독립적인 개인들이 모여 건설한 자유인의 공화국]이 바로 대한민국
  • 손세일의 역작 <이승만과 김구> 7편 3부 어떤 나라를 세우라 (1945 -1950) 표지 ⓒ 교보문고
    ▲ 손세일의 역작 <이승만과 김구> 7편 3부 어떤 나라를 세우라 (1945 -1950) 표지 ⓒ 교보문고
    ■ 일등공신은 김덕영

    <건국전쟁>의 인기가 심상치 않다.
    극영화처럼 막대한 제작비를 쏟아 부은 블록버스터 대작도 아닌, 몇몇 사람의 인터뷰를 중심으로 구성된 다큐멘터리가 화제의 중심에 선 것이 흥미를 끈다.
    상영관조차 잡지 못해 사장될 위기에 처했던 때와 비교하면, 기적과도 같은 일이 일어난 셈이다.

    아직도 국민 절대다수는,
    ★독재자 ★부정선거 원흉
    ★정권 연장 위해 개헌을 밥 먹듯 한 권력욕의 화신
    ★시민혁명으로 쫓겨난 정치인
    ★국민을 버리고 도망갔다 하여 [런승만] 
    이란 모욕스런 용어로 그를 칭하고 있다.

    이처럼 거론조차 부담스럽던 존재에 [건국의 주역]이라는 월계관을 씌워 한국인에게 등장시킨 것이 영화 <건국전쟁>의 공로다.

    <건국전쟁>은 행운아나 다름없다고 생각한다.
    윤석열 정부가 이승만 기념관 건립을 선포하여 일정 정도 붐이 조성됐고, 다수의 연구자들이 이승만을 다양한 각도에서 조명한 저술들이 발간되어 되어 충분한 연구가 축적되어 있었다.
    게다가 유튜브를 통해 이승만의 진면목이 다양하게 소개되었다.
    그리하여 이승만과 관련된 역사적 사실들이 주목받을 수 있는 토양이 어느 정도 마련되어 있었기에, <건국전쟁>은 빛을 볼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영화가 화제의 중심에 오르기까지 일등공신은 영화 제작의 주역인 김덕영 감독이다.
    김 감독은 직접적인 이해관계자이니 생력하고, 공로자 몇 분을 소개하고자 한다.

    ■ 손세일의 역작 <이승만과 김구>

    첫 번째 주인공은 손세일 선생이다.

    언론계 대선배이기도 한 손세일 선생은 그야말로 괴력을 발휘하여 <이승만과 김구>를 오랜 기간 <월간조선> 잡지에 연재했고, 그것을 묶어 7권짜리 대작을 우리 사회에 내놓았다.
    필자가 <월간조선> 기자로 재직 시절 손세일 선생의 원고 담당자였고, 편집장이 되었을 때도 연재는 계속됐다.

    워낙 거대한 생애를 살았던 분의 일대기를 위해 손세일 선생은 미국 주요 문서고에서 엄청난 문서들을 발굴하여 이승만의 생애를 집중 조명해냈다.
    작업 도중 너무 힘들다며 쉬고 싶어 하시는 손세일 선생을 계속 집필 전선으로 내모느라, 필자도 무진 고생을 했다.
    손세일 선생의 <이승만과 김구>가 없었다면, 영화 <건국전쟁>의 탄생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 손세일의 역작 <이승만과 김구> 7편 3부 어떤 나라를 세우라 (1945 -1950) 표지 ⓒ 교보문고
    ▲ 손세일의 역작 <이승만과 김구> 7편 3부 어떤 나라를 세우라 (1945 -1950) 표지 ⓒ 교보문고
    ■ 이승만 연구 토대를 구축한 류석춘

    다음으로 소개하고 싶은 고마운 존재는 류석춘 교수다.

    이 분이 2013년 무렵 <연세대 이승만연구원> 원장 보직을 맡은 적이 있다.
    그런데 연구원장을 맡고 보니 연구를 할 만한 여건이 전혀 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당시 출판계 풍토는,
    ★좌파 저술가 ★이론가 ★학자 ★언론 이 합심해서
    ★이승만 까기 ★이승만 죽이기 경쟁을 벌이고 있을 때다.
    이승만을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여 객관화 한 연구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는 상황이었다.

    류 교수는 이런 현실에 절망 낙담한 것이 아니라, 기발한 착상으로 접근했다.
    주위 사람들에게 강권하다시피 이승만 관련 저술을 떠맡긴 것이다.
    팩트(fact)에 근거한 [이승만 저술]을 쏟아내,
    ★이승만 까기 ★이승만 죽이기 를 주제로 한 책들을 폐기물로 만들어 버리자,
    그리하여 대중에게 올바른 이승만의 모습을 알리자는 취지였다.

    ■ 이승만 관련 저서 쏟아낸 김용삼

    필자도 류 교수로부터 압력을 받은 사람 중의 하나였다.
    덕분에 이승만 연구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류 교수로부터 등 떠밀리다시피 하여 펴낸 결과물이,
    <이승만과 기업가 시대>
    <이승만의 네이션 빌딩> 
    <대한민국 건국의 기획자들>이었다.

    ■ 이승만 연구 수준을 최고로 끌어올린 김학은

    김학은 교수(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도 류 교수의 마수(?)를 피해 갈 수 없었던 분 중 한 분이다.

    그 결과물이 <이승만과 마사리크>였다.
    척박했던 이승만 연구의 수준을 단숨에 최고 퀄리티로 끌어올린 김학은 교수의 대작은 그렇게 탄생하게 되었다.
    이어 <이승만의 정치·경제사상>과 같은 획기적인 저작이 탄생하게 되었다.

    류석춘 교수의 압력(?)이 빛을 발한 덕에, 이승만을 비난·모욕하는 책보다 이승만의 진면목을 조명하는 저작이 수적으로 우위를 점하면서 분위기가 역전되기 시작했다.
    그것이 건국 대통령 이승만의 존재를 우리 사회 곳곳에 알리는 신호탄이 되었다.

    ■ 다큐 제작의 마중물 선두주자는 <건국이념보급회>

    그 다음으로 고마운 존재는 <건국이념보급회>다.

    <뉴데일리> 인보길 회장이 대표를 맡고 있는 이 단체는,
    그동안 수백 회의 <이승만 포럼> 행사를 통해 이승만 연구를 후원하고 이승만 대통령의 건국정신을 우리 사회에 전파하는 선봉장 역할을 담당해왔다.

    특히 이 단체 김효선 사무총장이 중심이 되어 제적된,
    <이승만의 하와이 30년> 
    <이승만의 독립외교 33년> 다큐 영화는
    이승만 다큐의 원조라는 평을 들을 정도로 풍부한 팩트들을 담고 있다. 
    <건국전쟁>의 비옥한 토양 역할을 한 것이다.

    ■ 이승만 전도사 양성하는 <이승만 학당>의 이영훈

    2016년 여름 필자는 이영훈 교수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이 해에 이 교수는 서울대를 정년퇴임하셨는데, 탈북 청년들에게 이승만 대통령을 가르치는 프로그램을 시작하는데 함께 하자는 연락이었다.
    누구 부탁이라고 거절하겠는가.

    이렇게 시작된 이승만 교육이 오늘의 <이승만 학당><이승만 TV> 탄생의 계기였다.

    “올바른 역사 교육만이 이 난국을 헤쳐 나갈 수 있는 지름길이다.
    수료생 1,000명을 배출하면 우리 사회가 바뀌지 않겠나.”

    <이승만 학당>을 처음 시작할 때, 이영훈 교수의 훈시가 아직도 기억난다.
    이 교수는 <이승만과 대한민국>이라는 12주짜리 강좌를 개설하여 교육을 시작했다.
    변변한 강의실도 없어 종로 3가 식당 건물 창고, <동국대> 강의실, <자유경제원> 강의실, <배재학당 기념관>을 전전하며 강의를 이어갔다.
    <이승만 학당>이 본격화 될 무렵,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위한 촛불 광란이 시작됐다.
    수강생들은 매주 토요일 오전 강의를 들은 후 태극기를 들고 광화문으로 나갔다.
    그 어려운 와중에, 이 교수는 괴력을 발휘하여 <반일종족주의>라는 저작을 진두지휘하여 ‘기울어진 운동장’이었던 한국 근현대사를 단숨에 뒤집어버렸다.

    <이승만 학당>은 현재까지 700여 명의 수료생을 배출했다.
    부산과 하와이에서도 동문이 생겨났고, 현재는 대구에서 20기 강좌를 진행 중이다.

    <이승만 학당>의 당훈(堂訓) 첫 번째가 “우리는 자유롭고 독립적인 개인이다”이며, 두 번째가 “대한민국은 자유인의 공화국이다”로 되어 있다.
    <이승만 학당> 당훈을 가슴 깊이 간직한 수료생들은 단순히 강의 수강자라는 수동적 존재로 머물지 않았다.
    [자유롭고 독립적인 개인들이 모여 건설한 자유인의 공화국]을 수호하는 전사요, 이승만의 진면목을 사회 곳곳에 알리는 전도사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 <이승만 TV>의 영상 강의를 곳곳에 퍼 나르고
    ☆ 대한민국의 근현대사를 바로잡는 세미나에 참석하여 열심히 공부를 계속하고 있고
    ☆ 중요한 책이 발간되면 홍보요원을 자임하며
    ☆ 나라 지키는 일에 자금이 필요하면 지갑을 열어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이승만 대통령의 진면목을 알리는 영화 <건국전쟁>이 상영관도 잡지 못해 사장될 위기에 처해 있다는 소식에 분연히 들고 일어난 것은 <이승만 학당> 수료생들이었다.
    이들 중 몇몇 분들이 자발적으로 모금을 하여 상영관을 잡아 시사회를 열면서 <건국전쟁>의 작은 기적이 시작된 것이다.

    ■ 한반도 최초의 [자유롭고 독립적인 개인]을 탄생시킨 산파는 이승만  

    한 나라의 경제력은 그 나라 국민 개개인의 재산의 총합이다.
    한 나라의 지력(知力)은 그 나라 국민 개개인의 지식의 총합이다.
    영화 <건국전쟁>이 흥행을 타게 된 것도 그 영화를 살리기 위해 돈과 시간과 노력을 아끼지 않는 고마운 존재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나라를 지키고 바로 세우는 일도 마찬가지다.
    적어도 <이승만 학당>을 수료하신 분들은 기울어진 운동장을 누군가 일으켜 세워주겠지, 누가 나대신 불의와 싸워 주겠지 하는 생각을 버린 지 오래다.
    모든 일은 [나], 즉 [자유롭고 독립적인 개인]으로부터 시작된다.
    나부터 먼저 바르게 생각하고, 역사적 사실을 정확히 알기 위해 독서하고, 때가 되면 행동하고, 지갑을 열 때, 이 나라의 근본적인 변화가 시작된다고 믿는다.

    영화 <건국전쟁>[자유롭고 독립적인 개인]을 만든 원조가 이승만 대통령임을 우리 사회에 알리는 내용증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