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 역저 <독립정신>에서 [백성의 압제]라고 지적된 못된 가치관김민서의 1963년 출간 <망명노인 이승만 박사를 변호함>을 주목하자아무도 나서지 않을 때 용감하게 [이승만]을 말했다
  • 이주영 교수가 엮어서 비봉출판사에서 재출간한 김인서 목사의 저서 ⓒ뉴데일리
    ▲ 이주영 교수가 엮어서 비봉출판사에서 재출간한 김인서 목사의 저서 ⓒ뉴데일리
    매도·저주 쓰레기 에 파묻힌 이승만

    이승만 대통령의 일대기를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이 극장가에서 큰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전국 영화관에 상영 중인 영화의 관람객 순위가 연일 2위를 기록하는 가운데 누적 관람객 총수가 50만을 넘었다.
    100만을 돌파할 것이라는 전망도 들리는데, 틀리지 않을 것이다.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하신 지 64년이다.
    작고하신 지는 59년이다.
    그 오랜 세월에 이승만 대통령은 온갖 매도와 저주의 쓰레기 더미에 묻혔다.

    이승만 대통령의 명예 회복을 위한 노력이 없지는 않았다.
    1995년 조선일보에서 안병훈(당시 편집인) 인보길(당시 편집국장) 두 분이 주축이 되어 <이승만과 나라세우기>라는 특별전시회를 마련하였다.
    곧이어 <이승만건국대통령기념사업회>가 조직되었다.
    그 2년 뒤에는 삼성가의 출연으로 연세대학교에 이승만을 연구하는 <현대한국학연구소> (현 이승만연구원)가 설립되었다.
    이후 유영익(연세대·한동대 교수), 이주영(건국대 교수), 인보길(현 뉴데일리 회장) 제씨를 비롯하여 여러 연구자가 이승만에 관한 훌륭한 책을 출간하였다.
    매달 포럼을 열어온,
    <이승만대통령건국이념보급회>
    의 노력도 눈물겨웠다. 
    그렇지만 국민 대중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쓰레기 치우기는 지금부터

    그러던 차에, 그간의 수고가 헛되지 않았는지,
    김덕영 감독의 <건국전쟁>이 큰 물결을 이루어 그 더러운 쓰레기 더미를 치우기 시작하였다.
    영화를 본 많은 사람이 놀라는 마음에, 미안한 마음에, 감사하는 마음에 눈물을 흘리고 박수를 쳤다.
    그 물결이 일시의 파동으로 그치고 말 것인가.

    그렇지는 않아 보인다.
    어쨌든 큰 계기와 발판이 마련되었다.
    7년 전에 <이승만학당>을 설립하여 이승만 대통령의 명예 회복에 미력이나마 보태고자 했던 필자로서는 요사이 <건국전쟁>의 랠리에 연일 들뜬 마음이다.
    많은 국민에게 이 같은 기쁨과 희망을 안겨준 김덕영 감독에게 최고 수준의 찬사를 드린다.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김 감독은 이승만에 관한 책을 섭렵했는데,
    그 가운데 1963년 김인서 목사가 출간한,
    <망명노인 이승만 박사를 변호함>
    을 인상 깊게 읽었다고 하였다.
    필자 역시 그 책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김인서 목사는, 
    이승만을 공개적으로 변호한 최초의 인물이다.
    4·19 이후 수많은 정치가와 지식인이
    이승만[민주 반역의 원흉] 이니 [희대의 협잡군] 이니 욕설을 퍼부었다.
    김인서 목사는 차마 그 욕설을 듣고 있을 수 없었다.
    그래서 이승만을 변호하는 글을 쓰기 시작했으며,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1963년 자비로 출간하였다.

    ■ 이승만의 큰 공로 4가지

    그는 이승만에게는 네 가지 큰 공로가 있다고 하였다

    첫째독립운동의 공로요,
    둘째건국의 절대적 공로요,
    셋째6·25동란을 수습한 공로요,
    넷째는 외적을 막을 만리장성을 쌓은 공로인데, 곧 한미상호방위조약의 체결이다.

    ■ 이승만 과오를 따져보니

    나아가 그는 세상이 욕을 하는 이승만의 과오도 따지고 보면 무방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1952년의 부산정치파동은 당시의 야당에게도 큰 책임이 있다고 하였다.
    터키의 건국 대통령 케말 파샤는 종신이었다.
    체코슬로바키아의 건국 대통령 토마스 마사리크는 4선이었다.
    당시는 전쟁 중이었다.
    그럼에도 야당은 어찌 우리 건국 대통령의 재선에 그토록 야박하게 결사 항쟁하였던가.

    1954년의 이른바 사사오입개헌에 대해서도 김인서는 다음과 같은 논리로 무방하였다고 주장한다.
    사사오입 그 자체는 잘못이다.
    그렇지만 그로 인해 1956년 제3대 대통령 선거에서 공산주의자 조봉암 의 당선을 막을 수 있지 않았느냐.
    따지고 보면 나라의 행운이었다는 것이다.

    ■ 잔인한 [조선심](朝鮮心)

    김인서는 이승만에게 잘못이 있다면, 집권 12년의 말기에 너무 고령인 가운데 간신배에 둘러싸여 부정선거를 인지하지 못한 정도라고 주장하였다.
    그 잘못에 대해선 이승만 스스로가 책임을 지고 하야하지 않았는가.

    그렇게 나라를 세우고, 공산세력을 막은 하늘과 같은 공로를 세운 분에게 상대적으로 사소하다면 사소할 과오에 대한 책임을 물어
    [민주 반역의 원흉]
    이니 [희대의 협잡군] 이니 하는, 김일성스탈린 에게도 퍼부은 적이 없는, 극악한 욕설을 퍼붓고 있는가.

    4·19 당시 흥분한 군중들이 이승만의 동상을 쓰러뜨리고 밧줄로 목을 매어 수레에 달고 종로를 행진하였다.
    그 모습을 지켜본 김인서 목사는, 
    “아! 이 잔인한 [조선심](朝鮮心) 은 도대체 어디서 유래하는가”라고 탄식하였다.

    당쟁 이란 몹쓸 문화 유전자

    김인서 목사는 그 역사적 유래를
    조선시대의 당쟁 에서 찾았다.
    도덕 명분을 다투어 상대 정파를 말살하려 했던 그 당쟁 이 1950년대 한국 정치의 본질이라고 해석하였다.

    이승만 대통령과 대립한 민주당은 평안도 출신의 흥사단 세력(도산계)과 전라도 출신의 세력(인촌계)가 연합한 세력이었다.
    민주당의 이승만 비판은 언제나 도덕 명분의 수준을 넘지 않았다.
    그래서 당쟁 과 다를 바 없었다.

    그런 가운데 민주당 내에서도 두 세력은 신파구파라는 당파를 이루어 서로 물고 뜯었다.
    4·19로 민주당은 집권에 성공하지만, 신파구파는 어렵사리 차지한 권좌를 다투다가 두 정당으로 갈라서고 말았다.

    이 같은 당시의 정치 양태를 구시대 당쟁 의 연장이라고 본 김인서의 해석은,
    지금까지 이 나라의 무정견(無定見)한 역사학자와 정치학자에 의해 무시되어 왔지만, 학술적으로 계승되기에 충분한 가치의 문제제기이다.

    ■ 뭉그러진 조선의 풍속 · 민족정신 · 백성 마음상태

    김인서 목사에 의하면, 유대 민족은 일년에 한 번씩 두 마리 양을 골라 한 마리는 제단에 바치고, 다른 한 마리는 산 채로 그들의 죄를 씌어 광야로 내쫓았다.
    우리 민족에게도 정월 대보름에 온갖 죄액을 실은 연을 높이 날리고 실을 끊어 보내는 액매기 풍속이 있었다.

    김인서 목사는 이승만을 가리켜 [우리 민족의 속죄양] 또는 [우리 민족의 액매기]라고 하였다.

    ★ 이 민족의 풍속이 아름답지 않음은,
    ★  이 민족의 정신이 비겁하고 사나움은,
    ★ 그로 인해 정치만이 아니라 백성의 마음마저 타락했음은
    ,
    일찍이 이승만이 한성감옥에서 지은 <독립정신>에서도 지적한 바이다.

    이승만
    은 그것을 가리켜,
    [백성의 압제]
    라고 하였다.
    [압제] 를 다스리지 않고서는,
    민주정치를 할 수 없다고 하였다.

    김인서 목사는 이승만의 그러한 철학을 이해한 당대의 몇 안 되는 사상가의 한 사람이었다.

    ■ 하나도 바뀌지 않는 [조선심]

    1965년 하와이에서 돌아가신 이승만 대통령의 유해가 서울 국립묘지로 옮겨와 안장되었다.
    그 영결식에서 정일권 국무총리가 대독한 추도사에서 박정희 대통령은 고인에게 “조국의 헌정사상에서 최후의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어린 양이 되심으로써 다시 이 땅에 4·19나 5·16 같은 역사적 고민이 나타나지 않도록 보살펴 주시기를” 당부하였다.

    추도사는 당대의 문인 이은상이 지었다.
    이은상은 필경 김인서의 책을 읽었을 터이다.
    과연 이승만은 이 민족의 죄업을 십자가로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른 [속죄양]이었던가.

    역사는 이 민족의 비겁하면서도 잔인한 [조선심]이 이후에도 조금도 씻겨지지 않았음을 이야기해 주고 있다.
    10·26, 5·18과 같은 정변이 이어졌으며, 그것을 수습한 전두환 대통령은 후임 대통령들의 배신으로 작고하신 지 2년이 넘도록 편히 쉴 한 조각의 땅조차 찾지 못하고 있다.

    <건국전쟁>을 관람한 필자의 감상은 다음과 같다.

    “아! 이 잔인한 [조선심]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