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역 방심위원, 심의대상인 MBC 변론 맡아 논란
  • 심의대상인 MBC의 소송을 대리한 사실로 이해충돌방지법 위반 논란에 휩싸인 정민영 방송통신심의위원이 사회적으로 큰 논란이 됐던 'MBC 기자의 경찰 사칭 사건'과 'PD수업 민사소송'에서도 MBC 측을 변호했던 것으로 드러나, '알고보니 방심위원이 아니라, MBC의 전속변호사였다'는 비아냥마저 나오고 있다.

    지난 5일 자 세계일보 기사([단독] 정민영 방심위원 PD수첩도 변호…권익위는 현장조사 돌입)에 따르면 정 위원은 경찰 공무원을 사칭해 기소된 MBC 소속 A기자 사건 항소심에서 A기자의 변호를 맡았다.

    A기자는 B피디와 함께 2021년 7월 7일 경기도 파주시에 위치한 C교수의 과거 주소지를 찾아갔다. C교수는 김건희 여사의 박사논문 지도교수로 알려진 인물. 당시 B피디는 주소지 앞에 세워진 차량 주인과 통화하면서 자신을 파주경찰서 경찰이라고 속였다. 그러면서 차량 주인에게 C교수의 거주지 등을 물었다.

    이 사실을 확인한 당시 윤석열 전 검찰총장 대선캠프는 A기자 등 MBC 취재진 2명과 책임자 1명을 공무원자격사칭·강요죄 혐의로 고발했고, 검찰은 이들을 재판에 회부했다. 사건을 심리한 의정부지법 고양지원(형사1단독)은 지난해 9월 두 사람에 대해 각각 벌금 150만원을 선고했다.

    보도에 따르면 정 위원은 성락교회 김기동 목사 측이 김 목사의 사생활을 폭로한 MBC 'PD수첩'을 상대로 제기한 민사소송에서도 MBC의 소송대리인으로 이름을 올렸다. 정 위원은 2020년 1월 29일 MBC의 대리인으로 법원에 위임장을 제출했는데, 이 사건에 대한 항소장은 지난달 11일 전달된 것으로 전해졌다.

    PD수첩은 2019년 8월 27일 '어느 목사님의 이중생활' 편을 통해 김 목사의 스캔들 의혹을 방영했다. 이에 김 목사 측은 같은 해 12월 4일 PD수첩을 상대로 정정보도 청구 및 억대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당시 김 목사 측은 "김기동 목사 측에 교회개혁협의회 두 명이 제기한 성추문 고소는 모두 무혐의 불기소 처분으로 확정됐다"며 "이 사실을 PD수첩에 전달했음에도 PD수첩이 교개협의 입장만을 토대로 방송하려는 움직임이 포착돼 성락교회는 방영금지가처분을 신청했었다"고 밝혔다.

    이어 "PD수첩은 법원에 '성추문을 기정사실화해 보도하지 않겠다'는 등의 입장을 밝혀 해당 소송에서 승소했으나, 실제 방송은 상당히 다른 분위기였다"며 "PD수첩은 대전 모 호텔에 김기동 목사가 운전기사 외 20대의 젊은 여성과 함께 출입한 점에 대해 분열파 교인들의 증언만을 담아 보도했다"고 김 목사 측은 주장했다.

    이후 사건을 심리한 서울서부지법은 2020년 8월 1심 선고에서 원고의 청구를 모두 기각했다.

    세계일보와 자유언론국민연합 등에 따르면 정 위원은 윤석열 대통령의 비속어 발언 관련 소송에서 MBC를 변호했고,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가 신라젠에 투자했다는 MBC의 허위보도와 관련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도 MBC의 소송대리인으로 참여했다. 정 위원은 방심위원 임기 중인 2021년 8월 17일을 비롯해 여러 차례 이 사건의 변론기일에 MBC의 변호인으로 참석했다.

    또 정 위원은 손석희 전 JTBC 대표이사의 동승자 의혹을 보도한 MBC의 대법원 소송에서도 MBC의 변호인으로 이름을 올렸던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달 31일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국회에 제출한 정 위원의 방송심의 의결내용에 따르면 정 위원은 임기가 시작된 2021년 7월 23일 이후부터 MBC 프로그램이 심의대상에 오른 각종 회의에 총 57차례 참석해 '문제없음' 의견을 24차례 냈다. '권고'는 16차례, '의견제시'는 14차례였고, 방송사에 대해 법정제재로 평가받는 '주의'는 2차례에 그쳤다. '회피'는 단 1차례에 불과했다.

    지난해 12월 22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이 객관성 위반으로 심의를 받을 때 방심위 소위에 참석한 정 위원은 "특별한 문제가 없다"는 소견을 밝혔고, 같은 해 11월 29일 MBC '뉴스데스크'가 관련 심의를 받을 땐 "어떻게 보더라도 문제 삼을 만한 내용은 없다는 생각이다. 문제없음 의견"이라고 밝혔다.

    정 위원은 지난달 28일 세계일보와의 통화에서 "MBC의 일부 사건을 대리한다는 사실은 방심위 소위와 전체회의에서 수차례 밝혔고, 사무처나 다른 위원들도 아무런 의견을 내지 않았다"며 법률대리인으로 관여하지 않은 프로그램의 심의에 참여한 것은 규정상 문제가 없다는 취지로 항변했다.

    현재 법무법인 덕수 소속 변호사인 정 위원은 민주언론시민연합 정책위원,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상근변호사 등을 역임한 뒤 2021년 7월 더불어민주당 추천을 받고 제5기 방심위원으로 위촉됐다. 임기는 내년 7월 22일까지다.

    "정민영 위원 논란으로 방심위 신뢰도 큰 타격"

    이처럼 정 위원이 임기 중 '직무관련자'인 방송사의 송사에 참여한 것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임직원 이해충돌 방지 규칙'과 '공직자의 이해충돌 방지법'을 위반한 것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현행법에 따르면 공직자는 직무를 수행할 때 사적 이해관계가 관련돼 공정한 직무수행이 저해되거나 저해될 우려가 있는 상황을 회피해야 하며 이를 위반할 시 징계를 받도록 돼 있다.

    방심위 여권 위원들도 정 위원이 MBC 등의 변론을 맡은 것은 이해충돌의 소지가 다분하고 방심위의 독립성과 중립성을 훼손한 행위라는 지적이다. 이에 류희림 상임위원 등 여권 위원 4명은 정 위원을 방심위 이해충돌 방지 규칙 위반으로 국민권익위원회에 고발하기로 했으나, 시민단체 공정언론국민연대(공언련)가 같은 취지로 정 위원을 권익위에 고발함에 따라 고발 계획은 철회했다.

    이와 관련, 방심위는 지난 5일 정 위원의 이해충돌 규정 위반 건 등을 논의하기 위해 전체회의를 소집했으나, 야권 위원들이 참석하지 않아 회의가 무산됐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이날 회의를 소집한 황성욱 위원장 직무대행은 "정민영 위원에게 오늘까지 입장을 달라고 했는데 아직 안 왔다"며 "국민권익위원회에서도 (정 위원 건과 관련해) 현장 조사가 진행 중이라 사실관계가 권익위 조사로도 나올 수 있기는 하다"고 말했다.

    김우석 위원은 "야권 위원들이 의도적으로 집단행동을 하면서 논의를 지연시키고 있다"며 "정 위원 건의 경우 팩트를 확인하는 게 가장 중요한데 언론 보도만 봐도 거의 MBC 전속변호사, 고문변호사 같은 상황이다. 그러면서도 수많은 의결에 참여해 거의 면죄부를 줬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된다"고 지적했다.

    류희림 위원은 "야권 위원들이 전체회의에 참석하지 않는 건 이 문제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려는 의도가 있지 않나 의심을 가질 수밖에 없게 만든다"면서 "방심위 심의 자체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고 있는 중요한 사건"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해충돌방지법 시행 전에도 방심위 임직원 행동강령을 보면 직무와 관련해 법률대리를 할 경우 행동강령 책임관에게 신고해야 하는데 정 위원이 그런 절차를 거쳤는지 의문"이라며 "또 언론노조 KBS본부 자문도 맡았던데 그것도 이해충돌방지법 위반이 아니냐"고 덧붙였다.

    이들 여권 위원들은 지난 6일 배포한 입장문에서도 동일한 견해를 피력했다.

    이들은 "정 위원에게 여러 차례 사실확인을 요청했는데 현재까지 답이 없었고, 현재는 국민권익위원회가 이를 조사 중"이라며 "정 위원은 논란 이후 방심위의 각종 회의에 불참 중이다. 정 위원의 이해충돌 논란으로 인해 (방심위에 대한) 국민적 신뢰가 상당한 타격을 입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더 이상 기관의 신뢰와 정 위원 개인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정 위원이 조속히 사퇴해 주기를 요구한다"고 촉구했다.

    이와 관련, 야권 위원인 김유진 위원은 입장문을 통해 "위원장 호선 등 중요 안건은 모든 위원이 참석할 수 있도록 사전 조율을 통해 회의 일정을 잡는 것이 상식적"이라며 "파행적인 위원회 운영에 따를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오는 11일 예정된 전체회의에 참석해 위원회 운영을 비롯한 현안에 대한 입장을 자세히 밝히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