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수처법·국가교육위법·아특법… 주요 법안마다 민주당 거수기 역할여야 위원 구성 3:3인데… 여권 위성정당 만들어 놓고 야당 몫이라고 주장열린민주당 김의겸도 언론법 안건조정위… 교섭단체만 참여하게 기준 바꿔야
  • ▲ 국회 본회의장 자료사진. ⓒ이종현 기자
    ▲ 국회 본회의장 자료사진. ⓒ이종현 기자
    다수당의 횡포를 방지하고 여야 간 이견을 좁히기 위한 '비상수단'인 국회 안건조정위원회가 21대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거수기로 전락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민주당 출신 무소속 의원이나 민주당과 뜻을 같이하는 범여권 군소 야당 소속 안건조정위원들이 여당 손을 들어 주는 경우가 잦아지면서다.

    국회 선진화 방안으로 나온 안건조정위

    안건조정위가 논의된 것은 18대 국회 때인 2011년이었다. 여야는 의원 간 물리적 충돌이 빈번했던 과거 '동물국회'를 방지하기 위한 방안 중 하나로 이 논의를 본격화했다. 18대 때 여당이자 다수당은 전체 299석 중 153석을 차지한 한나라당(현 국민의힘)이었다. 민주통합당(현 민주당)은 81석의 제1야당이었다.

    황우여 한나라당(2012년부터 새누리당) 의원 등으로 구성된 국회바로세우기모임과 김진표 민주통합당 의원 등이 포함된 민주적국회운영모임은 관련 논의를 진행해 나온 결과가 안건조정위가 포함된 국회선진화법(국회법 개정안)이었다.

    안건조정위는 구체적으로 ▲재적위원 3분의 1 이상 요구로 안건조정위 구성 ▲쟁점 안건은 여야 대체토론 뒤 안건조정위에 회부 ▲안건조정위 활동 기한은 구성된 날로부터 90일로 규정 ▲안건조정위는 총 6명으로 의원 수가 가장 많은 1교섭단체와 1교섭단체에 속하지 않는 조정위원 수를 동수(각각 3명씩)로 구성 ▲재적 조정위원 3분의 2 이상(4명)의 찬성으로 의결 ▲활동 기한 내 의결된 안건은 심사가 끝난 것으로 간주한다는 등의 내용이었다. 쟁점 안건 관련 논의를 여야가 심도 있게 이어가자는 취지였다.

    여야는 이와 함께 국회의장의 직권상정 제한,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을 통한 의사진행 방해 행위) 마련 등을 국회선진화법에 포함시켰다. 

    안건신속처리제도(패스트트랙)를 도입, 국회가 신속처리 대상 안건을 최대 330일(상임위 180일·법사위 90일·본회의 60일)간 심사 뒤 처리하도록 하는 내용도 같은 법에 담겼다. 

    예산안 심사 기한도 그해 11월30일까지로 규정, 여야 간 몸싸움을 방지하도록 했다.

    국회선진화법은 19대 국회 개원(2012년 5월30일) 직전인 2012년 5월2일 국회를 통과, 같은 해 5월25일 공포됐다.

    21대 국회에서는 무력화… 공수처법에도 '속수무책'

    안건조정위는 그러나 21대 국회에서 사실상 민주당 거수기로 전락했다. 여당이 맡은 각 상임위원장이 안건조정위 야당 몫(3명)에 군소 야당이나 민주당 출신 무소속 의원을 지명했고, 이들 의원이 민주당 안에 손을 들어 주면서다.

    현재 국회 시스템을 통해 공개된 13개의 안건조정위 회의록을 분석한 결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 개정안, 국가교육위원회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조성에 관한 특별법(아특법) 등 주요 법안 논의 과정에서 이런 사례가 나타났다.

    민주당은 지난해 말 공수처 출범을 서두르기 위해 '꼼수 법안'에 속도를 냈었다. 국회의장이 양당의 공수처장 후보 추천 기한을 10일 이내로 정하고, 이 기한이 지나면 국회의장이 직권으로 처장추천위원을 위촉한다는 내용의 '공수처법 개정안'을 강행하려는 것이었다.

    민주당은 2020년 12월7일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이 개정안을 밀어붙이려고 했다. 국민의힘은 이에 반발, 비상수단인 안건조정위 소집을 요청했다. 그러나 하루 뒤인 12월8일, 민주당은 안건조정위를 비공개로 진행한 끝에 6명 중 찬성 4명으로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민주당의 김용민·박범계·백혜련 의원, 그리고 최강욱 열린민주당 의원이 찬성표를 던졌다.

    여야는 안건조정위에서 최장 90일간 관련 사안을 논의할 수 있다. 그러나 공수처법 관련 안건조정위는 약 1시간10분 만에 찬성으로 결론 낸 것이다. 

    백 의원은 이날 의원들의 동의 절차도 구하지 않고 안건조정위를 비공개로 의결하는 촌극을 벌이기도 했다. 백 의원은 절차상 하자를 문제 삼는 야당 의원들의 지적이 이어지자 의원들의 동의 여부를 다시 구한 뒤 회의를 비공개로 진행했다.

    "'여당으로 돌아간다'는 무소속 의원이 야당 몫"

    이스타항공 비리 의혹으로 구속기소된 민주당 출신 이상직 무소속 의원이 안건조정위 야당 몫에 배정되는 일도 벌어졌다. 이상직 의원이 민주당에 다시 들어가기를 희망한다고 알려지던 무렵이었다.

    이달곤 국민의힘 의원 등은 2020년 12월17일 문화체육관광위 안건조정위에서 이 문제를 지적했다. 당시 광주 소재 아시아문화원 직원들의 공무원 전환 등의 내용이 담긴 아특법 논의 자리에서였다. 여야는 공무원 전환 등을 두고 첨예한 견해차를 보였다.

    이달곤 의원은 당시 안건조정소위에서 "(이상직 의원이) 지금 형식적인 소속은 무소속이지만 여당이지 않나. 본인도 그렇게 말했고 '이 문제(이스타 의혹)만 해결되면 내가 여당으로 돌아간다'고 (했다)"고 꼬집었다. 이 의원은 회의 말미에도 "위원회 구조, 구성 문제를 먼저 해결해 달라"고 요구했다.

    민주당의 이상헌 조정위원장은 표결을 강행했고, 이 법안 역시 4명이 찬성해 처리됐다. 국민의힘 소속 이달곤·이용 의원을 제외한 이병훈·이상헌·전용기 민주당 의원과 이상직 무소속 의원이 모두 찬성한 것이다.

    국가교육위원회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 논의를 위한 국회 교육위원회에서도 비슷한 논란은 이어졌다. 국가교육위는 국가의 중·장기 교육정책을 결정하는 대통령 직속기구다. 국가교육위 위원 21명 중 14명을 대통령·국회 등이 지명 및 추천하는 구조다. 국가교육위가 정권에 휘둘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 이유였다.

    안건조정위 일방 개최도… 언론중재법도 대안 없어 

    민주당은 지난 2월 이 법안을 안건조정위에 올렸다. 정경희 국민의힘 의원은 3월4일 열린 교육위 안건조정위에서 "(이 법안을) 3월 국회에서 심의하기로 예정됐는데, 여당이 대통령선거 공약이었다는 이유 하나로 안건조정위에 일방적으로 회부했다"고 반발했다. 

    정 의원은 "또 오늘 우리 당 의원총회가 10시30분부터 예정됐는데 (안건조정위를) 같은 시각에 잡아 일방적으로 개최했다"며 회의를 거부했다.

    국가교육위법은 박찬대·이탄희·정청래 민주당 의원과 강민정 열린민주당 의원의 찬성으로 지난 5월13일 안건조정위에서 통과됐다.
  • ▲ 2012년 5월2일 서울 여의도 국회 귀빈식당에서 만난 당시 황우여 새누리당 원내대표와 민주통합당 김진표 원내대표 회담. 왼쪽부터 새누리당 김세연 원내수석부대표, 황우여 원내대표, 민주통합당 김진표 원내대표, 노영민 원내수석부대표. ⓒ뉴시스
    ▲ 2012년 5월2일 서울 여의도 국회 귀빈식당에서 만난 당시 황우여 새누리당 원내대표와 민주통합당 김진표 원내대표 회담. 왼쪽부터 새누리당 김세연 원내수석부대표, 황우여 원내대표, 민주통합당 김진표 원내대표, 노영민 원내수석부대표. ⓒ뉴시스
    민주당이 강행한 공수처법 개정안 등 이들 쟁점 법안은 안건위 통과 후 각 상임위 전체회의와 법사위를 거쳐 국회 본회의에서 모두 처리됐다.

    8월 국회의 첨예한 이슈 중 하나인 언론중재법 개정안(언론중재 및 피해구제에 관한 법 일부개정안)도 안건조정위 회부 가능성이 거론된다. 

    민주당이 지난 7월27일 문체위 소위에서 통과시킨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현재 국민의힘뿐만 아니라 국민의당·정의당도 반대한다. 이런 이유를 들어 민주당이 절차적 '명분' 확보를 위해 안건조정위에 회부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법원은 언론을 대상으로 한 징벌적 손해배상액을 손해액의 최대 5배까지 정할 수 있고(징벌적 손배) ▲언론사 손해배상액 상·하한선은 보도 경위, 언론사 전년도 매출액의 1만분의 1에서 1000분의 1을 곱한 금액 등을 고려해 정하며 ▲피해자가 기사열람차단청구권을 언론사에 행사할 수 있다는 내용 등으로 구성됐다. 

    징벌적 손배 판단 기준인 고의·중과실 추정(30조의 3) 등과 관련해서도 헌법상 과잉규제 금지원칙 위반 등 위헌 논란이 제기됐다.

    문제는 문체위 안건조정위도 힘을 발휘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다. 박정·김승원·유정주 민주당 의원 외에 문체위 문화예술법안심사소위에는 김의겸 열린민주당 의원도 포함됐다. 야당 몫에 김 의원이 들어갈 수 있다는 관측이 꾸준히 나왔다. 김 의원은 그동안 문체위 소위 등에서 여당과 뜻을 같이해왔다.

    "안건조정위 야당 몫 구성 변경해야"

    정치권 일각에서는 안건조정위 구성 기준을 변경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의석 수가 가장 많은 1교섭단체와 그 외 교섭단체 간 3 대 3 동수 비율을 맞추자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21대 국회에서는 교섭단체 기준(20석)을 충족하는 민주당과 국민의힘 2곳만 안건조정위에 참여하게 된다. 

    양승함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는 "한국정치의 문제는 편법을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사용한다는 것"이라며 "위성정당을 만들어 놓고 이를 야당이라고 하는데, 법적으로야 야당이지만 문제는 이 정당이 (여당의) 위성화가 된 것 아닌가"라고 꼬집었다.

    양 교수는 "의석 수에 비례해 안건조정위 야당 몫을 정해야 한다"면서 "국민이 원하는 것은 국회가 충분히 토론하고 여야 양자가 문제점을 적절하게 합의할 수준으로 조정하는 모습"이라고 조언했다.

    8월 국회 본회의는 오는 25일로 예정됐다. 민주당이 이날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처리하려는 계획인 만큼, 8월 임시회(17일 시작) 중 문체위·법사위 등에서 논의를 끝낼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