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나라 과두 지배세력된 386운동권, '민주주의 좌파' 가면 벗고 드디어 본색 드러내대한민국 건국한 자유인들, '자유'란 존재이유 위협받고 있어 필사의 힘으로 저항할 것
  • ▲ 대선출마를 선언한 이재명 경기지사. ⓒ강민석 기자
    ▲ 대선출마를 선언한 이재명 경기지사. ⓒ강민석 기자
    대통령 되겠다는 사람이 아직도 대한민국 건국의 정당성을 완벽하게 인정하지 못하겠다면 이게 과연 희극일까 비극일까? 둘 다일 것이다. 내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할 뜻을 밝힌 이재명 경기지사는 자신의 고향 경북 안동에 가서 “대한민국이 다른 나라 정부 수립과 달라, 친일세력이 미 점령군과 합작해 지배체제를 그대로 유지하지 않았는가?”라고 물었다. 

    1940년대 후반 북조선 노동당과 남조선 노동당, 그리고 당시의 일부 중간파가 이런 소리를 한 것이야, 건국과정의 한 정쟁적 현상으로 치부해버릴 수도 있다. 그러나 70여 년이 지난 이 시점에서도, 그리고 다른 사람도 아닌 오늘의 발전된 대한민국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 입에서 그런 소리가 나왔다는 것은 결코 예사로이 지나칠 수 없다.  

    대한민국은 왜 세웠던가? 대한민국은 스탈린과 그 하수인 김일성이 북한지역에 인민위원회란 권력을 먼저 수립하고 그 폭력으로 공산 전체주의 일당독재 혁명을 강제했기 때문에, 그런 혁명 독재하에서는 죽어도 살 수 없게 된 자유인들이 “남한지역에서나마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수립하자”고 해서 세운 나라다.  

    그렇다면 이 ’나라 세우기‘는 정당한 것이었나? 자유인들에게는 천 번 만 번 정당한 일이었다. 전체주의·일당독재·수용소 체제를 싫어하고 개인의 자유·인간의 기본권·시장경제·법치주의를 귀하게 여기는 사람들 처지로서는 그때 만약 대한민국을 세우지 않았더라면, 그래서 그때 한반도 전체가 적화되었더라면, 그 후의 우리와 우리 2세 3세들의 삶이 과연 어떤 모습으로 처참하게 망가졌을까를 상상할 때 실로 아슬아슬함과 두려움으로 온몸을 떨지 않을 수 없다.  

    1948년에 대한민국을 세우지 않았다면, 6.25 남침 때 트루먼 미국 대통령이 미군을 파병하지 않았다면, 이승만 대통령이 한·미 방위동맹을 밀어붙이지 않았다면, 유엔군이 인천상륙작전으로 실지를 회복하지 못했다면, 그래서 대한민국이 오늘의 번영을 이룩하지 못했다면 한국인들의 신세는 지금쯤 정말 어떻게 돼 있을까? 생각만 해도 자다가 식은땀을 흘리며 소스라치게 깰 일이다. 이래서 대한민국 세우기와 나라 만들기 70여 년은 자유인들에게는 너무나 소중하고 정당한 과정이었다. 

    그러나 북한 지배자, 남한 주사파, 얼치기 운동꾼, 좌우합작이란 이름의 친북적 중간파, 그리고 이들에게 장악된 조직원들에겐 대한민국 건국, 6.25 남침 격퇴, 한·미 동맹, 산업화 성공, 그리고 이 성취를 있게 한 이승만, 트루먼, 맥아더, 박정희, 백선엽, 이병철, 정주영, 이건희, 대한민국 국군은 너무나도 밉고 싫고 원망스럽고 죽이고 싶은 존재일 것이다. 이들에게 대한민국 세우기와 나라 만들기는 생각할수록 이가 갈리고 치가 떨리고 두 번 다시 쳐다보고 싶지도 않은 증오의 표적, 따라서 정당성이라곤 단 0.1%도 없는 저주일 것이다. 
  • ▲ 류근일 전 조선일보 주필.
    ▲ 류근일 전 조선일보 주필.
    이 땅의 새로운 과두(寡頭) 지배층으로 군림하고 있는 소위 운동권은 청소년 시절부터 제3세계 혁명론, 좌익적 민족해방론, 레닌주의, 스탈린주의, 마오쩌둥 사상, 해전사(해방방전후사의 인식), 북한 대남방송 따위에 세뇌돼, 북한이 알거지 되고 대한민국이 세계 10대 교역국으로 변모했음에도 그런 현실을 절대로 바로 보지 않으려는 일종의 중증 정신질환자로 굳어버렸다. 그들은 원서를 읽을 실력도 없고 학문을 제대로 익히는 훈련도 받지 않은, 사이비 종교의 좀비 같은 존재들이었다. 그런데 그 좀비들이 오늘의 21세기 대한민국을 덮친 화적(火賊) 떼가 된 데에 오늘의 한국 민주주의의 비극과 위기가 있다. 

    이들은 한국을 1950년대 수준의 세계 최빈국이자 미·일 제국주의의 신식민지인양 설정한 낡은 미신에 요지부동으로 사로잡혀 있다. 이들은 세계 시장경제 열강들을 자유민주주의 진영으로 보기보다는, 제국주의 진영으로 바라본다. 이들은 그러나 시진핑 중공(中共)을 ’민족민주‘ 진영으로 보면서 자신들을 중국몽(中國夢)의 한 작은 봉우리로 자임한다. 이들은 자유민주주의의 인권과 법치를 부르주아 민주주의로 간주하고 그 대신 민중(인민)민주주의를 지향한다. 이들은 사회주의적 국가 통제로 자유시장·자유기업·시민사회를 대치하려 한다. 그리고 이들은 무엇보다도 북한 백두혈통의 인권 말살에 대해 아무런 분노도 혐오도 표출하지 않는다. 이들은 따라서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 헌법 질서 속 ‘민주적 좌파(democratic left)’가 아니라, 초헌법적·전체주의적·일당독재 좌파, 즉 극좌(extreme left)로 발 벗었다. 

    이들 극좌 운동꾼 화적떼는 초창기에는 자신들의 민낯을 감추기 위해 민주화니 진보니 하는 가면을 뒤집어쓰고 다녔다. 그러나 이제 저들은 자신들의 때가 왔다고 자신하는 나머지 그들의 본색을 공공연히 드러내기 시작했다. 북한의 하위조직인 통혁당 간부 신영복을 존경한다, 김원봉이 국군의 뿌리다, 제주 4.3 폭동은 ‘먼저 꿈꾼 자’들을 국가폭력으로 탄압한 것이었다, 여순 반란도 봉기였다, 1948년의 대한민국은 건국이 아니거나 잘못된 짓이었다, 어쩌고. 

    이제 저들은 “색깔 공세 하지 말라” 하던 시절을 벗어나 “그래 우리 색깔은 인민민주주의다, 어쩔래?‘ 하는 단계로 접어들었다. 그리고 대한민국 건국세력, 산업화 세력, 민주화 본류 자유주의 세력을 오히려 ’적폐‘라며 숙청하려 한다. 내년 대통령 선거는 바로 반(反)대한민국 세력이 대한민국 세력을 완전히 제거·타도·숙청·매장하느냐, 아니면 정권교체 세력이 그 시도를 좌절시키느냐의 건곤일척이 될 것이다. 

    이러한 정세분석 하에서 많은 걱정하는 사람들은 운동권 측의 유력한 대통령 후보감인 이재명 경기도 지사가 부디 지금까지의 무식한 골수 NL 운동권과는 그래도 뭐가 달라도 좀 다르기를 소망해왔다. 자유 지식인들은 자유민주 헌정 질서를 준수하는 의미의 ’민주적 좌파‘에 대해서는 그 존재와 입장을 존중한다. 이런 시각에서는 이재명 지사가 그런 ’민주적 좌파‘ ’합리적 진보‘일 것임을 믿고 싶어 했다. 문재인 정권의 무지막지한 ’전대협 전체주의‘로 불과 4년 만에 삶의 생태계를 완전히 파괴당한 국민으로선 그건 너무나도 당연하고 절실한 여망이었다. 

    이재명 지사는 이른바 포퓰리즘 전도사로 비판받아왔다. 나라 곳간을 의적(義賊)처럼 털어 백성에게 나눠주자는 식이라면 그런 투박한 포퓰리즘에 대해선 신랄한 비판이 있어 마땅하다. 그러나 우리는 이재명 지사가 바르고 좋은 진보 리더로 서는 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된다면, 백 보를 양보해 그런 비판을 짐짓 유보할 수도 있다. 그만큼 이왕에 보수·진보가 양립할 바에야 우리도 악성 극좌보다는 양질의 진보가 들어서기를 바라기 때문이며, 그 양질의 진보 역(役)을 이재명 지사가 해주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다른 건 몰라도 이재명 지사가 만약 대한민국 건국의 정당성을 조금이라도 폄훼할 경우라면 그런 ’이재명 식‘에 대해서만은 한 치의 양보 없는 정면의 반론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만은, 그가 특히 이 나라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인물인 이상에는 온 애국 국민과 더불어 온몸을 흔들며 ”아니올시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 건국의 정당성에 대한 신념은 지금 당장 죽는다고 해도 결코 양보할 수도 포기할 수도 없는 자유인들의 마지막 존재 이유다. 사람은 마지막 존재 이유가 위협당할 때는 필사의 힘으로 저항하게 돼 있다. 이재명 안동 발언은 바로 자유 애국 국민의 그것을 건드렸다.  

    이재명 지사는 소명해야 한다. 그가 한 말은 일종의 불완전한 서술이었나, 아니면 솔직한 본심이었나? 후자라면 그는 굳이 해선 안 될 일을 한 셈이다. 그는 왜 싸움을 그런 방향으로 끌고 가는가? 탈레반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그렇다면 그는 그 대신 대한민국과 애국 국민에 대해 내전(內戰)을 선포한 것이나 다름없다. 이는 남보다도 그 자신을 위해 득 될 게 없다. 이재명 지사가 ”그런 뜻은 아니었다“고 말하길 진심으로 바란다. 

    초창기 대한민국 사회와 관청에 참으로 문제 될 만한 급(級)의 친일 인물이 도구적 존재로서 섞여들었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과도기적 현상이었을 뿐,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요소들은 모두 역사의 무대에서 도태되었다. 이념적 적대세력을 일괄 ’친일파‘로 몰아붙이는 상투적 선전 선동은 낡은 방식이다. 그런 식으로 하자면 문재인 정권하에서 별 위선적인 괴물들이 줄줄이 고관대작으로 등용된 사례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이재명 지사가 앞으로 3류 NL 운동권과는 다른 한결 진화한 진보 담론을 펴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