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청 "조선왕실 제단"… "남단 터, 알고 보니 일본군 군마 위령비" 해석 나와유홍준 당시 문화재청장 "사적 분과위원들이 조사… 나는 조사 결과 인정" 발 빼"건축가 승효상, 한북정맥' 위치 잘못 짚어" 주장에… 승효상 "집필 중" 취재 거부
  • 용산공원추진기획단이 '용산공원 10경' 중 하나로 제시하고 있는 '남단터'. 일본군 군마위령비라는 해석이 새로 제기됐다. ⓒ용산공원 홈페이지 캡처
    ▲ 용산공원추진기획단이 '용산공원 10경' 중 하나로 제시하고 있는 '남단터'. 일본군 군마위령비라는 해석이 새로 제기됐다. ⓒ용산공원 홈페이지 캡처
    주한미군 기지 이전에 따라 추진 중인 용산공원이 역사 고증 부실 논란에 휩싸였다. 용산공원조성추진기획단이 '용산공원 10경' 중 하나로 소개한 '남단터(풍운뇌우단)가 사실은 일본군 군마 위령비였다는 폭로가 나왔기 때문이다.

    국토교통부 산하 용산공원추진기획단 홈페이지는 '남단터'를 "조선시대 한양도성 내 종묘(宗廟)·사직단(社稷壇)과 더불어 한양도성 밖 성저십리에서 가장 오래된 국가 제례시설로, 하늘에 '기우제(祈雨祭)'를 지냈던 곳"이라고 설명했다. 

    2005년 문화재청이 이곳을 '조선왕실이 하늘에 제사지내던 남단 흔적'이라고 발표한 데 따른 것이다. 당시 문화재청장은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였다.

    조선일보 "일본군 군마 위령비가 조선왕실 제단으로 둔갑"

    하지만 지난 2일 조선일보는 이 터가 조선왕실과 무관할 뿐 아니라 제단도 아니며, 이곳에 주둔했던 일본군 포병부대가 포를 운반할 때 동원했다 죽은 군용 말들을 위해 만든 추모비라고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일본군 軍馬 위령비가 '조선왕실 제단'이라는 용산공원"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해당 석물이 조선시대 목조건물 주춧돌과 전혀 형식이 다른 일본군 작품이라는 점,  '愛馬之碑(애마지비)'라고 적힌 비석이 찍힌 1940년대 사진 등을 근거로 이곳이 1941년 일본군 제26야포연대가 만든 군마(軍馬) 위령탑이라는 해석을 내놨다.

    유홍준 당시 문화재청장 "사적 분과위원들이 조사, 나는 인정만 한 것"

    유홍준 교수는 지난해 1월7일 CBS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와 인터뷰에서 "(남단 위치가) 거기예요. 그것이 있는가, 없는가 봤더니 있어요. 남단이 있는 것이 아니라, 주춧돌과 위에 흐트러져 있는 것이 이 자리다, 하는 사이트는 정확하게 짚을 수 있고. 그 남단의 의미는 굉장히 크고…."라며 이곳이 남단임을 재확인했다고 기사는 전했다.

    하지만 조선일보 보도가 나간 뒤 유 교수는 당시 사적분과위원들의 조사를 인정한 것일 뿐 직접 조사를 수행한 것이 아니라는 견해를 밝혔다. 

    유 교수는 7일 통화에서 "내가 결정한 것이 아니다”라며 "내가 고고학자도 아니고 (어떻게 조사하겠나). 사적분과위원들이 조사한 것을 인정한 것이며, 그때 내가 문화재청장이었다는 것뿐”이라고 해명했다. 본지는 유 교수로부터 더욱 자세한 해명을 듣고자 했지만, 그는 "운전 중”이라며 전화를 끊었다.

    유 교수는 2019년 12월 용산공원 조성을 본격적으로 추진할 제1기 용산공원조성추진위원회 민간공동위원장으로 임명됐다. 용산공원조성특별법에 따르면, 추진위원회 위원장은 국무총리가 맡고 민간에서 공동위원장 1명을 선임하게 돼 있다. 유 교수가 이 민간공동위원장을 맡으며 공원 조성에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게 된 셈이다.

    용산공원조성추진기획단은 본지의 해명 요청에 '남단으로 '추정된다'고 고지한 상태라며 여지를 남겼다. 

    기획단 관계자는 통화에서 "기사에서 문제가 된 곳은 남단터인데 용산공원 홈페이지에는 '추정'이라고 안내가 돼 있다”며 "2005년 문화재청에서 조사한 결과 남단터로 추정된다고 해서 그에 따라 그렇게 표기 안내를 하고 있는 사항”이라고 해명했다.

    이 관계자는 그러면서 "그곳이 용산기지 안에 있어서 기지 반환 이후에나 출입이 가능하다”며 "반환 이후 지표조사를 통해 정확한 문화 개선 가치를 판단할 예정이다. 추정만 가능하고, 정확한 판단이 안 되기 때문에 당장 '용산공원 10경'에서 빼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문화재청 "지표조사에서는 정확한 판단 어려워… 분과위원들이 '확정'처럼 얘기했다"

    문화재청은 당시 조사를 담당했던 전문가들의 견해에 따랐다는 해명을 내놨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통화에서 "당시 지표조사를 했던 국립문화연구소 보고서를 확인해봤는데, 당시 그 위치가 '남단으로 거론되고 있다'는 표현을 썼다"면서 "보통 지표조사를 가면 굴착작업 없이 소문이나 현상만 보고 판단해야 하는 데다 해당 분야 전문가가 그렇게 추정했던 것 같다"고 해명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지표조사자료라든지 분과위원들이 가서 살펴봤던 상황들로 인해 '추정'이 '확정'에 가깝게 얘기됐던 듯하다"며 "(군마 위령비) 사진자료가 기사에서 제시되면서 위령비 가능성이 나왔으니 재조사해야겠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당시 사적분과위원장은 한영우 서울대 명예교수가 맡았다.

    조선일보 기사는 또 "현 용산공원 설계자는 네덜란드 조경가 (아드리안) 구즈와 '이로재' 대표인 건축가 승효상"이라고 지적하며, 승 대표가 과거 "'대동여지도'를 근거로 '한북정맥'에서 이어지는 용산 생태축을 되살려 한강 건너까지 잇겠다"고 한 발언을 문제 삼았다. 대동여지도에 표시된 한북정맥은 용산공원 부지와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한북정맥' 위치도 논란… 승효상 대표는 취재 거부

    승 대표는 2012년 국토교통부의 용산공원 설계 국제공모에서 네덜란드 건축가 아드리안 구즈와 공동으로 '미래를 지향하는 치유의 공원'을 내 1등작으로 당선됐다. 

    지난해 7월21일 용산공원조성추진위원회는 보도자료를 내고 "승효상 이로재 대표가 West8·이로재·동일 팀에서 6년간('12.10~'18.11)의 설계과정을 거쳐 "Healing: The Future Park"안을 제시했다”고 밝힌 바 있다. 승 대표의 아이디어가 용산공원 설계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는 의미다.

    본지는 '한북정맥'의 위치와 관련된 논란에 따른 승 대표의 견해를 듣기 위해 건축사무소 '이로재'를 통해 연락을 취했지만, 승 대표는 "집필 중이라 인터뷰할 여력이 안 된다"며 취재에 응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