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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애치슨선언 9개월 전에… '한국 배제' 예측, 미국에 항의한 분이 있었다

‘한국전쟁: 전쟁을 불러온 것들, 전쟁이 불러온 것들’… 美정부 자료 바탕으로 '한국전쟁' 재구성

입력 2020-07-02 17:53 수정 2020-07-03 10:52

▲ 한국전쟁 초기 북한군의 공격 모습. ⓒ국방부 제공.

1950년 6월25일 일어난 한국전쟁. 많은 사람이 이 전쟁을 잘 아는 듯 말하지만,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사실이 많다. 최근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에 보관된 각종 문서를 바탕으로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한국전쟁 관련 사실을 정리한 책이 나왔다.

‘섬앤섬’에서 출간한 <한국전쟁: 전쟁을 불러온 것들, 전쟁이 불러온 것들>은 미국 정부가 보관 중인 자료를 바탕으로 한국전쟁을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게 돕는다.

책은 10개의 장으로 구성됐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일제 전범 처리 뒷이야기, 미국이 만든 연합국 번역통역국(ATIS)의 역할, 초대 주한 미국대사 무초 이야기, 한국전쟁 발발 전 미국이 추진했던 일본 경찰예비대(자위대의 전신) 창설, 4가지의 인천상륙작전 계획, 월튼 워커 미8군 사령관의 죽음과 진실, 한국 정부의 해외망명 계획, 맥아더사령부의 대북전단 선전, 미군의 공산포로 미국화 교육 등이 주요 내용이다.

일제 전범 재판, ATIS의 활약

이 가운데서도 몇 가지 내용이 특히 눈길을 끈다. 먼저 미국은 패망한 일본을 점령한 뒤 일왕 처리를 놓고 고민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일본인들에게 정신적 지주인 일왕은 전쟁에 직접 개입하지 않았으므로 전범재판에 넘겨서는 안 된다”는 온건파와 “일본에서 제국주의와 그 정신을 뿌리째 뽑아야 한다”는 강경파 간 의견대립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 와중에 연합군 사령부 내에서는 일왕이 일본인들에게 끼치는 막대한 영향력 때문에 그를 전범으로 처리할 경우 일본 점령통치가 사실상 불가능해질 것이라고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결국 온건파가 득세하면서 일왕뿐만 아니라 다른 일본군 고위층도 처리하지 못했다. 그 결과 일본군의 잔당이 경찰예비대로, 다시 자위대로 살아남았다고 저자는 지적했다.

▲ 더글러스 맥아더 원수와 이승만 대통령. ⓒ맥아더 기념관 공개사진.

이 과정에서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창설한 ATIS를 활용해 만주와 시베리아 등에서 돌아오는 일본인과 일본계 미국인들을 통해 소련과 중공 관련 첩보를 수집했다고 한다. 냉전이 심화하는 것에 대비한 행동이었다.

무초 대사와 이승만 대통령, 인천상륙작전

초대 주미 대사를 지낸 존 무초는 한국전쟁 직전 미군 철수 문제로 국방부와 국무부 사이에서 계속 갈등했다고 저자는 소개했다. 당시 미국 정부는 국방부와 국무부의 의견을 조정하는 과정에서 냉전시대 한국의 전략적 가치를 16개 대상국 가운데 15번째로 평가했다. 즉, 한국에는 미군이 주둔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

자료에 따르면, 무초 대사는 1947년부터 “미군이 철수하면 북한이 남침할 수 있다”고 본국에 경고했다. 그러나 미군의 즉각 철수를 바라는 국방부와 동아시아에 ‘적절한 개입’을 바라는 국무부 사이에서 분명한 태도를 취하지 않았다. 

그는 1950년 초 북한이 소련으로부터 탱크와 같은 화력을 지원받은 사실, 중국 공산당 팔로군 소속으로 만주에서 전투경험을 쌓은 조선인부대의 북한 지원 등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무초 대사는 본국의 결정을 거스르지 못하고 미군이 철수하는 것을 지켜만 봤다. 

미국의 결정에 이승만 대통령은 1949년 4월 이미 “한국이 미국의 극동방위선에서 제외됐다”며 항의했다. 이는 애치슨선언이 있기 9개월 전이었다.

인천상륙작전에도 숨겨진 이야기가 있다. 맥아더 원수는 인천상륙작전, 일명 크로마이트 작전계획을 4가지나 마련했다. 이 가운데 100-A는 군산 상륙, 100-B는 인천 상륙, 100-C는 인천 상륙과 함께 유엔군이 낙동강 방어선을 돌파하지 못할 경우 군산 상륙, 100-D는 강릉-주문진 상륙이었다. 이 가운데 100-B 계획이 우리가 아는 인천상륙작전이다.

최악의 상황까지 고려했던 미국…한국 정부 망명계획

▲ 장진호 전투 당시 철수하는 미군. ⓒ국방부 제공.

유엔군이 공산군을 무찌르지 못해 한반도가 적화통일될 경우 한국 정부를 해외로 옮긴다는 계획도 실제로 세워졌다. 이 계획은 미국이 주도했다. 미국은 공산권과 제3차 세계대전이 일어날 것에 대비해 한국 정부를 해외로 망명시키려 했다고 저자는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이승만 정부가 전쟁 당시 일본으로 망명하려 했다”며 친일파로 몰아세우는 주장이 있는데, 그 근거가 일본 야마구치현에서 나왔다고 저자는 지적했다. 

한국전쟁 당시 야마구치 현지사의 회고에 따르면, 일본 외무성이 “6만여 명의 한국 망명정부를 받을 수 있겠느냐”고 물어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 관련한 한국과 미국의 공식 기록은 없다고 한다.

실제로 한국 정부의 망명계획에 기초가 된 것은 1950년 4월 미국 정부가 공산권과 세계대전을 염두에 두고 작성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68번 문서였다. 미국 국무부가 주도해 만든 한국 정부 망명계획은 전쟁 발발 뒤인 1951년 1·4후퇴를 전후해 작성됐다. 

당시 미국 국무부는 5만7700명으로 구성한 망명정부를 만들 계획을 세웠다. 피난지는 첫 번째가 제주도, 두 번째가 일본 본토, 세 번째가 오키나와였다.

석 달 뒤인 4월에는 남태평양의 사이판-티니안제도가 후보지로 떠올랐다. 이번에는 망명정부에 포함될 사람이 50만 명에 달했다. 중앙부처 공무원, 군인, 경찰, 전문직 종사자, 종교지도자, 1만여 명의 포로가 포함됐다. 

같은 해 8월 국무부가 세운 계획에는 한국 정부와 함께할 인원이 150만 명으로 늘었다. 한반도가 적화통일될 경우 공산군에게 보복당할 가능성이 큰 사람 대부분이 포함됐다. 그러나 이 계획은 대상지를 해외가 아닌 한반도 남쪽으로 규정했다.

▲ 한국전쟁: 전쟁을 불러온 것들, 전쟁이 불러온 것들. ⓒ섬앤섬 제공.

미국 국무부와 미군 지도부는 이 계획과 관련해 “식민지배라는 한일 간의 특수관계 때문에 일본을 망명지로 삼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거듭 지적했다. 이후 현재의 휴전선에서 양측이 교착상태를 보이면서 한국 정부 망명계획은 자연스럽게 사라졌다고 저자는 설명했다.

책의 내용은 이처럼 그동안 대부분의 사람이 잘 몰랐던 한국전쟁의 이면을 보여준다. 특히 “한국의 전략적 중요성 때문에 미군이 지금까지 주둔한다”는 일각의 주장이 얼마나 허상인지도 짚었다.

저자 이상호 박사는


저자인 이상호 박사는 현재 국방부 전사편찬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이다. 한미관계사와 한국전쟁사를 연구한다.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에서 역사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저서로는 <인천상륙작전과 맥아더>(2015) <맥아더와 한국전쟁>(2012) <6·25전쟁과 소년병 연구>(공저, 2011)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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