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법부 없는 초유 사태를 너무 쉽게 거론"… "정치적 고려 우선하는 정부, 밀어붙일지도"
  • ▲ 우한폐렴 사태로 정치권 일각에서 4.15 총선을 연기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가운데, 법학계는 선거 연기 논의가 시기상조라며 '헌정사에서 유례없는 일'이라고 부정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 2018년 지방선거 당시 개표 모습.ⓒ뉴데일리DB
    ▲ 우한폐렴 사태로 정치권 일각에서 4.15 총선을 연기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가운데, 법학계는 선거 연기 논의가 시기상조라며 '헌정사에서 유례없는 일'이라고 부정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 2018년 지방선거 당시 개표 모습.ⓒ뉴데일리DB
    24일 손학규 전 바른미래당 대표와 유성엽 '민주통합의원모임' 원내대표가 4.15 총선 연기를 거듭 주장하고 나섰다. 더불어민주당은 일단 총선연기론을 일축하고 있지만, 이런 주장이 나오는 것 자체가 적절치 않다는 비판이 나온다.

    손학규·유성엽 "선거운동도 못하고 총선 치르는 것 옳지 않아"

    손학규 전 대표는 24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총선 연기를 대통령과 선관위는 적극 검토해야 한다"며 "가장 중요한 총선이 국민의 참여 없이, 대면(선거운동)조차 없이 실시되는 것은 민주주의에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유성엽 원내대표도 "마을회관이나 경로당 방문도 굉장히 꺼리기 때문에 선거운동을 하기가 굉장히 어려운 상황"이라며 "이번 주 코로나 사태의 진행 상황을 지켜보면서 총선 연기도 저는 진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 역시 23일 페이스북을 통해 "코로나 사태는 국가적 재난을 넘어 재앙 수준으로 가고 있다"며 "과연 이 상태에서 선거가 연기되지 않고 제대로 치러질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여권, 일단 총선연기론 일축… "검토하지 않았다"

    여권 주요 인사들은 아직까진 총선연기론에 부정적이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24일 기자간담회에서 "총선을 연기한다고 해서 20대 국회의원들의 임기를 연장하는 방법이 없다"라며 "그러므로 총선은 그대로 치를 수밖에 없지 않느냐"라고 말했다. 20대 국회의원의 임기가 오는 5월 30일까지이므로 21대 국회 구성 일정상 4월 15일 이후로 총선을 미루기가 어렵다는 지적이었다.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 역시 23일 기자간담회에서 "그런 검토를 하지 않았다"라고 일축했다.

    "총선 연기, 헌정사에 없던 일… 쉽게 얘기하는 것 자체가 문제"

    전문가들은 우한폐렴 사태가 더욱 악화될지 모른다는 데는 공감하면서도 현재 총선 연기까지 운운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못을 박았다. 음선필 홍익대학교 헌법학 교수는 "중요한 것은 정확한 사실 판단"이라고 강조했다. 음 교수는 25일 본지 통화에서 "법적인 판단과 정치적 판단을 나눌 필요가 있다"며 "우한코로나 사태가 공직선거법상 선거 연기 요건인 '천재지변 기타 부득이한 사유'인지에 대한 상식적이면서도 과학적인 판단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음선필 교수는 이어 "우한 코로나 사태가 아직은 그 정도 수준에 이른 것은 아니라고 본다"며 "다만 정말 걷잡을 수 없이 심각하게 진행됐을 때 어떻게 하느냐의 고민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6·25전쟁 중이던 1952년에도 대통령 선거를 부산에서 실시한 바 있다"고 지적했다. 또 "우리 헌정사에서 일찍이 없었던 일을 이렇게 쉽게 얘기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며 "총선이 미뤄지면 입법부가 없는 상태에서 국회의원을 뽑는 초유의 사태다.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정치권 일각의 섣부른 주장을 질책했다.

    "현 정부, 과학 아닌 정치적 판단으로 주요 결정… 연기할수도"

    최원목 이화여자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국민의 안전과 생명 보호가 국가의 최우선 과제라는 점을 먼저 지적했다. 최원목 교수는 통화에서 "우한 코로나 사태가 일반인들의 외출을 모두 통제해야 하는 상황까지 번지지 않는다고 예단하기 어렵다. 국회의 계속성도 중요하지만 가장 최우선은 국민의 안전과 생명이다"라고 전제한 뒤 "그러나 지금 중국인 입국금지에 미온적인 데서 보듯 현 정부의 주요 결정은 과학에 근거하기보다 정치적 고려가 많이 작용하고 있다. 총선 연기마저 그렇게 되지 않을까 염려스럽다"고 우려를 표했다. 현 정부여당이 정치적 판단을 통해 총선 연기를 단행할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을 드러낸 것이다.

    최 교수는 이어 "현 정권이 박근혜 정부가 세월호 사고 수습과정에 정치적으로 개입한 측면에 대해 재수사까지 나선 마당에 그런 유사한 행태를 되풀이하는 것은 더 나쁜 것"이라며 "선거 연기 여부와 기간을 결정하겠다는 것을 명분으로 코로나 확산 가능성 이외에 정치적 계산을 주입한다면 이 정부가 적폐로 취급받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