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산·어촌 배려 원칙' 외에 다른 기준 못 정해… 24일 지나면 '4+1 합의안' 밀어붙일 듯
  • ▲ 국회 행안위 민주당 간사인 홍익표 의원(왼쪽 전면)과 한국당 간사인 이채익 의원(오른쪽 전면)이 1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국회의원 선거구 획정 논의를 위한 간사회동을 하고 있다. 이채익 의원 오른쪽에 앉은 이는 선거구획정위원장인 김세환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사무차장.ⓒ연합뉴스
    ▲ 국회 행안위 민주당 간사인 홍익표 의원(왼쪽 전면)과 한국당 간사인 이채익 의원(오른쪽 전면)이 1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국회의원 선거구 획정 논의를 위한 간사회동을 하고 있다. 이채익 의원 오른쪽에 앉은 이는 선거구획정위원장인 김세환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사무차장.ⓒ연합뉴스
    여야가 선거구 획정안을 다음달 5일 본회의에서 처리하기로 한 가운데, 선거구 획정마저 '4+1협의체'가 결정한 대로 관철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지난해 12월 말 '4+1협의체'는 헌법재판소가 제시한 '인구비례 원칙'을 무시하고 '농·산·어촌 배려 원칙'을 들고 나왔다. 호남의 지역구 수를 유지하고 수도권을 줄이자는 말이다.

    총선을 치르기 위해서는 선거구를 획정해야 한다. 이를 위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선거구획정위원회(획정위)는 국회로부터 '획정에 관한 의견'을 받아 이를 바탕으로 획정안을 마련해 국회의장에게 제출해야 한다. 이 획정안은 공직선거법 별표를 구성하고, 이 별표까지 포함한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행정안전위원회를 거쳐 본회의를 통과해야 선거법이 확정된다.

    본지가 획정위에 확인한 바에 따르면, 국회가 마련해줘야 할 의견은 '시·도별 의원정수와 인구하한선' 등에 관한 기준이다.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은 11일 원내대표 회동을 통해 이 기준을 행정안전위원회 간사 간에 협의해 마련하자는 데 합의했다. 이에 따라 12일 오후 양당 간사인 홍익표 민주당 의원과 이채익 한국당 의원이 만났지만 "오늘은 일정만 논의하는 자리"였다며 논의를 다음날로 연기했다. 

    행안위 간사 회동, 연 이틀 무위로… '농산 배려 원칙' 관철 가능성↑

    다음날인 13일, 이번에는 김세환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선거구획정위원장까지 포함해 3자 회동이 열렸지만 양당 간사는 이날도 "향후 일정을 논의했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이날 행안위 소회의실에서 비공개 회동을 마친 후 홍 의원은 "오늘은 킥오프 성격이었다. 김세환 위원장을 통해 획정위의 지금까지 논의사항을 듣고, 앞으로 주요 일정 등에 대해 논의했다"며 "그밖에 몇 가지 쟁점사항과 입법적 보완문제에 대해 얘기했다"고 밝혔다. 이 의원은 "획정위가 24일까지 기준을 통보해달라고 요청했다. 당 지도부에 보고하겠다"고 말했다. 

    본지 취재진이 홍·이 두 의원에게 "시·도별 의원정수와 인구하한선에 대한 논의는 없었느냐"고 묻자 두 의원은 모두 "그런 구체적인 얘기는 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두 의원은 다음 회동 일정도 정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상황을 종합하면, 국회는 다수파인 '4+1'이 합의한 '농·산·어촌 배려' 원칙 외에 다른 기준을 전혀 논의하지 못한 상태다. 획정위가 요구한 시한인 24일까지는 열흘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다. 결국 민주당이 '4+1 합의안'을 본회의까지 밀어붙이면 한국당은 지난 선거법·공수처법 강행처리 때와 같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김재원 "민주당, 호남 의석 늘리고 수도권은 줄이겠다는 것"

    행안위 간사 회동이 시작된 12일 한국당 정책위 의장인 김재원 의원은 본지와 통화에서 "오늘 한국당과 민주당 행안위 간사끼리 만나 금방 헤어졌다. 저쪽(민주당)에서는 '4+1협의체'에서 결정한 대로 획정하자고 통보하고 간 것이나 다름없다"며 "선거구 획정마저 제1야당을 빼고 '4+1' 말을 따르라니 이게 말이 되나"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김 의원은 이어 "민주당이 오늘(12일) 협의를 진행하지 않은 것은 호남 의석수 늘리고 수도권은 다 줄이겠다는 안을 제시하고 간 셈"이라며 "구체적으로 다 얘기할 수는 없지만, 공직선거법 통과시키기 전에 저희들(4+1협의체)끼리 선거구 획정까지 다 했다. 그대로 하자는 얘기"라고 주장했다. 

    김 의원은 지난달 10일 선거구획정위원회가 개최한 '국회의원 선거구획정위 정당 의견청취' 회의에 참석한 뒤 "수도권은 인구대비 의석수가 가장 적은 곳으로, 수도권 통폐합 주장은 반헌법적이고 반민주적"이라며 "표의 등가성과 헌법상 평등의 원칙에 부합하려면 인구대비 의석수가 포화상태인 광주·전북·전남 순으로 의석을 하나씩 줄여가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2014년 헌법재판소가 판결을 통해 선거구 획정 기준으로 인구비례 원칙을 재확인하고, 인구가 가장 많은 지역구와 가장 적은 지역구의 인구수가 2 대 1을 넘지 말 것을 촉구한 데 따른 주장이었다.

    민주당에선 '4+1협의체' 안대로 밀어붙이는 모양새를 최대한 피하려는 분위기다. 홍 의원은 12일 본지와 통화에서 "선관위의 말을 들어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 내일(13일) 선관위 관계자와 함께 회의를 하기로 했다"며 신중한 자세를 취했다.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취재진이 김 의원의 주장을 건네자 "김재원 의원이 선거구 획정까지 간섭하려는 건 무리"라고 지적한 뒤 "늦었지만 양당이 행안위 간사에게 선거구 획정에 대한 전권을 준 것으로 안다. 양당 간사 간에 합의가 이뤄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획정위, 현재까지 논의 '제로'… "국회가 기준 정해줘야"

    획정위는 별다른 방침을 정리하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13일 선거구획정위 관계자는 본지와 통화에서 "선거구 획정이 어느 단계에 와 있느냐"는  질문에 "시·도별 의원정수 등에 대해 국회에서 의견이 넘어와야 논의에 들어간다"며 "공직선거법상 선거일 전 1년까지는 획정했어야 했다. 조속히 기준이 마련되기를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서울 종로구와 중구를 통합하는 방안을 비공식으로 논의했다는 KBS 보도가 지난 4일 있었다"고 취재진이 지적하자 "오보다. 지금 저희가 적용해야 할 기준을 국회에서 마련해줘야 하는데, 그 기준이 없는 상황에서 본격적인 작업을 할 수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