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사각 발굴 시스템' 운용하지만… 갑작스런 생활고 발견 못해 '무용지물'
  • ▲ 2일 서울 성북구 한 주택에서 70대 어머니와 40대 딸 3명이 숨진 채 발견됐다. 이어 6일 경기 양주시에서는 50대 아버지와 그의 두 아들이 숨진 채 발견됐다. 이들은 모두 '생활고'를 겪고 있었다. ⓒ뉴시스
    ▲ 2일 서울 성북구 한 주택에서 70대 어머니와 40대 딸 3명이 숨진 채 발견됐다. 이어 6일 경기 양주시에서는 50대 아버지와 그의 두 아들이 숨진 채 발견됐다. 이들은 모두 '생활고'를 겪고 있었다. ⓒ뉴시스
    6일 경기도 양주시에서 50대 남성이 여섯 살, 네 살 아들과 함께 숨진 채 발견됐다. 앞서 2일에는 서울 성북구에서 70대 노모와 40대 세 딸이 숨진 채 발견됐다. 이들은 모두 ‘생활고’에 시달리다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복지 사각지대 발굴’에 나서겠다던 정부가 이들의 어려움을 알아채지 못하면서 ‘보여주기식 정책’이라는 비판이 일었다.

    우편함에 독촉 서류... 월세 못 내는데 빚은 늘어

    경기도 양주경찰서에 따르면, 6일 오전 8시40분쯤 양주시 장흥면 부곡리의 한 고가다리 아래 주차된 차량 안에서 A(57)씨와 그의 여섯 살, 네 살 아들 2명이 숨진 채 발견됐다. 차량에서는 번개탄으로 불을 피운 흔적이 발견됐다.

    A씨는 베트남 이주 여성을 아내로 맞아 아들 2명을 가졌고, 조경사로 일해왔다. 하지만 A씨는 최근 3~4개월 일거리가 없어 40만원 정도 되는 월세도 제때 내지 못하는 등 경제적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사망 전 지인들에게 “미안하다” “애들 엄마 좀 부탁한다”는 등의 문자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A씨가 생활고 때문에 아들들과 함께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추정했다.

    앞서 2일에는 서울 성북구의 한 다세대주택에서 70대 어머니와 40대 딸 3명이 숨진 채 발견됐다. 이들은 사망한 지 상당한 시간이 지나 발견됐다. 경찰은 집 안에서 “힘들었다. 하늘나라로 간다”고 적힌 유서가 발견됐고 타살 혐의점이 크지 않은 점 등으로 미뤄 이들이 생활고에 시달리다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봤다.

    이들 모녀는 보증금 3000만원, 월세 100만원짜리 다세대주택에 3년 가까이 거주했는데 최근 2~3개월간 월세가 밀린 것으로 전해졌다. 네 모녀가 살던 자택 우편함에서는 채무이행통지서·이자지연명세서 등이 발견됐다.

    '복지 사각지대 발굴 시스템’... 어려운 이들 못 찾았다

    이처럼 최근 생활고에 시달리다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례가 늘면서 정부 복지 시스템에 ‘구멍’이 드러났다는 지적이 일었다.

    정부는 2014년 2월 서울 송파구 세 모녀가 생활고로 함께 목숨을 끊은 이른바 ‘송파 세 모녀 사건’이 발생한 뒤 2016년부터 ‘복지 사각지대 발굴 관리 시스템’을 4년째 운영 중이다. 이 시스템은 △2개월 이상 가스비 체납에 따른 가스 공급 중단 △건강보험료 6개월 이상 체납 △국민연금 보험료 3개월 이상 체납  △대출금 등 3개월 이상 금융 연체 △단전, 단수, 자해·자살 시도로 병원 응급실 내원 등 25종 지표 등 총 29개 지표를 토대로 어려운 이들을 찾는다. 이 시스템을 통해 2개월마다 약 500만 명의 복지 지원 후보자들이 발견된다.

    하지만 문제는 단기간에 경제상황이 급격히 악화할 경우 복지 지원이 필요한 이들을 찾아내지 못하는 등 복지제도에 허점이 많다는 점이다.

    29개 지표 현실성 떨어져… ‘긴급복지지원제도’ 모르면 무용지물

    ‘복지 사각지대 발굴 관리 시스템’에 따라 100만~1000만원의 은행 대출금 상환을 3개월 이상 연체할 경우 관할 지자체가 복지 서비스를 제공하지만, 성북구 네 모녀는 체납액이 수천만원에 달해 대상에 포함되지 못했다.
  • ▲ 정부는 '복지 사각지대 발굴 관리 시스템'을 2016년부터 운영 중이다. 시스템은 총 29개 지표를 기준으로 어려운 이들을 찾지만, 기준이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뉴데일리 DB
    ▲ 정부는 '복지 사각지대 발굴 관리 시스템'을 2016년부터 운영 중이다. 시스템은 총 29개 지표를 기준으로 어려운 이들을 찾지만, 기준이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뉴데일리 DB
    이들은 지난 7월부터 온가족이 건강보험료를 납부하지 못했다. 그러나 건보료 지역가입자의 경우 6개월 이상 체납하지 않으면 ‘위기 가구’로 탐지되지 않는다. 가스비 역시 연체됐지만 2개월 이상 체납이 아니어서 가스 공급이 중단되지 않았다. 단수·단전이나 국민연금 보험료가 3개월 이상 밀리지도 않았다.

    이들에게는 실직, 휴·폐업, 질병 등으로 생계가 곤란한 가구에 생계비·주거비·의료비 등을 지원하는 ‘긴급복지지원제도’도 소용 없었다. 이 제도는 2004년 12월 ‘대구 불로동 5세 어린이 영양실조 사망사건’을 계기로 2006년 3월부터 시행됐다. 

    이 제도는 ‘선 지원, 후 조사’ 방식으로, 조건은 소득기준 중위소득 75% 이하(4인가구 기준 월 346만원), 재산 기준 대도시 1억8800만원 이하다. '서울시 긴급복지'는 소득기준 중위소득 85% 이하(4인가구 392만1506원), 재산 기준 2억4200만원 이하다. 다만 이 제도는 당사자가 직접 신청해야 하기 때문에 제도 자체를 모르면 무용지물이다.

    ‘복지 강화’를 외치던 정부가 빅데이터와 기계적 시스템에만 의존해 사각지대에 놓인 위기 가구는 알아채지 못하는 허점을 드러냈다는 비판이 일었다. 보여주기식 복지가 아닌 진정 필요한 곳을 찾아가는 실질적 맞춤형 복지정책을 펴야 한다는 것이다.

    “현 정부 현금지원 방식 복지제도 도움 안 돼… 맞춤형 정책 나와야”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복지정책을 강화해야 한다”며 “다만 맞춤형 복지정책을 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대부분 정당이 표를 의식하거나 이해관계에 따른 로비나 집단적 반발에 의해 복지정책이 형성되는 경우가 너무 많다”며 “증대된 복지정책에 맞춰 좀 더 세심하고 촘촘하게 시스템을 강화해야 한다. 소득이 어떤 소득인지, 지출은 어떻게 되는지, 가족 현재 상황은 어떤지 등 통계 자체도 개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봉주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현 정부의 복지예산이 많이 늘어난 것은 현금지원 방식이 많이 늘어난 것”이라며 “우리 복지제도가 대부분 신청해야 혜택을 받을 수 있는데, 사실 신청할 여력이 없거나 의지가 없을 정도로 힘든 경우에 처한 분들이 사각지대에 처한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이런 분들은 주위에서 무관심하고 소외된 상태로 있기 때문에 이상징후가 감지될 때 미리 알려 지자체 등에서 직접 찾아가 어려움을 진단하는 시스템이 더 촘촘하게 형성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정부가 확장재정을 통해 복지를 펴겠다는 것은 경기확장이고, 복지는 사회안전망의 문제”라며 “최하위 계층을 위한 복지 시스템은 일괄적으로 20만원~30만원을 주는 것과 같은 방식이 아닌 별개로 정확한 통계를 내 관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탁상행정이 아닌, 주민센터 등에서 관리하며 직접 봐야 한다. 기계적 지표도 필요하지만 피상적 복지정책으로는 복지 사각지대를 막지 못할 것”이라며 “가스비 체납 등으로 위기가정을 발굴한다면 누가 가스비를 한 번 대신 내줄 경우 탈락하는 것 아니냐”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