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계 “영장판사, 기각 사유에 유무죄에 대한 판단 기재… 매우 이례적" 비판
  • ▲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이 25일 검찰에 출석하고 있다.ⓒ정상윤 기자
    ▲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이 25일 검찰에 출석하고 있다.ⓒ정상윤 기자

    이른바 ‘환경부 블랙리스트’ 작성에 관여한 의혹을 받는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되면서 법조계의 비판 여론이 거세지고 있다. 증거와 법리에 따른 판결이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법조계에서는 과거 비슷한 ‘문체부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등이 구속됐다는 점을 들어 법원이 ‘이중잣대’를 들이대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견이 많다. 일각에선 관행을 이유로 ‘살아있는 권력’에 면죄부를 준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은경 기각’... 증거⋅법리 무시 판결 비판

    26일 법조계에 따르면 박정길 서울동부지법 영장전담부장판사는 이날 새벽 검찰이 김 전 장관에 대해 청구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박 부장판사는 영장 기각 사유에 대해 “김 전 장관의 혐의에 다툼의 여지가 있어 피의자의 방어권을 보장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하지만 박 부장판사의 영장 기각에 대해 법조계에선 ‘매우 이례적’이고 ‘이중적’이라고 비판했다. ‘찍어내기’와 ‘낙하산 인사’라는 절차가 과거 박근혜 정부의 ‘문체부 블랙리스트’와 비슷한 사건이지만, 법원 판단은 다르게 나왔기 때문이다.

    실제 박근혜 정부의 문체부 블랙리스트 사건에서는 관련자들의 직권남용 혐의가 유죄로 인정됐다. 김기춘 전 비서실장은 2017년 1월 문화·예술계 인사들 중 정부에 비판적 인사들에 대한 블랙리스트 작성을 지시한 혐의로 구속됐다. 김 전 비서실장은 항소심에서 혐의가 유죄로 인정돼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영장판사 “적정한 인사권” 주장에... 법조계 “로또 사법의 시대”

    그러나 박 부장판사는 문체부 사건과 달리 김 전 장관의 행위를 ‘적정한 인사권’이라고 판단했다. 박 부장판사는 최순실 일파의 국정농단과 당시 대통령 탄핵으로 인해 공공기관 인사 및 감찰권이 적절하게 행사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새로 조직된 정부가 공공기관 운영을 정상화하기 위해서는 사직 의사를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광주지검 순천지청장 출신의 김종민(52·사법연수원21기) 변호사는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같은 사안을 놓고 지난 번엔 블랙리스트라며 중형을 선고하고, 이번에는 인사협의 관행에 따른 것이라며 구속영장을 기각했다”며 법원이 이중잣대를 들이댔다고 지적했다.

    김 변호사는 “자기들이 하면 합법적인 적폐청산이고, 남들이 하면 불법한 블랙리스트, 국정농단”이라며 “로또 사법의 시대”라고도 비판했다.

    판사 출신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 원내대책회의에서 “동일한 사안에 대해 다른 잣대를 들이댄 것으로 유감스럽다”고 말했다.

    “기각 사유에 유무죄 판단, 이례적”

    법조계에선 영장판사가 기각 사유에 유무죄에 대한 판단을 기재한 것도 이례적이라고 봤다. 영장심사에 김 전 장관의 유무죄를 논하는 사실상 ‘본안 판단’이 들어갔다는 것이다.

    한 부장판사는 “영장심사에서는 범죄혐의가 소명되는지 정도만 판단한다”면서 “이번심사에서는 김 전 장관이 무죄라는 영장판사의 판단까지 들어가있다”고 지적했다.
     
    한반도인권통일변호사모임(한변)은 이날 성명을 내고 “김 전 장관에 대한 영장기각은 문재인 정부의 반헌법적 사법부 겁박의 연장에 따른 결과”라며 “환경부 블랙리스트에 대해 청와대가 ‘적법한 체크리스트’라며 사실상 수사가이드라인을 제시했고 영장심사 직전에는 ‘법원의 판단을 지켜보겠다’며 법원을 겁박했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