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과 협상학(25) 양보만으론 안돼… 서독처럼, 지원 땐 반드시 댓가 얻어내야
  • 협상을 원하는 방향으로 이끄는 최고의 방법은, 역설적으로 협상이 안 돼도 좋을 만한 대안이 있을 때다. 마치 아파트 매매 시 요즘처럼 매수자 우위 시장에서는 매수자가 시세보다 10% 이상 낮춰 불러 매도자가 안 받아들이더라도 다른 매물 중에서 선택할 수 있는 경우와 같다.

    협상학에서는 이를 '배트나(BATNA, Best Alternative To a Negotiated Agreement)'라고 한다. 본 협상 외에 다른 대안이 있다면 상대는 함부로 협상을 깨지 못한다. 최근 미북 핵협상에서는 양측이 서로 당근과 채찍을 내밀며 각각 북핵 포기와 경제제재 완화를 주장했다. 그에 비하면 우리나라는 일종의 당근책인 양보의 모습만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그 원인 중 하나는 배트나가 약하기 때문이다. 

    먼저, 미국과 협상에서는 지난해 미국의 요구로 한미FTA 재협상을 했고, 올해는 주한미군 분담금 증액 등 이익들을 너무 쉽게 양보했다. 특히 주한미군 부담금은 예년의 2%, 5% 증액에 비해 크게 늘어난 8.2% 증액한 데다 매년 재협상을 하게 된 것이 더 큰 문제다. 현실적으로 협상 파행 시 미국에 좀 더 많은 대안이 있어서 어쩔 수 없었다 하더라도 상대에게 양보했다는 점을 강조했어야 한다. ‘선방했다’거나 ‘어쩔 수 없었다’는 변명보다 차라리 우리가 많이 양보했다고 볼멘소리라도 크게 내주는 것이 다음 협상에서 유용한 수단이 될 수 있다. 

    둘째, 남북협상은 우리에게 대안이 더 많은데도 수세로 보이는 점이 이상하다. 북한이 핵을 갖고 있다는 공포심 때문이라면 협상 용어가 무의미하다. 무조건 다 내주는 패전국 같은 입장이기 때문이다. 북이 우리에게 핵을 쓸 경우 북한도 같은 보복으로 온전치 않을 것인 만큼 북에만 일방적 우위가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경제가 최악의 상태라고 스스로 인정하는 국면인 만큼 우리가 경제강국으로서 쓸 수 있는 대안이 많은데도 주고받는 요구를 하지 못한다. 독일 통일 전 서독의 경우 동독을 지원할 때 반체제인사 석방이나 가족 교류 등 다양한 대가를 받드시 얻어냈다. ‘주고받기’ 협상 원칙을 지키지 않는다면 상대는 우리를 더 얕잡아보고 결국 중재자 역할도 하기 어렵다. 

    셋째, 미북 간 대안싸움이다. 미국으로서는 정상 간 협상이 안될 경우에도 북한 내부 교란, 경제제재 강화, 중국과 러시아를 더욱 견제하는 다양한 수단이 있다. 반면 북한의 경우 핵실험 재개와 중장거리미사일 실험 재개를 들 수 있지만 군사력에서 비교 상대가 되지 않는다. 즉, 미북 간 배트나 싸움은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미국이 유리한 형세다. 그렇기에 북한도 미국보다 우리나라에 분풀이를 하는 경우가 더 잦다. 

    끝으로, 우리 정부와 야당의 미국·북한 대상 배트나 만들기는 더욱 시급하고 정교해야 한다. 현실적인 힘과 '벼랑 끝 위협' 전술에 정면으로 대항하기 힘든 상황이라면 ‘유도의 되치기’ 전술을 생각해볼 수 있다. 상대의 힘을 역이용하는 것이다. 미국의 힘은 트럼프에게서만 나오지 않는다. 하원과 심지어 공화당이 다수인 상원, 그리고 역량 있는 비정부기구(NGO)와 기독교단체에서도 나온다. 북한 역시 주민들의 개방성과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 커졌고, 빠르게 전파되고 있다는 증언들이 이어진다. 그 힘에 우리 주장을 더하는 노력도 의미 있는 배트나가 될 것이다. 적어도 우리가 두 번을 양보했으면 하나는 얻어내야 한다는 근성을 드러내야 한다. 힘을 모은다면 미국과 북한에도 우리 뜻대로 움직일 휴민트와 경제역량을 갖추었음에도 쓸 생각을 못하는 듯하다.

    / 권신일 前허드슨연구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