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서 위조해 병역 기피… '배지 미착용' 평양까지 번져 단속도 포기
  • ▲ 북한의 군복무 가운데는 사진 속 돌격대에서 근무하는 것도 있다. 이곳에 가면 10년 동안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막노동만 해야 한다.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북한의 군복무 가운데는 사진 속 돌격대에서 근무하는 것도 있다. 이곳에 가면 10년 동안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막노동만 해야 한다.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최근 북한에서 병역기피가 증가하고, 김일성-김정일 부자의 초상화 배지를 달지 않는 주민도 크게 늘었다고 '자유아시아방송(RFA)'이 16일 보도했다. 당국의 명령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던 북한사회가 변했다는 주장이다.

    '자유아시아방송'은 “북한 고급중학교 졸업생들이 군에 입대하지 않으려고 온갖 편법을 동원하고, 당국은 질병진단서를 위조해 병역을 기피하는 사람들을 색출해 지역 탄광에 강제 배치하고 있다”고 북한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자유아시아방송'과 접촉한 평안남도 소식통은 최근 고급중학교 졸업생을 대상으로 실시한 병역신체검사 결과를 전했다. 이번 병역신체검사는 각 시 군사동원부(한국의 병무청에 해당)에서 실시했으며, 합격한 사람은 4월 중순 각 도 군사동원부에 집합해야 한다.

    최근 입대할 청년들 ‘장마당세대’라 충성심 약해

    소식통에 따르면, 이번 병역신체검사에서 결핵·간염 같은 질병으로 불합격한 사람이 지난해에 비해 대폭 늘었다. 소식통은 “진짜 환자도 있지만, 대부분은 군복무를 피하려고 병원에 뇌물을 주고 진단서를 조작한 권력층과 돈주의 자녀들”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입대를 기피하는 분위기가 갈수록 확산되자 도 군사동원부는 도 당위원회와 논의해 1차 병역신체검사에서 질병으로 불합격된 사람들을 무조건 지역 탄광으로 강제배치하기로 했다”며 “2차와 3차 신체검사에서도 질병을 이유로 입대를 피하려는 사람들은 모두 탄광에 배치될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다”고 전했다.

    현재 북한에서 입대를 앞둔 청년들은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시기에 태어난 ‘장마당세대’로, 인민군에 입대해 조국을 보위하겠다는 사명감보다 “탄광에 가더라도 돈을 벌어 일찍 사회에 적응하는 것이 더 현명하다”는 인식이 팽배하다는 게 소식통의 설명이다. 소식통은 “앞으로 입대 기피자가 더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자유아시아방송'과 만난 평안북도 소식통은 “2000년대부터 군사동원부는 외화벌이 장사나 하는 부패기관으로 낙인찍혔다”고 폭로했다. 덕분에 “군사동원부에 뇌물 500달러(약 57만원)만 바치면 입대서류를 조작해 편한 부대로 배치되게 하는 건 쉽다”는 전언이다.
  • ▲ 2012년 7월 런던올림픽 때 북한선수들이 착용하고 나온 김씨 부자 배지. ⓒ뉴시스 AP.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2012년 7월 런던올림픽 때 북한선수들이 착용하고 나온 김씨 부자 배지. ⓒ뉴시스 AP.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소식통은 “결국 돈 없고 힘 없는 집안 자녀들은 건설전담부대(일명 돌격대)에 배치되는데, 이들은 열악한 건설현장에서 10년 동안 노동을 하고, 제대한 뒤에는 직장 배치에서도 불이익을 당한다”면서 “이런 현실을 아는 요즘 청년들이 어떻게든 군복무를 피해보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젊은이들만 북한당국의 행태에 불만을 품는 게 아니다. '자유아시아방송'은 “최근 북한주민들이 김씨 부자 배지를 달지 않는다”는 소식통의 이야기도 전했다. 중국과 접경지역뿐 아니라 평양시민들도 김씨 부자 배지를 달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자유아시아방송'의 평양 소식통은 “주민들이 정치행사나 단속반의 눈길만 벗어나면 김씨 부자 배지를 달지 않으려는 움직임이 뚜렷하다”면서 “요즘 내부 분위기가 전과 달라지고 있음을 느낀다”고 전했다.

    해외 파견 북한 노동자 “외국인 눈길 때문에 김씨 부자 배지 안 달아”

    김씨 부자 배지를 아예 달지 않는 것은 아니다. 노동당 등이 주최하는 강연회나 생활총화 등의 조직행사 때는 배지를 달지만, 다른 때는 이를 외면한다고. 배지는 외출 때도 착용해야 하지만 “직장과 인민반 초급회의 때 배지를 안 달아도 참가를 저지하거나 비판하는 일이 사라졌다”는 것이 소식통의 말이다.

    다른 평양 소식통은 “해외에서 일하다 귀국한 노동자들의 말이 퍼지면서 김씨 부자 배지의 가치가 점점 떨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해외 파견 노동자들이 귀국해 “외국인들이 김씨 부자 배지에 거부감을 느끼기 때문에 일할 때나 매달 한 번씩 외출할 때는 배지를 달지 않는다”는 사실을 주변사람들에게 전했다고 한다.

    김씨 부자 배치를 달면 외국인들이 불쌍하게 여기거나 하찮게 보는 경향이 있어, 해외 파견 인력을 감독하는 당 간부들마저 배지를 떼고 나가라고 말할 정도라는 사실도 전해졌다. 그 후 북한 내부에서 김씨 부자 배지에 대한 생각이 변하기 시작했다는 설명이다.

    소식통은 “김씨 부자 배지가 이처럼 푸대접받면서 요즘 노동당 사무실에는 배지가 무더기로 쌓여 있는 것을 목격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최고지도자마저 배지를 달지 않고 현지지도에 나서는 모습이 TV에 나오는데 누가 배지에 관심을 갖겠느냐”고 반문했다.

    '자유아시아방송'이 전한 이 같은 소식은 흘려 들을 내용이 아니다. 인민군이나 김씨 일가 우상화와 직접 관련되는 부분에서 북한주민의 정서가 바뀌었다는 것은 김정은 체제에 대한 주민들의 생각도 과거와는 많이 달라졌다고 볼 수 있는 근거가 된다.